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더블루케이가 입주했던 사무실 현관 앞에서 이 건물 관리인이 “지난 9월말께 사무실이 이사를 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로 꼽히는 최순실(60)씨가 설립 및 인사에 관여한 케이(K)스포츠재단을 활용해 자신이 세운 한국 회사를 거쳐 독일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로 돈을 빼돌리려 한 정황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를 등에 업고서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 설립한 공익법인을 자신의 딸을 위한 사적인 목적에 이용한 것이다. 자금 세탁 및 해외 송금 등의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짙어 이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씨가 지난 1월과 2월에 한국과 독일에 각각 세운 ‘더 블루 케이’(The Bule K)는 이름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게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다. 16일 <한겨레>가 독일 기업정보 사이트인 ‘콤팔리’(Compaly)를 통해 확인한 더블루케이의 주주 현황 자료를 보면 이 회사는 최씨 1인 소유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이보다 다소 앞선 1월12일 한국에 똑같은 이름의 ‘주식회사 더블루케이’(TheBlueK co.Ltd)를 설립한다. 이 회사의 회장 또한 최씨다. 이 기업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대표는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회장은 최순실씨다”라며 “최근에야 회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최순실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조직도에 보면 대표이사 위에 회장이 위치하고 있다.
두 회사는 최씨 소유라는 것 이외에도 동일 인물이 이사를 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영태(40)씨는 최씨가 독일과 한국에 같은 이름으로 세운 더블루케이에 모두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고씨는 펜싱 국가대표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다닌 가방을 만든 ‘빌로밀로’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더블루케이 누리집을 보면, 한국 회사가 모체고 독일 회사는 자회사 성격의 유럽 현지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씨가 같은 이름의 회사를 비슷한 시점에 한국과 독일에 나란히 만든 이유는 뭘까?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케이스포츠재단이다. 최씨가 설립 및 인사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이 재단은 지난 1월13일 설립된다. 한국에 만든 더블루케이를 설립한 지 하루 만이다. 뭔가 긴박했던 최씨의 사정에 맞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케이스포츠를 설립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케이스포츠는 온갖 무리수를 둬가며 재단 설립 신청 하루 만에 허가를 받고 등록까지 마쳤다.
설립 전부터 최씨가 딸 승마 지원을 위해 재단을 만들려고 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케이스포츠는 실제 최씨와 그의 딸을 위한 목적에 활용된다. 심지어 케이스포츠재단 직원들이 최씨 소유의 더블루케이에 출퇴근하면서까지 일한 사실도 <한겨레>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노숭일씨와 박헌영씨가 그들이다. 노씨는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일행의 독일 현지 생활을 돕는 무리의 ‘팀장급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대한승마협회에 정씨에게 승마장 대여 및 훈련을 지도하는 인물로도 소개된 바 있다. 그가 사실은 케이스포츠 직원이었던 것이다. 케이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 양쪽 다 잘 아는 관계자는 “노씨는 케이스포츠 직원으로 등록돼 있어 월급까지 받는다”고 말했다. 케이스포츠 인재양성본부의 또 다른 직원인 박헌영 과장은 최씨와 그의 딸이 묵을 승마 훈련장 인근 숙소 등을 알아보는 과정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 다 최 회장의 심복이다. 이 사람들은 케이스포츠에 출근한 뒤 더블루케이에 가서 일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케이스포츠재단을 단순한 ‘지원 업무’에만 활용하지는 않았다. 케이스포츠재단에 모인 돈을 블루케이를 통해 독일로 보내려 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씨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케이스포츠의 돈 되는 수익성 사업을 더블루케이에 팍팍 밀어줘, 유럽으로 돈을 보내려 했던 것으로 안다”며 “케이스포츠가 독일에 전지훈련장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그쪽으로 돈을 보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익법인으로 설립된 케이스포츠가 최씨 개인 회사에 일감과 돈을 몰아주는 ‘사인법인’ 노릇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씨의 ‘심복’인 노숭일, 박헌영씨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쪽 더블루케이를 거치지 않은 채 직접 최씨의 페이퍼컴퍼니로 돈을 보내려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최씨가 그의 딸과 함께 공동 소유한 ‘비덱 스포츠’(Widec Sports GmbH)는 독일에 세운 더블루케이와 주소도 똑같다. <경향신문>은 18일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을 빌려, 케이스포츠가 이 대기업을 찾아와 비덱 스포츠에 사업 목적으로 80억원을 투자하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케이스포츠가 총대를 메고서 곧바로 최씨 개인 회사에 돈이 흘러가도록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케이스포츠는 한국에 있는 더블루케이를 매개로 때론 직접 나서 독일에 있는 최씨의 페이퍼컴퍼니로 돈이 모일 수 있도록 ‘배관’ 역할을 한 모양새다. 실제 이런 돈들이 정유라씨의 호텔 구입이나 한달에 1억원 이상 들어가는 훈련 비용에 쓰였을 것이라는 게 최씨 주변 사람들의 시각이다. 독일 블루케이의 관리자로 등재된 프랑크푸르트의 박승관 변호사는 <한겨레>의 해명 요청에 대해 “고객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류이근 방준호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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