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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이명박 후보 동교동 왔을땐 ‘햇볕정책’ 동의한다고 했는데…”

등록 2016-10-19 21:10수정 2017-01-09 11:05

[길을 찾아서] 이희호 평전 (78)
제7부 동교동의 날들-3회 촛불시위
2007년 8월29일 박근혜를 누르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뽑힌 이명박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대선 중립’을 요구한 그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동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7년 8월29일 박근혜를 누르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뽑힌 이명박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대선 중립’을 요구한 그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동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7년 8월5일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의원 80명과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 5명이 중심이 돼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은 8월15일 합당을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 창당된 뒤 3년 9개월 만에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돼 사라졌다.

8월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이 박근혜를 제치고 승리했다. 이명박은 경선 기간 중에 벌어진 검증 청문회에서 “차명재산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투자자문회사 비비케이(BBK)의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해서도 의혹을 부인했다. 비비케이 의혹과 상관없이 이명박의 국민지지율은 40%를 넘나들었다. 9월15일 대통합민주신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을 시작했다. 본선에 나선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이 각축을 벌인 끝에 10월15일 정동영이 후보로 확정됐다. 정동영의 국민지지율은 10%대에 머물렀다.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문국현도 10월14일 창조한국당을 출범시켰다. 문국현은 범여권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의 고전이 계속되자 동교동의 걱정도 커졌다. 김대중은 11월22일 문화예술인들이 마련한 ‘2007 창작인 포럼’ 특별강연에서 정치적 보수화 바람으로 ‘국민의 정부’ 이래 축적된 자유화의 성과가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편은 정권이 보수 세력에 넘어가면 과거 50년 동안 계속된 남북 대결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평화세력이 힘을 모아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촉구했어요.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는데, 남편은 ‘자랑스러운 10년’이라고 반박했지요.”

12월4일 김대중과 이희호는 노벨평화상 수상 7돌 기념으로 ‘버마 민주화의 밤’ 행사를 열었다. 그해 8월15일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미얀마 민주 시민의 ‘사프란 혁명’을 지원하는 행사였다. 사프란은 미얀마 불교 승려들이 입는 연황색 승복 색깔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승려들은 9월18일부터 대거 시위에 가담했다. 미얀마 군부는 승려와 시민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연장했다. “남편은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어요. 그날 우리는 ‘버마 민주화의 밤’ 행사에서 모금한 4만 달러를 수치 여사에게 전달했지요.”

12월3일 국민중심당 대통령 후보 심대평이 무소속 대통령 후보 이회창으로 후보 단일화를 한다고 선언했다. 12월4일 창조한국당 대통령 후보 문국현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정동영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의했다. 두 사람은 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12월5일 비비케이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한 서울 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이명박의 동업자 김경준을 횡령·주가조작 혐의로 구속하고, 이명박의 의혹에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12월16일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명박 비비케이 동영상’을 공개했다. 2000년 10월17일 이명박이 광운대 최고경영자과정 특강에서 “금년(2000년) 1월에 비비케이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발언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비비케이 사건 재수사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명박은 대통합민주신당이 내놓은 ‘비비케이 특검 법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특검팀은 이명박과 비비케이 주가조작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2008년 1월 재임시절 장차관 신년회
김대중 “민주주의·남북관계 앞날 불안”
4월 하버드대 특강때도 ‘햇볕정책’ 열변

6월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50만명
“정부에 항의하는 방식이 놀라웠지요”

8월 도쿄생환 기념 장남네서 가족모임
“파킨슨병 홍일 보며 얼마나 괴로운지…”

11월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식 화제
“남편이 내게 90도 인사해 깜짝 놀랐죠”
함께 의상실 가서 평생 첫 옷선물도

12월19일 17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야당의 압승이었다. 이명박은 48.7%의 득표율을 올려 26.1%에 머무른 정동영을 따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 시절에 동교동을 방문했어요. 남편이 ‘햇볕정책’을 설명하니까 자기와 생각이 똑같다고 했지요. 그런데 당선된 뒤에 영 딴 길로 가고 말았어요.” 김대중은 정권이 보수 진영으로 넘어간 것에 낙담했다. 2008년 1월1일 김대중 정부 시절 장차관 신년회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렸다. 김대중은 “내가 정치를 한 이래 반세기 동안 (진보세력이) 이렇게 처참하게 진 것은 처음이었다”며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2008년 2월10일 밤 국보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화재 장면에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2월14일 이명박 정부 첫 내각의 장관 후보자 15명이 발표됐다. 편중인사를 풍자하는 ‘고소영’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신도, 영남 출신’의 앞 글자를 딴 말이었다. 2월25일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걱정이 많았어요. 당선되자마자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내보여서 실망했지요.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걱정스러웠고요.” 4월9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야당이 된 진보세력은 여전히 신임을 얻지 못했다. ‘뉴타운 공약’을 앞세운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었고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든 통합민주당은 81석에 머물렀다.

2008년 4월15일 이희호와 김대중은 미국을 방문했다. “포틀랜드대학에서 남편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 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을 방문했지요. 남편이 1980년대 미국 망명 중에 하버드대학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곳이어서 감회가 컸지요. 24년 만의 방문이었어요. 하버드 시절에 남편은 연구 논문 쓰는 중에 미국 곳곳에서 한국 인권 상황을 알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요.” 김대중은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햇볕정책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정권을 향해 던지는 외침이었다.

2008년 4월15일 이희호와 김대중은 미국을 방문했다. 80년대 초반 망명생활을 했던 하버드대학을 24년 만에 다시 찾은 김대중이 케네디스쿨에서 ‘햇볕정책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08년 4월15일 이희호와 김대중은 미국을 방문했다. 80년대 초반 망명생활을 했던 하버드대학을 24년 만에 다시 찾은 김대중이 케네디스쿨에서 ‘햇볕정책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08년 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 4월29일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영했다.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졌다. 5월2일 서울 종로 청계광장에서 쇠고기 협상 무효를 주장하는 촛불집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참가 인원이 1만 명이 넘었다. 촛불집회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었지만 그 밑에 깔린 것은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행에 대한 반발이었다. 5월6일 170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가 출범했다. 5월10일 촛불시위 참가 인원은 3만 명을 넘어섰다.

5월29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했다. 5월30일 촛불을 든 수만 명의 시민이 서울시내 중심가를 메웠다. 시위는 축제처럼 진행됐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한 시민들은 거리에 모여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학생들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들까지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로 만들어 함께 부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 “남편과 나는 촛불집회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봤지요. 정부에 대한 항의를 표출하는 방식이 놀라웠지요.”

5월31일 밤 촛불시위대는 청와대에서 1㎞ 떨어진 지점까지 나아갔다. 경찰은 병력 1만 명과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를 막았다. 6월1일 촛불집회 인원은 10만 명으로 늘었다. 대통령 이명박의 국정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81.2%)이 ‘재협상은 필요 없다’는 의견(15.6%)을 압도했다. 6월6일 이명박은 ‘재협상 불가’를 선언했다. 촛불이 더 거세게 타올랐다. 6·10항쟁 21돌 기념일인 6월10일 촛불시위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졌다. 서울의 촛불집회에는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가했다. 광우병대책회의는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 한복판을 5.4m 높이의 컨테이너 장벽으로 막았다. 시민들은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고 불렀다.

6월12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8돌 기념식에서 김대중은 촛불시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민주주의 이래 처음으로 한국에서 다시 그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는 인터넷과 문자메시지를 통한 온라인과 촛불문화제의 오프라인의 연대 속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평화적인 대중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중요한 정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 요구를 수렴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6월19일 이명박은 기자회견을 열어 “아무리 시급한 국가적 현안이라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챙겼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쇠고기 협상 파문에 대해 사과했다. 이명박은 30개월 이상 된 미국 쇠고기가 수입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광우병대책회의는 ‘전면 재협상’을 요구했다. 촛불은 그 뒤로도 두 달 동안 타올랐다.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한 명이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새벽 산책을 하러 갔다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책임은 남쪽에 있다며 현장 조사를 거부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잖아요. 남북화해의 상징이 금강산 관광이었는데, 그 길이 막혀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8월4일 말레이시아 말라야대학이 김대중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주었다. “그때 남편 대신 내가 가서 학위를 받았어요. 말라야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고 학생들과 환담하기도 했지요. 그 학교에 그해 한국어학과가 생겨서 마음이 뿌듯했어요.” 말라야대학은 학위수여문에서 김대중의 삶을 되돌아보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이렇게 조각조각 설명한다고 해서 그의 인생 드라마 전부와 그 위대함을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그의 인생을 돌아봄으로써 그의 삶의 핵심을 되새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8월13일 도쿄 납치 생환 기념일을 맞아 김대중과 이희호 가족이 모두 모였다. “홍일이가 움직이기 어려워서 서교동 홍일이 집으로 갔어요. 남편은 아들이 파킨슨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몹시 가슴아파했지요. 홍일이는 착하고 나를 잘 따랐어요. 아버지한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다 이야기했지요. 말도 못하고 누워 있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2008년 10월2일 김대중과 이희호는 중국 방문길에 북한 접경인 단둥에 들러 압록강 철교 너머로 신의주를 바라보며 냉전시대 마지막 분단국인 남북의 통일을 기원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08년 10월2일 김대중과 이희호는 중국 방문길에 북한 접경인 단둥에 들러 압록강 철교 너머로 신의주를 바라보며 냉전시대 마지막 분단국인 남북의 통일을 기원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0월2일 김대중과 이희호는 중국인민학회와 선양시가 주최한 ‘동북아지역발전협력포럼’에 참가했다. “남편이 기조연설을 했어요. 그 뒤에 우리는 북한 접경에 있는 단둥으로 갔지요. 압록강 너머로 신의주가 보였어요. 남북이 지구상에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2008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가 당선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참 무능한 사람이었어요. 부시 정권 8년 동안 미국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어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미국이 흑백차별의 악습을 극복했다는 의미가 있어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랐지요.”

11월11일 이희호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남편이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제목으로 제안했어요.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해 제목에 넣었지요. 그날 출판기념식에서 남편이 일어서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인사를 받고 깜짝 놀랐지요.”

2008년 11월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이희호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해서 화제를 낳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8년 11월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이희호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해서 화제를 낳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 무렵 이희호와 김대중은 자주 차를 타고 한강변을 둘러보았다. “퇴임 뒤에도 활동을 많이 했지만 정치 현장에 있을 때보다는 시간이 많이 났어요. 점심을 먹고 나면 한강변이나 서울 교외로 차를 타고 나갔어요. 남편이 사극을 좋아해서 집에서 드라마도 함께 보고요. 밤에 자기 전에는 한 시간 정도 노래도 같이 불렀지요. 찬송가도 부르고 가곡도 부르고 유행가도 부르고요. ‘만남’ ‘사랑이여’ ‘목포의 눈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런 노래들을 많이 불렀지요.” 그 무렵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남편이 나에게 의상실에 가자고 하더니 옷을 한 벌 사주었어요. 그게 남편한테서 평생 처음 받아본 옷 선물이었어요.”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자주 농담을 건넸다. “남편이 꽃가꾸기를 좋아했어요. 꽃이 활짝 피면 꽃구경 값을 달라고 해요. 나는 돈이 없다고 종이에 차용증을 써주었지요. 10만원을 써주기도 하고 100만원을 써주기도 하고요.”

2008년 12월16일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8돌 기념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가 열렸다. 김대중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가 후퇴해 3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의 재개발구역 철거민 농성장을 경찰특공대가 습격했다.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진압에 맞서던 철거민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도 한 명 숨졌다. 옥상에 쌓아둔 시너가 폭발해 일어난 참사였다. “가슴 아프고 통탄스러운 일이었어요.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야만적 처사에 분노했지요. 국민을 적으로 여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나라의 상황이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웠지요.”

글·인터뷰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인터뷰 녹취정리 유선희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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