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그린 대선여지도] ⑥ 워킹대디
지난해 육아휴직 중 첫째 아이를 업고, 막내를 안고 있는 윤형중 기자의 모습. 글, 사진 윤형중 기자
온종일 홍준표 후보 취재 전쟁
늦은 밤 집에 오면 이미 잠든 아이들
칼퇴근하면 달려와 안길 텐데 운 좋게 나는 아빠 육아휴직 했지만
주변에선 “불이익 당하면 어쩌려고…”
실질적인 보장제도 절실 그런데 말이죠. 아빠들이 일터에서 당당하게 워킹대디라고 주장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워킹맘’들이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육아로 인해 일터에서 차별받는 일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모두 80조원을 썼다고 합니다. 한국이 초저출산 국가(합계출산율 1.3명 이하)로 접어든 지 올해로 17년째입니다. 작금의 저출산 현상은 정부가 어떤 특단의 대책을 써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올해는 출생아 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할 거란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죠. 이번 19대 대선에서 많은 후보들이 여러 공약을 발표하며 일과 삶의 균형과 저출산 극복을 약속했습니다. 대선 후보들을 밀착 취재하는 워킹대디는 삶 속에서 그런 공약들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우리 집의 하루는 보통 막내 녀석의 울음소리로 시작합니다. 돌이 갓 지난 아들은 아직도 자는 중에 한번씩 배고파서 깨곤 합니다. 마치 알람시계처럼 오전 5~7시 사이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네 살 딸, 두 살 아들과 한방에서 자는 우리 부부는 울음소리가 나면 한 명이 일어나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옵니다. 그렇게 아기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분유를 탑니다. 적당히 데운 물과 분유를 젖병에 넣고 흔든 뒤 아기 입에 물려주면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오물거립니다. 배를 채운 아기는 한 두시간을 더 새근새근 자는 편이죠. 그때부터 어른들은 세수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지난 4월20일은 조금 다르게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새벽에 아기가 울지 않았는데도 눈을 떴습니다. 창밖은 어스름한 하늘에 붉은빛이 감돌았습니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벽시계를 보니 6시가 다 됐습니다. 정치부에서 자유한국당 출입을 하는 저는 이날 아침 7시반에 국회에서 출발해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이 당의 홍준표 대선 후보가 아침에 인천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종일 수도권 지역을 돌며 유세를 다닐 예정이었죠. 늦지 않으려면 30분 안에 나갈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냉수를 한잔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니, 전날 밤늦도록 아기들과 노느라 어질러진 살림살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장난감 정도는 바구니에 담겠지만, 이날은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잔을 싱크대에 올려놓을 때, 설거지통에 있는 젖병 여섯 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젖병을 다 썼네요. 아침에 젖병이 없으면 일어나자마자 배고파 우는 아기를 달래지도 못하고, 설거지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기 우는 소리에 첫째 아이도 깨고, 전쟁 같은 일상이 시작되곤 하죠. 조금 뒤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눈앞에 선했지만,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근 뒤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윤형중 기자의 모습. 글, 사진 윤형중 기자
심상정 후보 공약 가장 적극적 육아휴직급여 사후지급 폐지
유일하게 안철수 후보만 약속 육아 위해선 근로시간 단축 필수
여러 후보 연월차 의무소진 주장 19대 대선 후보들은 남성의 육아휴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며 여러 공약들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을 만한 공약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승진과 보직에 있어서 불이익을 주는 기업에 벌칙을 주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 내용은 이미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있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죠. 홍준표 후보는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1년씩 사용하면, 부모 중에 한 사람에게 3개월의 휴직을 추가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도 회사 눈치를 보며 육아휴직을 못 내는 아빠들이 어떻게 3개월을 더 휴직할지 의문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근로감독관을 늘려 육아휴직을 막는 사례가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위반 사례를 적발하려면 노동자가 일단 육아휴직을 신청해야 합니다. 안 후보의 이 공약은 휴직신청 자체를 꺼리는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선 별도 내용이 없습니다. 지난달 26일 티브이 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여성이 3년 휴직하고 나면 별로 잘못한 것 없어도 영원히 퇴출된다. 유 후보의 의지는 좋지만, 아빠 엄마가 함께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심 후보는 공약에서 부모 모두가 최소 3개월씩 육아휴직을 쓰도록 의무화했습니다. 그는 아빠 육아 활성화에 가장 적극적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오후 1시에 평택 해군2함대에 도착했습니다. 연평해전 전적비와 천안함 추모비를 찾은 홍 후보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확실히 예우하겠다”며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과도하다. 이를 바로잡겠다”는 내용의 보훈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영내를 둘러보고 해군2함대를 빠져나오니 오후 2시였습니다. 기자들을 태운 버스는 다소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평택의 한 부대찌개집을 향했습니다. 때늦은 식사지만 느긋하게 먹을 순 없었습니다. 다음 일정은 용인 중앙시장에서 오후 4시반에 있었습니다. 뒤늦게 끼니를 챙기는 일은 휴직 기간에도 잦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아기들의 하루 세끼를 챙기면 금세 하루가 흘러가곤 했습니다. 아기들을 먹이고 씻겨도 저 자신은 먹고 세수할 시간조차 내기가 힘듭니다. 아기들 먹이느라 기력을 다 쏟고, 지친 나머지 아이들이 남긴 것만 먹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아기들 돌보고 집안일 하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머리 떡지고 수염이 거뭇하게 자란데다 눈곱도 안 뗀 이상한 아저씨가 절 쳐다보고 있어 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현재 육아휴직자는 고용보험기금에서 매달 통상임금의 40%를 50만~100만원 한도로 받습니다. 모든 대선 후보들이 이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홍 후보의 공약이 가장 파격적입니다. 홍 후보는 현재의 지급률(통상임금의 40%)과 상한액(100만원)을 모두 두 배로 올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오히려 진보 쪽 심상정 후보는 지급률을 통상임금의 60%, 상한액을 150만원으로 공약했습니다. 저는 육아휴직 기간에 한 달에 75만원의 급여를 받았습니다. 월 통상임금이 250만원 이상이라 상한액인 100만원을 받는 대상이었으나, 급여의 25%는 복직 후 6개월 뒤에 일괄지급하는 ‘사후지급제도’ 적용을 받았습니다. 이 사후지급제도는 육아휴직을 이용한 뒤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라는데,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노동자 대다수는 오히려 회사로부터 받을 불이익을 우려하는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회사 쪽이 계약연장을 하지 않아 복직 후 6개월 근무연한을 채우지 못하면 이 사후지급분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를 공약에 반영한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유일합니다. 안 후보는 육아휴직급여 사후지급제도를 폐지하고, 복직 뒤 90일간 해고 금지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오후 5시 홍 후보가 용인 중앙시장에서 유세 연설을 마쳤습니다. 이날 오후부터 그가 2005년에 발간한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자서전에서 돼지발정제로 친구들과 한 여성 강간 모의 내용을 밝힌 게 알려졌습니다. 유세 현장에 홍 후보와 함께 있던 기자로서 이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번 질문을 받지 않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저는 애초 서울로 돌아가는 시간을 고려해 마지막 일정을 건너뛰고 퇴근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돼지발정제가 워낙 논란이 커 후보의 마지막 일정이 있는 수원 지동시장으로 이동해 그를 기다렸습니다. 이 일정에는 상인들과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현장 기자들은 절대 놓치지 말고 꼭 질문을 하자며 함께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는 대중연설만 마치고 상인들과의 만남을 전격 취소한 채 황급히 차에 올라탔습니다. 경호원들에게 정신없이 밀리는 와중에도 한 기자가 “후보님, 자서전에 돼지흥분제…”라고 소리쳤지만, 후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답변을 받는 데 실패하고서 저를 포함한 기자 세 명은 저녁 7시반께 수원역 근처 식당에 앉았습니다. 식사를 주문하고 나오기 전 시간을 활용해 세 사람은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곧 비빔국수 하나와 잔치국수 두 개를 앞에 두고 서로의 근무여건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기자는 지난 한 달간 평균 주 6.5일을 근무했고, 하루에 10시간가량 일했습니다. 어림잡아 한 주에 65시간을 일한 셈입니다.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근로시간 주 52시간으로 단축, 돌발노동 방지 등의 공약에 대해 이 기자는 “나뿐 아니라 다른 직종에 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현실성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기자는 “주5일 근무제를 처음 시행했을 때도 지금처럼 현실성이 없었을 거다. 그런 취지에서 (멀리 보면) 후보들의 공약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연단 앞 쪽에 주저 앉아 유세 중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발언을 노트북에 옮겨 적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윤형중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