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보다 후퇴한 문 발언 왜?-
2012년엔 차별금지법 제정 약속
당 차원 집권전략 수정 드러난 셈
문 후보 스스로도 감수성 무뎌진 듯
안철수·유승민도 차별금지법에 모호한 태도
2012년엔 차별금지법 제정 약속
당 차원 집권전략 수정 드러난 셈
문 후보 스스로도 감수성 무뎌진 듯
안철수·유승민도 차별금지법에 모호한 태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25일 텔레비전 토론에서 “동성애에 반대하십니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거듭된 질문에 “반대하죠”라고 답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도 했다. 이런 태도는 5년 전의 ‘대통령 후보 문재인’과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보수 기독교 표를 의식한 당 차원의 집권전략을 반영한 것이고, 문 후보 스스로 이 사안에 감수성이 무뎌진 것이기도 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2년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그는 “동성 커플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자”고 했고 차별금지법 제정도 약속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으로, 참여정부 때인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추진됐으나 18·19대 국회에서도 무산됐다. 차별금지의 항목에 ‘성적 지향’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이를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패배의 아픔을 겪고 재기에 나선 문 후보와 민주당은 일찌감치 차별금지법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문 후보는 지난 2월 보수 성향의 개신교 모임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목사들을 만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당 입장이 확실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며 한기총 목사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번 4차 토론에서 나온 문 후보의 ‘동성애 발언’은 표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서 동성애자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많다. 26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회원 10여명은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 선언’에 참석한 문 후보자를 향해 “성소수자도 사람이다. 사과하라”며 격하게 항의했다. 문 후보 선대위 안에서는 이번 일을 “말이 헛나온 것 같다”, “홍준표 후보가 불쑥 질문하니 당황해서 그런 것”이라며 ‘단순 실수’로 넘기려 하고 있다. 선대위 관계자는 “기독교계 표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진보 쪽에서 욕을 먹어도 (동성애에 거리를 두도록) 그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하도 많이 하니 후보도 무뎌진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성평등 공약 개발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공약 초안에 집어넣었으나 삭제됐다”며 “2017년 정도 됐으면 강력한 젠더 정책이 나와야 마땅한데 문 후보 쪽은 너무 타협적”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차별금지법이나 동성혼 합법화 등 성소수자 관련 입법사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26일 강원 춘천 유세 뒤 기자들이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적절한 기회에 말씀드리겠다”고만 답했다. 안 후보 쪽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정돼야 한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동성애를 차별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태규 김미향 최혜정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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