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말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4·13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계파싸움으로 낮밤을 보낸 새누리당 내분이 수습 국면에 들어섰다. 혁신형비상대책위원회가 ‘기습 표결’로 유승민 의원을 복당시킨 뒤 비박계 권성동 사무총장이 물러나는 ‘희생제의’를 치르면서, 영 영이 안 섰던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은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탈당했던 의원 7명이 돌아와 제1당으로 등극했다. 8월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젠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방법론을 둘러싼 ‘룰 전쟁’이 본격화될 터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순 없는 일. 새 지도부를 뽑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새누리당은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있다. 바로 지난 총선 패배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4·13 총선 백서 발간을 앞두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민백서’라고 이름 붙여졌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뼈아픈 참패를 한 수도권과 부산에서 6개 그룹을 뽑아 표적집단심층좌담(FGD)을 했고, 익명을 전제로 당 사무처 당직자에게 패배 원인을 물었다. 공약·홍보·정치 등 5개 분야로 나눠 전문가들에게도 서면답변을 받았고, 출입 기자들한테도 설문지를 돌렸다. 당내 경선에 참여했다 탈락했던 후보들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새누리당은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이 결과물을 출판사에 넘겨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고, 외부 전문가들로 감수위원회를 꾸렸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당 내부자가 백서를 쓰면 분란이 일까봐 외부에 맡겼고, 집필을 맡은 5명의 작가와 감수위원 6명이 누구인지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책임론을 회피하고자 애써왔다.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 문턱에서 끌어내린 것도, 비대위원에서 이혜훈·김세연 의원을 배제한 것도 이런 이유가 깔려 있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이듬해 펴낸 민주통합당의 백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엄격하게 규명하고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 관행, 습속, 체질을 적시하며 책임의 소재를 밝힌다”는 목적으로 쓰였다. 이 보고서는 당시 대표 또는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명숙, 문성근, 박지원, 이해찬과 문재인 전 후보의 책임 정도를 점수화해 적시했는데, 이런 계량화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고서는 계파갈등을 가장 큰 패인으로 꼽았으나 계파갈등에 불을 붙였다. 이 백서는 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는지를 규명하기보다는 내부의 잘잘못을 가리는 데 치중했다. 이후에도 계파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사태로 이어졌다.
새누리당의 ‘국민백서’가 친박-비박 간의 계파갈등에 어떤 해석과 대안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4·13 총선 패배의 핵심 원인이던 공천을 주도한 친박계에 대해 얼마나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지도 알 수 없다. 문제는 민심이 새누리당을 왜 떠났는지를 정확히 짚는 것이다. <한겨레>가 총선 이후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모아 실시한 심층좌 담에서 참석자들은 새누리당을 찍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단지 공천 갈등 때문만은 아니라고 답했다. 기초연금 공약
수정 논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보인 정부와 청와대의 무능한 대응,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국정교과서 문제 등 켜켜이 쌓인 실정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이었다. ‘국민백서’는 선거가 끝난 지 석달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새누리당에 이 심판의 무게를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
이유주현 정치 디지털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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