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전 부총리
“안철수, 양당구도를 적대적 공생관계로 보는 시각에 경악
제1야당 와해를 목표로 하는듯한데 역사적 목표 완전 상실
DJ가 아파한 87년 야권분열, 야당하는 분들이 이해해야
김종인, 야당통합 제안은 불가능…연대하는 방안 찾아야
가장 심각한 건 새누리당 영구집권 가능성…우선 막아야 한다”
제1야당 와해를 목표로 하는듯한데 역사적 목표 완전 상실
DJ가 아파한 87년 야권분열, 야당하는 분들이 이해해야
김종인, 야당통합 제안은 불가능…연대하는 방안 찾아야
가장 심각한 건 새누리당 영구집권 가능성…우선 막아야 한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1936년생이니 올해 세는 나이로 여든하나다. 그런데도 그는 요즘 칼바람을 맞아가며 바쁘게 움직인다. ‘다시민주주의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아, 나누어진 두 야당이 총선에서 손을 잡으라고 기자회견도 하고 모임도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지난 8년 동안 우리 역사가 퇴보한 걸 넘어, 120년 전 열강에 의해 갈갈이 찢긴 세월로, 고종시대의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싶다”며 “내가 비록 80을 넘겼지만 내가 겪은 고통을 우리 손주들도 겪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들어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이나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향해 “새누리당의 영구집권을 막으려면 두 사람이 만나야 한다. 내일 당장이라도 만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대표를 비판하고 계시다. 두 분이 인연이 있는 걸로 아는데.
“몇 년 전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했을 때다. 그때 저도 안 대표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이 사람이 새정치를 하겠구나, 잘 하면 한국의 케네디, 오바마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국 정치에 창조적 대안을 가지고 정치세력을 묶는 구심이 되길 기대했다. 격려해주고 싶어 연락을 했다. 안철수 대표가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와서 셋이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정치변화의 동력을 만들려면 남북관계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며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대립하는 두 세력이 서로를 주적으로, 사탄으로 저주하며 초전박살 내려 한다. 겉으로는 증오심이 격발하지만 사실은 자기네 기득권을 강화하고 있다. 두 집단은 갈등해야 정치적 이익을 챙긴다. 그게 남북관계라고 이야기 했다.”
-안철수 대표가 요즘 양당구도를 적대적 공생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그런데 적대적 공생관계를 양당에 적용하는 걸 보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되려면 대립하는 양쪽이 극단적이어야 한다. 더민주의 경우 486이니 하는 운동권 세대들이 낡은 진보가 된 게 아니라 늙은 진보가 됐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집권당을 보면서도 진보성향을 가졌던 젊은이들이 늙어가면서 투쟁의지도 없고 선명한 야당 역할도 못하고 있다. 적어도 디제이(DJ) 와이에스(YS) 만큼 싸우는 결기가 없다. 그게 적대적 공생관계냐, 우호적 공생관계다. 이걸 적대적 공생관계로 보는 안철수 대표의 시각에 경악했다.”
-국민의당은 야당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보이는 정치인식을 보고는 타깃을 잘못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깃은 민주화를 쇠퇴시키는 집권당이 되어야 한다. 새누리당이 부러워하는 정당은 일본의 자민당이다. 자민당이 부드러운 1당 독재다. 일본이 맥아더 군정 시절 국방비 줄인 돈을 경제개발에 쏟아붇고 한국전쟁 때 군수물자를 팔아먹어 경제적으로 제2 강국되면서 1당이 60년간 지배했다.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180석 이상을 얻으면 일본처럼 되는 게 가능해진다. 일본처럼 정말 무서운 연성 파시즘으로 가는 거다. 악마는 겁날 게 없다. 저 멀리서 오는 걸 보고 달아나면 되니까. 그런데 웃으면서 천사처럼 다가오는 악마는 벗어나기 힘들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제일 무섭다. 1억2000만 일본 국민이 그 연성 파시스트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게 국민의당이다. 제1 야당 와해를 목표로 하는 듯하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역사적 총체적 목표를 완전히 상실했다. 제대로 조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안철수 대표를 향해 ‘벚꽃세력’이라고 표현했다.
“1970년대 중반 야당의 당수가 이철승씨이던 시절이다. 그때 내가 조선일보에 <일사일언>이라는 컬럼을 쓰는데 아침 신문을 보니 이철승씨가 미국 LA에서 강연하면서 유신체제를 찬양했더라. 그 기사를 읽고 혈압이 올라서 미리 써놓았던 원고를 찢어버리고 ‘야당의 당수냐 여당의 선전부장이냐’는 제목의 글을 송고했다. 다음날 당수 비서실장이 청년들을 몇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협박을 했다. 새벽 3시에는 ‘한 교수 당신 딸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 줄 알아’라는 협박 전화도 걸려왔다. 당시 국민들이 야당의 그럼 모습을, 야당의 중도통합론을 벚꽃이라고 했다. 그게 떠올랐다.”
-이철승 당수와 안철수 대표가 어떻게 연결이 되나?
“직접 연결이 된다는 건 아니다. 안철수 대표를 이철승 당수라고 할 수는 없다. 기계적 등치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만약에 이번에 분열된 채 총선을 치러서 여당이 180석을 획득한다면 그때는 벚꽃 정도의 비판이 아니라 훨씬 더 아픈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야당은 과거에도 분열한 적이 있다.
“1987년의 경험이 아프다. 6·29 선언 이후 두 김씨가 분열하고 재야도 갈라졌다. 한쪽은 비판적 지지였고 저는 후보단일화 편이었다. 그때 감옥도 같이 갔던 동지들 지식인들이 4자 필승론을 이야기했다. 저는 그때 ‘4자 필승이 아니라 4자 필패야’라고 말하곤 했다. 결과는 4자 필패론이 맞았다. 둘이 합쳤으면 54%가 되는데, 37%짜리 노태우 후보가 이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늘 ‘87년에 양보해서 민주화가 이뤄졌다면 참 좋았는데 그걸 못했다’고 아파하셨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파하는 그 마음을 지금 야당 하는 분들이 이해를 해야 한다. 국민의당이나 더민주나. 국민의당 안에는 공교롭게도 디제이를 모시던 분들이, 디제이를 자기들의 스승이자 멘토로 모셨던 분들이 왕창 들어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승이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늘에서 얼마나 슬퍼할까 싶다. 왜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가까이 모시던 분들이 스승 지도자 멘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는 건지 가슴이 아프다.”
-동교동 세력을 이야기하는 건가?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죠.”
-1987년 그때도 후보 단일화를 못시켰다.
“그해 10월 와이에스를 찾아가 ‘총재님, 김대중씨가 몇살 위죠?’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서너살 위다’라고 하길래, ‘그럼 형님한테 양보하시죠’라고 했다. 와이에스가 ‘한 박사 걱정하지마, 우리끼리 다 생각이 있어’라고 하더라. 나는 그게 서로 경쟁하다가도 선거 하루 이틀 전에는 양보하기로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거 하루 이틀 전인데도 양보할 기미가 안 보여요. 그리고는 둘 다 떨어졌다. 선거 뒤 와이에스한테 전화가 왔길래 분노를 표했다. ‘총재님 정치 떠나세요’라고. 다음날 전화에서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좋은 머리인지 나쁜 머리인지 판단하려면 자기 머리도 좋아야 한다. 몸의 조깅만 하지 말고 정신적 조깅도 하세요. 책도 좀 읽으시고, 주위 사람들하고 토론도 하시고’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 대화내용을 한국일보 컬럼에 쓰기도 했다. 당시 우리는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런 과정이 민주화 노력이었다. 그런데 왜 요즘 지식인들은 언론인들은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야당의 연대가 이뤄지려면 안철수 대표가 움직여야 하는데.
“김종인 대표가 당 대 당 통합을 제안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안 된다, 불가능하다. 김종인 대표가 안철수 대표랑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연대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김 대표가 정치적으로나 연령상으로나 대선배 아니냐. 안 대표가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당 대 당 통합은 아니라는 전제로, 못 만날 이유가 없다. 다시민주주의포럼이 제안한대로 비상정치협상회의 만들어서 우선 수도권 연대하는 방안 논의해볼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건 두 야당 대표가 만나는 거다. 내일이라도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다. 안철수 대표도 연대 방안마저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것까지 거부하면 총선 때 국민이 판단한다. 180석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다.”
-안철수 김종인 두 사람이 서로 불신하고 있다.
“불신은 무슨 불신인가. 나는 정치를 해본 적은 없지만 옆에서 오래 지켜봤다. 정치에서는 동지였다가 적이 됐다가 다시 동지가 되는 게 다반사다. 아주 큰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다 이해된다. 지금 가장 심각한 건 새누리당의 영구집권 가능성이다. 우선은 그걸 막아야 한다. 김종인 안철수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김한길 국민의당 선대위원장은 패권주의 청산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제발 타깃을 잘못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야당을 패권주의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패권주의는 집권여당이지.”
-야당 일각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분 과거를 보면 우려스럽지만 지금은 아니다. 중요한 건 오늘이고 지금이다. 최근 만난 적이 있다. 할아버지 가인 김병로가 60년대 박정희에 맞서 야당 통합을 주도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시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김 대표도 무슨 뜻인지 알고 좋아하더라. 김종인 대표가 잘해야 하는데, 가끔씩 툭툭 던지는 말이 염려스러운 건 있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보자. 이번 총선에서 1 대 1 구도가 왜 그리도 절박한가.
“지난 8년간 한국 민주화는 지속적으로 후퇴했다. 특히 지난 3년간의 후퇴현상은 정말 절박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첫째 헬조선을 만들었다. 지옥을 만든 거다. 청년들은 절망하고 노인 자살률은 오이시디(OECD) 1위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자살충동을 느끼는 절망적 상황이다. 미래가 없는 나라가 됐다. 둘째 선거 때는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으나 당선되고 나서는 안 했다. 낙수효과를 미신처럼 활용하는 것 같다. 셋째 정치민주화를 지속적으로 후진시켰다. 종편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 바른말 하는 목소리는 위축된다. 70년대 <민중과 지식인>을 썼던 나로서는 한탄스럽고 절박하다.
네번째로 국민의 사고를 국가가 통제하고자 하는 국정교과서다. 어릴 때부터 국가가 원하는 사고와 문화를, 인식체계를 집어넣어야 컨트롤이 된다는 거다.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내 친구 송기숙이 7년을 구형받은 적이 있다. 그때가 국정교과서 할 때다. 그런데 그 딸이 대통령 돼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한다. 아, 이것은 유신체제로의 회귀다. 역사의 고통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다섯째는 세월호다. 2014년 4월16일은 1919년 기미만세 사건처럼 기억돼야 한다. 지울 수 없는 정치적 트라우마다. 국가가 그렇게 무능한가. 작은 국가라면 이해한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게다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치다. 무치는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다. 마지막으로 절박하게 느낀 건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은 폐쇄하고 사드는 배치하는 걸 보면서다. 얼마 전 케리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만나서 우리와는 상관없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그걸 보면서 아 이제 우리는 8년 전 후퇴가 아니라 120년 전 세월로 돌아가는구나, 고종시대 대한제국으로 떨어지는구나 싶었다. 내 나이 80을 넘겼지만 책상에 앉아 책이나 볼 수는 없다. 대학생인 내 손주들을 보며 내가 겪은 고통을 저 아이들도 겪게 해야 하나 하는 절박함이 있는 거다.
김의겸 이승준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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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국민의당 내전’, 예고된 참사다/ 더 정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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