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선거대책위 연석회의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국민의당을 겨냥해 흔든 ‘야권통합’ 카드가 국민의당의 거부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가 야권통합을 풀어가는 방식은 기존 야권연대·통합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 모두 야권 진영은 연대 또는 통합의 형식으로 뭉쳤는데, 이때는 서로의 양보를 전제로 협상에 임했다. 지루하게 밀고 당기는 와중에도 협상 틀을 깨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통합의 티읕(ㅌ) 자도 꺼낼 기미를 안 보였다. 더민주의 ‘현역 하위 평가 20% 컷오프’에 걸린 탈당자(국민의당 입당자)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며 망신 줄 뜻을 밝혔고,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지역구(광주 서을)에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를 전략공천했다. 무엇보다도 김 대표는 안철수 공동대표를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탈당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통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통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더 많았다. 안철수 대표가 김 대표의 제안을 ‘비겁한 정치공작’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양당 모두 공천 작업을 진행중인데 각각 300여명에 이르는 공천 신청자를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도 없었다. 더민주의 한 비대위원은 “국민의당 핵심인 안 대표가 반대하는데 합당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국민의당의 통합추진파 몇몇이 우리 당으로 돌아오는 것 정도일 텐데, 복당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생채기가 많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김 대표가 야권통합을 계속 주장한 것은 국민의당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듯하다. 국민의당 세력이 쪼그라들면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경쟁하는 지역구에서 더민주 후보로 힘이 쏠리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힘의 우위가 명확해지면 후보자 간 단일화가 더 쉬워진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안 대표 쪽 인사들이 통합파들을 향해 “갈 테면 가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던 걸 보면, 일단 김 대표의 ‘국민의당 흔들기’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김종인표 야권통합론’은 무엇을 남긴 것일까? 그는 일단 국민의당이 얼마나 허약한 처지인지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야권통합을 제안하는 이유를 비대위원들에게 설명하면서 “국민의당 내에 야권통합의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거대 양당 독점구도를 깨겠다며 창당한 지 한달밖에 안 된 국민의당이 그만큼 처지가 곤궁했다는 얘기다. 더민주가 확실히 힘의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그는 한때 안 대표와 가까웠지만 ‘안철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안철수 현상’에 회의적이며 안 대표의 역량을 낮춰 본다. 그러나 제1야당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안철수 고립 작전’을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곱게 보기 힘들다. 후보 단일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김 대표가 ‘정치’에는 밝지만 ‘대중’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20대 초반에 할아버지(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가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도하며 정치를 익혔던 그는 장관, 청와대 수석, 4번의 비례대표를 지낸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의제인 경제민주화로 정권 탄생에 기여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엘리트정치에 탁월한 것과 대중의 마음을 읽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치공학만으론 유권자들을 정서적으로 끌어모을 수 없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 전원에게 ‘황진단액’(건강보조식품)을 보내 의원들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그는 정작 이해했을까? 사람들이 왜 그리 필리버스터에 열광했는지, 또 갑작스런 토론 중단 결정에 왜 그리 배신감을 느꼈는지.
이유주현 정치에디터석 정치팀장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