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결과만 알아봐 달라고 한 거예요.”
법 그물망은 촘촘해 보이지만 똑똑하고 성실한 욕망 앞에서는 성겨진다. 청탁자는 그물 피하는 법을 잘 안다. 시시티브이와 통화 녹음이 일상인 상황에서, 드러나게 돈을 주거나, 압력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메시지는 간접적으로 두루뭉술 전달되고, 대가는 시차를 두고 우회해 건네진다. 간혹 그물에 걸리더라도 꼬리만 남고 몸통은 빠져나간다. 재판 중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래서 ‘운이 없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꼭 1년 전 김영란 전 대법관이 만든 새 그물이 던져졌다. 바뀌었을까? 욕망은 똑똑하고 성실한데….
2015년 2월 당시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을 상정하고 있다. 부정 인사청탁을 금지하는 이 법은 지난해 시행돼 28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의 비서실장은 한해 수십건의 채용 청탁을 받아왔다고 <한겨레>에 27일 말했다. 청탁 대상자의 이력서, “잘 좀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국회의원·지역유지·지인 등으로부터 받는 ‘취업 민원’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요즘은 잘 들어주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안 들어온다. 김영란법 이후엔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시행 1년을 맞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채용 청탁을 움츠러들게 했다. 실제 이 법 5조(부정청탁의 금지)는 “채용·승진·전보 등 공직자 등의 인사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어기면 청탁자에게 1천만~2천만원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청탁을 수행한 공직자 등에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난 1년 사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인사 등을 비롯해 부정청탁을 신고한 건수는 179건에 이른다.
실제 법 적용과 별도로 부정청탁금지법이 채용 청탁에 미치는 일종의 ‘예방 효과’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회를 대상으로 로비를 하는 한 금융사 대관 담당은 “(국회 쪽 청탁이) 있긴 한데 예전보다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과 기업 쪽에 채용 청탁을 모아 전달하는 국회 쪽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한 야당 의원실의 보좌관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확실히 줄었다. 청탁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하는 사람은 하겠지”라고 말했다. 채용 청탁을 받는 처지에선 김영란법이 좋은 핑곗거리다. 한 광역단체장 비서실장 역시 “청탁을 받는 것 자체가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과거엔 일단 이력서라도 받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이 예방을 넘어 실제 형법상 업무방해 등의 법 적용을 보완해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법령 위반’을 전제로 하는 탓에 그(부정청탁)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청탁자나 청탁을 전달한 공무원에게는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만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현준 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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