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지난 9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 개원 70돌 기념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정서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주요 피의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자본·언론과 결탁하는 권력자로 주로 소비되고, 뉴스에서는 막말을 하며 싸우거나 ‘갑질’을 하는 문제적 상황이 부각된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하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라는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정치개혁의 요체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가장 큰 장벽이 남아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치 혐오’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고, 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당 등 야 3당이 강력히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를 가능한 일치(비례성 강화)시키는 것을 뼈대로 한다. 한마디로 ‘민심’을 국회 구성에 제대로 반영하자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1위를 한 이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자금력·조직력에서 열세인 소수정당이 지지율에 걸맞는 의석수를 확보하려면 비례대표 의원 수가 충분해야 한다. 현재처럼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의 구조로는 ‘민심 그대로’의 국회 구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이에 합의할 의원은 없다. 지역구 통폐합 과정에서 자칫 현재도 낮은 농어촌의 대표성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의석을 나눌 수 있는 비례대표 의원수를 ‘충분히’ 확보하려면 현행 300명인 국회의원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얼마 전까지도 금기어에 가까웠다.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비판여론과 ‘혐오’ 정서에 편승해 오히려 정치개혁 방안으로 ‘의원수 축소’를 주장한 의원도 여럿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의원이 그랬고, 최근에는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의원정수를 200명으로 줄이자는 안을 냈다.
지금도 우리의 국회의원 정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 중 31위로 현저히 적은 편이다. 34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 평균은 9만9469명인데, 한국은 의원 1명이 16만7400명을 대표한다. 의원 1명이 대표해야 할 국민의 숫자가 국제 평균보다 1.7배 많다는 얘기다.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늘어난 인구수만큼 민의를 반영할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원정수 확대는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집단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막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이다. 국민들의 반감이 강하니 의원정수 확대는 어렵지 않겠냐는 취지다. 좀 더 정확히는 의원정수 확대가 안 될테니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게 속내로 보인다. 두 당은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되면 정당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어 선거제를 바꾸고 의원수를 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의원수 확대가 왜 필요한지를 적극 설득하기는 커녕, ‘국민 여론’을 방패삼아 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 읽힌다.
좀 더 나은, 다른 세상을 위해선 법을 만들고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의 구성이 다양화해야 한다. 여성, 청년, 성소수자, 장애인 등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국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표자들이 입법부에 자리하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또 300명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한다며 손가락질하고 답답해하느니, 국회의원 수를 늘려 제대로 일을 하도록 채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예산 낭비와 특권을 없애고 세비와 보좌진을 조정해, 현재 6300억원대인 예산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국회의원을 ‘공복’으로 부리는 편이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국회의 질입니다. 소모적 정치공방에 발목 잡힌 국회보다, 국회의원이 100여명이 늘어나더라도 그 국회가 더 생산적일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어볼 때다.
최혜정 정치팀장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