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일 백악관에서 철강, 알루미늄 업계 경영진과 만나 수입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과 북한이 만날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일(현지시각)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대화의 불씨를 북-미 대화로 옮겨붙이는 첫 단계로 대북 특사단 파견을 공식화한 시점에 맞물려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적절한 조건”을 요구하며 대화의 문턱을 높인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북-미 대화를 정해진 수순처럼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사를 최대한 파고들어 향후 북-미 대화 중재에 초점을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북한이 며칠 전 전화해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그는 “그래서 내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들은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말했다. 또 “아마도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 수 있다. 그게 사실이길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며 “우리(미국과 북한)는 만날 것이고,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직접 대화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도 배제하지 않겠다. 미친 사람을 상대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그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청와대가 대북 특사단을 파견한다고 발표한 뒤 나온 것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설명 요구에 답변을 내놓지는 않았다. 북한이 전화했다는 게 미국과 직접 얘기한 것인지, 아니면 평창겨울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방남했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밝힌 “미국과 대화 용의” 발언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지난달 25일 “적절한 조건”에서만 대화할 수 있다던 것에 견주면 좀더 적극적인 태도로 풀이된다. 이번에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북한에 말해줬다고 한 것은 당시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한 대목은 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좀더 띄우는 것으로 읽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평양에서 중재의 성과를 낼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일 수 있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대목은 다소 허세가 섞인 말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언론들은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해온 그가 이번 행사에서 여러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잡으려 시도했다고 전했다. “미친 사람”(트럼프 대통령 자신)을 상대해야 하는 위험을 김 위원장이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우스개 차원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북한과의 대화 의사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은 대북 특사단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뒤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귀국 뒤 이른 시일 안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중국 류옌둥 부총리를 만나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특사단을 통한 문 대통령의 북-미 대화 중재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야 하는 시점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노지원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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