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새누리당의 나쁜 남자들 얘기다.
#1. 항상 웃는 얼굴에 온화하고 점잖던 그가 돌변했다. 여성 의원들이 집단 면담을 신청했을 때였다. 공천제도 논의에서 여성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당 지도부 인사의 표정이 변했다. ‘어디서 건방지게 여자 초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놀라서 허둥지둥 방문을 닫고 나서며 다른 여성 의원에게 물었다. “원래 저런 분이었어요?” 당당한 풍채의 여성 의원이 안경을 홱 고쳐쓰며 이렇게 말했단다. “몰랐어? 새누리당 남자들 다 저래.”
#2. “우리 당에서는 여자면 다 비례대표인 줄 알아. 어떤 일이 있었냐면, 총선 끝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야. 당에서 의원 현황 자료가 나왔어. 그런데 내가 비례대표로 돼 있는 거야. 다른 곳도 아니고 당에서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아예 명함에 지역구 지도를 박고 다녀.” 그가 반으로 접힌 명함을 펼쳐 보였다. 남성 의원 명함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지역구 지도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4년간 열심히 국회에서 배우고 일 좀 할 만하면 우리 당은 새로 사람을 바꿔. 새로 온 의원은 또 공부하다가 시간을 보내. 허송세월이지. 그런데 야당 여자 의원들은 우리와 다르잖아.”
#3. “새누리당은 ‘조강지처’가 아닌 ‘조강지첩’을 원해.” 한 여성 의원은 물갈이도 필요하지만 당에서 사람을, 특히 ‘여자 사람’을 너무 안 키운다고 했다. 4년간 열심히 고생한 ‘처’를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4년마다 여성 의원을 바꾸는 것이 마치 ‘첩’을 새로 들이는 것 같다고 했을까. “새누리당에서는 여자 의원 최다선이 3선이야. 야당을 보라고. 이미경 의원 같은 사람도 있잖아.”
이미경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4명뿐인 5선 의원 가운데 한 명이다. 그 위로는 6선인 이해찬 의원뿐이다. 새정치연합 126석 가운데 24석이, 새누리당은 157석 가운데 20석이 여성이다. 모두 남초정당이다. 딱히 여당 여성 의원이 부러워할 이유는 없지만 차이는 있다. 새누리당은 여성 의원 20명 중 16명이 초선인데, 그중 2명만 지역구다. 재선은 3명, 3선은 1명에 불과하다. 새정치연합은 여성 의원 24명 중 17명이 초선이다. 지역구 초선 의원이 7명이다. 재선 4명, 3·4·5선이 1명씩이다. 다선 여성 의원이 많은 야당과는 정치적 성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야당과 선거구 획정 줄다리기 중인 새누리당은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자고 한다.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은 더 줄어들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남성 의원으로부터 “결혼 안 해봤고 출산 안 해봤고 애 안 키워봤고 이력서 한 번 안 써봤고 자신이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가정을 한 번 꾸려보지 못한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당내 여성 최다선이었던 5선의 대통령을 위해 돌아가며 종주먹을 흔든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이자스민 의원을 여성 비례대표로 낙점하는 신의 한 수를 뒀다. 그는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 이주노동자 문제에 남다른 활동을 해왔다. 법안과 정책을 낼 때마다 극심한 인종주의적 차별과 혐오가 덤으로 따라온다. 여당 의원들이 이 문제로 마이크를 잡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몰랐어? 새누리당 남자들 다 그래.’ 이자스민 의원에게 재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회에 더 있었으면 한다.
글과 행동이 다를 때가 있는 <한겨레>의 나쁜 남자는, 몇 년 전 드라마에서처럼 조강지처클럽 회원들의 복수 성공담을 은근히 기대한다.
김남일 정치팀 기자 namfic@hani.co.kr
김남일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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