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철수 전 대표가 제안한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안철수 의원의 ‘혁신 전당대회’ 개최 요구에 대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3일 ‘전당대회 개최 불가’와 ‘현행 지도체제 유지’라는 초강경 승부수를 던졌다. 무엇이 문 대표에게 당내 분란과 집단 탈당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이 같은 정면승부를 선택하게 했을까. 문 대표의 선택에는 ‘더 밀려선 안 된다’는 위기감과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밀리면 끝장” 위기감
지난달 18일 ‘문·안·박 연대’를 공식 제안한 이래 문 대표는 안 대표와의 ‘핑퐁 게임’을 이어오면서 취약한 정치력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에 시달려왔다. 최근의 ‘문-안 갈등’을 두고 당내 중진과 당직자들 사이에서 ‘양초(두 초선의원)의 난’이란 쓴소리가 회자된 게 단적인 예다. 정치 경험이 적으면서 당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의 불통이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문 대표의 ‘미숙함’은 여기 그치지 않았다. 비주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우군’이었던 주류 쪽 최고위원들과도 소통 실패로 잦은 불협화음을 빚었다. 문 대표 입장에선 자신의 사퇴를 겨냥한 안 전 대표의 ‘혁신 전대’ 제안을 수용할 경우, 정치력과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사실상 대선주자로서의 입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신기남·노영민 의원 등 측근 의원들의 부패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친노(무현)·친문(재인) 진영 전반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 “전대 어렵다”는 의원단 다수 여론
지난 9월 문 대표가 ‘재신임’ 승부수를 던지기 직전만 해도 의원들 사이에선 ‘조기 전당대회 불가피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비주류 진영은 물론, 중도 그룹과 정세균 의원 같은 주류 쪽 중진 일부도 조기 전대론에 동조하는 상황이었다. 재신임 국면을 거치며 조기 전대론은 잦아들었지만, 문 대표에 대한 호남 여론이 악화되고 10월 재보궐선거까지 참패하면서 조기 전대론은 ‘통합전대론’이란 이름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안 전 대표가 ‘혁신전당대회’란 이름으로 다시 전대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전대론은 애초 제기된 시점부터 이미 2개월 이상 지나면서 준비 기간이 물리적으로 빠듯한 상황이 됐다. 문 대표가 안 전 대표의 제안을 “싫어서 거부하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물리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야권 지지층 내부의 여론 우위
문 대표의 승부수에는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 ‘혁신전대’보다 ‘문재인 체제 유지’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이날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표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32.9%로 가장 많았다. ‘문 대표가 사퇴하고 새로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응답은 21.4%에 머물렀다. 여기에 ‘현역 물갈이’를 위해 진행중인 당무감사를 일부 비주류 의원들이 거부하면서 ‘반혁신 기득권 세력’의 이미지가 비주류 세력에 덧씌워진 점도 문 대표 쪽엔 힘이 됐다. 문 대표 쪽은 ‘전대 요구=혁신안 무력화=기득권 지키기’ 프레임을 활용해 비주류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 “탈당 소폭에 그칠 것”이란 계산
문 대표는 회견 말미 ‘비주류가 탈당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주류의 탈당 압박을 ‘정치적 엄포’로 치부한 것이다. 실제 당내에선 무소속 출마시 생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호남의 일부 비주류 의원을 제외하면, ‘수도권 비주류’의 탈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주류 쪽의 한 재선 의원은 “‘문-안 갈등’ 과정에서 야권 내부의 비토층을 키운 안철수 전 대표 역시 탈당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안 전 대표도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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