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에프(SF)영화 <마션>의 한 장면. 비유하자면, 안철수 의원은 지구로 돌아오는 대신 화성에서 새로운 정착지(제3정당)를 개척하기로 한 것이다. <마션2>가 시작된 셈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석달 전이었다. 안철수 의원이 재미있게 관람했다는 영화 <마션>을 보고, 안 의원을 영화 속 주인공에 빗대 ‘새정치’ 메시지를 지구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화성에 고립돼 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고, 새정치연합이란 당명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안 의원은 내일(10일)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다.
비유해보자면, 그는 지구로 돌아오는 대신 화성에서 새로운 정착지(제3정당)를 개척하기로 한 것이다. <마션2>가 시작된 셈이다. 화성에 들어설 주거지는 새누리당과 제1야당의 독점에 신물난 지구인들에겐 매력적인 장소다. 박근혜 대통령의 네탓 정치에 질리고, 그런 청와대에 장단 맞추는 새누리당의 ‘오버’가 짜증나고, 더민주의 지리멸렬함에 진저리가 나는 이들이라면, 제3정당 창당 소식에 귀가 솔깃할 터이다. 로켓 연료를 태워서 물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감자를 키울 정도의 창의성과 실력을 보여준다면, 고단해도 용기있는 화성인의 삶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화성에 홀로 남은 <마션>의 주인공이 극단적 고독을 견뎌야 했듯,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 내에선 계파 없는 외로운 처지로 지냈다. 이젠 상황이 다르다. 세가 붙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라는 이름만으로 더민주의 정당 지지율에 육박했다. 사람들도 몰려든다. 한때 안 의원에게 실망해 돌아섰다 이번에 공동창준위원장을 맡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안철수가 많이 달라졌다”는 평을 내린다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적어도 창당이 완료되는 설 전까지는 안철수 신당의 지지도가 유지될 거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섣부른 예상이다. 안 의원은 곧 안팎의 도전에 부닥칠 것이다. 지난해 탈당해 안 의원 쪽에 합류한 호남의 현역 의원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잖다. ‘창업공신’이라며 이들을 공천으로 ‘대접’한다면 참신한 새 인물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은 실망스러워할 것이다. 공천을 못 받은 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도 안철수 신당엔 악재다. 내부에선 노선 차이도 있다. 독자 정당을 주장하는 참모들과, 친노를 제외한 야권통합을 구상중인 더민주 탈당파들은 온도차가 난다. 특히 김한길 의원은 선거 국면이 무르익으면 안철수 신당의 지분을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질서있는’ 후보 단일화 작업에 나설 것이 예상된다. “내게 오려면 3자구도를 각오해야 한다”는 안 의원의 생각이 변함없는 경우 양쪽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호남의 기대감이 안철수 신당에 계속 머물지도 미지수다.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재인 더민주 대표에게 등돌린 호남의 민심이 잠시 안 의원에게 쏠렸던 것임이 확인될지 모른다.
현재 야권의 문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원칙 없는 이합집산뿐만이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호남과 개혁 진영의 야권 지지층이 밑바닥까지 분열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더민주만의 위기가 아니다. 안철수 신당이 새누리당 지지자 일부와 중도·무당파를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1등만 당선되는 현재 소선거구제에선 야권 지지층이 뭉치지 않고선 더민주도 안철수 신당도 총선 필패가 뻔하다. 안철수 신당은 힘의 우위가 어떻든 친노와의 공존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요한 건, 화성의 거주자들도 지구인들과 대립하지 않고 교신을 이어가야 태양계의 생명체들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유주현 정치에디터석 정치팀장 edigna@hani.co.kr
이유주현 정치에디터석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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