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거부땐 총선 책임론 부담
김무성, 결국 파국은 피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 더 멀어져
친박-비박 갈등 임계치 달해
대표 흔들어 조기전대 가능성
김무성, 결국 파국은 피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 더 멀어져
친박-비박 갈등 임계치 달해
대표 흔들어 조기전대 가능성
부산 영도다리는 도개교다. 매일 오후 2시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지만, 때가 되면 또 끊긴다. 하루 만에 봉합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딱 이렇다.
김 대표가 ‘당인’과 ‘당대표 직인’을 들고 벌인 ‘옥새투쟁’은 25일, 총선 후보등록 마감시한을 2시간여 앞두고 대구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인 정종섭(동갑), 추경호(달성) 후보의 공천장에 도장을 찍어주기로 하는 선에서 25시간30분 만에 끝이 났다. 청와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평가가 다소 무색해졌다.
그는 전날 부산으로 내려가 자신의 선거사무소가 보이는 영도다리 위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했던 김 대표는, 이날 서울로 올라온 뒤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면서 “(나와) 청와대와의 관계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그런 생각(반기)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해명으로, 박 대통령과의 결별 선언이나 총선 이후 대선을 내다본 친박계를 향한 전면전 선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굴종남’ 김 대표는 또다시 청와대 앞에서 ‘꼬리’를 내린 것일까. 당내에서는 오히려 친박계가 입은 타격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에게 ‘정종섭·추경호 무공천’은 어차피 거둬들일 협상용 카드였고, 애초 노렸던 목표치를 채웠다는 것이다. 김 대표로서는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며 공천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존심을 일부 세울 수 있었다. 또 이번 공천의 난맥상이 청와대와 친박계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효과도 거뒀다.
반면 갑작스런 옥새투쟁으로 외통수에 몰린 친박계는 유승민(대구 동을)·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을 ‘낙천 후 공천’시키고, 박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유영하(서울 송파을) 후보를 ‘공천 후 낙천’시키게 됐다.
가장 기분이 상한 이는 박 대통령이 분명하다. 이번 옥새투쟁을 거치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거리는 ‘도장 찍고 헤어진’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차피 당대표는 조만간 새로 뽑게 돼 있다. 청와대와 당대표라는 관계는 없어지는 셈이다. 새로운 지도부와 관계를 설정하고 공동운명체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의중을 아는 친박계 쪽도 “일단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넘어가지만 본심을 드러낸 김 대표와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일전을 벼르는 분위기다. 한 친박계 의원은 “선거는 당이 치른다. 청와대를 결부시킬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장 불거진 갈등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당대표라는 사람이 공천 과정에서 모든 사건마다 중심에 서더니, 결국 의석을 두고 어린애처럼 몽니까지 부렸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는 공천 과정에서 꾹꾹 눌러온 계파 갈등이 임계치에 달한 만큼 총선 직후 한꺼번에 터져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김 대표를 흔들어 전당대회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 김 대표로서는 사전에 면밀한 ‘대차대조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협상을 전면 거부할 경우 총선을 앞두고 당을 쪼갰다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어차피 6월께로 예상된 당대표 사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지만, 당대표가 당을 혼란과 분열로 몰아갔다는 비난은 두고두고 부담이다. 자칫 총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청와대와 친박계의 공천 실패는 묻히고 모든 총구가 자신에게 향할 수 있다.
잃은 것도 있다. 당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아무런 힘을 못 쓰다가 막판에 ‘추경호·정종섭 공천’을 카드로 쥐고 정치적 흥정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당 우세 지역에 무공천 사태를 불렀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