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23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일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110억원대 뇌물수수 및 350억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한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이 구속 이전에 작성한 글을 통해 “검찰의 기소와 수사결과 발표는 본인들이 그려낸 가공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초법적인 신상털기와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결과”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검찰은 나를 구속기소함으로써 이명박을 중대 범죄의 주범으로, 이명박 정부가 한 일들은 악으로, 적폐대상으로 만들었다”며 글을 올리고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하나씩 언급하며 검찰을 반박했다.
우선 그는 검찰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검찰은 일부 관제언론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무차별적으로 유출해 보도하도록 조장했다. 그 결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덧씌워진 혐의가 마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왜곡, 전파됐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헌정사상 유례없는 짜맞추기 표적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속된 이후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며 구속 수감 뒤 검찰 조사를 거부한 이유도 밝혔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이라는 기존의 주장도 되풀이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명박이 목표다’는 말이 문재인 정권 초부터 들렸다. 그래서 솔직히 저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한풀이는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제가 지고 가야할 업보라고 생각하며 감수할 각오도 했다”면서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저를 겨냥한 수사가 10개월 이상 계속됐다. 무려 1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가히 ‘무술옥사(戊戌獄事)’라 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입장 발표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달 22일 밤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 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는 입장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재판을 앞두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보수층을 의식한 듯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안보의 최일선에 섰던 국정원장과 청와대 안보실장, 국방부장관들은 거의 대부분 구속 또는 기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에게 씌워진 죄명이 무엇이든 간에 외국에 어떻게 비칠지, 북한에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또 “문재인 정권은 천안함 폭침을 일으켜 46명의 우리 군인들을 살해한 주범이 남북화해의 주역인양 활개 치고 다니도록 면죄부를 주었다”며 천안함과 남북관계를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깊이 분노한다. 국민 여러분께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십시오”라며 노골적으로 진보·보수 프레임을 부각시켰다.
이 전 대통령의 입장문 마지막 부분엔 “이 성명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 이전에 작성해 기소 시점에 맞춰 발표하도록 맡겨놓은 것이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다음은 자신의 혐의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반박이다.
◎ 국정원 특활비 전용 문제
이미 말씀드렸듯이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일이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나 제 지휘 감독 하에 있는 직원들이 현실적인 업무상 필요에 의해 예산을 전용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 다스 소유권 문제
저는 다스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설립에서부터 운영과정에 이르기까지 경영상의 조언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스’는 다스 주주들의 것입니다.
다스는 30년 전에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맏형에 의해서 가족회사로 운영되어 왔습니다.‘실질적 소유권’이라는 이상한 용어로 정치적 공격을 하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더구나 다스의 자금 350억원을
횡령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 문제
다스의 소송비와 관련하여 삼성이 관여되어 있다는 주장을 저는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워싱턴의 큰 법률회사가 무료로 자문해주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 이후에 챙겨보지 못한 것은 제 불찰입니다. 그러나 삼성에 소송비용을 대납하도록
요구했다느니, 삼성의 대납 제안을 보고 받았다느니 하는 식의 검찰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대가로 이건희 회장을 사면했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입니다.
당시 이 회장은 IOC 위원 신분이 박탈될 위기에 있었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기여하도록 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와 각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면하였습니다. 저는 저에 대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이 법정에서 그 진위가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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