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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민주대연합론’이란 정치적 복음의 유효기간은?

등록 2020-03-20 20:25수정 2020-03-21 02:34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위하여’ 우희종(맨 왼쪽), 최배근(맨 오른쪽) 공동대표와 이에 참여한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등 4개 소수정당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위하여’ 우희종(맨 왼쪽), 최배근(맨 오른쪽) 공동대표와 이에 참여한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등 4개 소수정당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848년 혁명의 첫날 밤, 프랑스 파리 곳곳에서 매우 기이하면서 의미심장한 사건이 벌어진다. 시내 도처의 시계탑을 향해 동시다발적 총격이 가해진 것인데, 아무런 약속이나 교감 없이 이뤄진, 시민들의 우연하고 자생적인 돌발행동이었다. 발터 베냐민은 훗날 이를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혁명기 시민들의 무의식적 집합행동으로 규정하면서 사건을 역사의 무대 위로 재소환한다. 삶의 진정한 변화는 무한반복되는 동질적 시간 연쇄를 가차 없이 파괴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비운의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베냐민의 역사철학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유대교 종말사상이다. 묵시문학의 형태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종말사상에는 폭력과 참상으로 얼룩진 현행 질서가 무너진 뒤 심판의 시간과 함께 올 새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이 담겨 있다. 대표적 묵시문학인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폭압 통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들에 의해 쓰인 사실은 정치적 시사점이 적지 않다.

시대의 요청으로 등장한 종말사상은 뿌리부터 급진적이다. 피억압자들은 삶이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아진다는 진화론적 역사관에 쉬이 설득되지 않는다. 그들이 절감하는 삶은 60년 전 할아버지의 그것이나 30년 전 아버지의 그것과 매한가지로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비애극을 닮아 있는 까닭이다. 고난이 반복되고 약속은 유예되는 현실 앞에서, 역사는 그저 ‘파국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질적 시간의 이어짐일 뿐이며, 종말은 이 일상화된 파국의 연쇄를 끊는 ‘진정한 파국’의 다른 이름이다.

이 종말사상은 현대정치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그러나 현대의 종말론은 본래의 급진성을 잃고 현행 질서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정치적 동원의 이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엔 보수와 리버럴이 따로 없는데, ‘적들의 영구적이고 최종적인 승리’가 가져올 종말적 재앙을 과장하며 진영의 단단한 결집을 도모하는 것이 현대정치의 필수 테크놀로지가 된 탓이다. 리버럴은 ‘보수의 영구집권’을, 보수는 ‘좌파의 천년왕국’이란 상상 속 미래를 호출해 현실의 권력을 다지는 데 골몰한다. 종말이 끝장내려던 동질적 시간의 연쇄를, 그 종말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강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 ‘전도된 종말론’의 주기적 출몰은 한국 정치의 특성이기도 하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자 ‘구체제와의 절연’과 ‘촛불혁명의 완성’을 약속했던 집권여당과 리버럴 명망가들은 30년 넘게 반복해온 ‘정치적 복음’을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파국적 종말(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십자군(비례연합정당)의 깃발 아래 모여 적그리스도(적폐 세력)의 공격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자.’ 보수의 영구집권(재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리버럴의 차이를 지우고 민주당 주도 아래 뭉치자는 ‘민주대연합론’의 확장판이다.

이 영원회귀적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유권자들 각자가 결정할 몫이다. 다만 생각해볼 문제는 ‘민주화의 성과물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역사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다른 세상’을 꿈꾸는 소수파에게 ‘불만과 인내의 시간’을 강요하는 전도된 종말론을 어느 시점까지 용인해야 하느냐다.

시계탑에 총을 쏴 시간을 멈추게 하려 했던 1848년 파리의 그 ‘여호수아들’처럼, 2016년의 우리는 반칙과 특권, 불의와 불평등의 시간을 멈춰세우기 위해 촛불의 광장을 메웠다. 그러나 촛불이 정지시키려 했던 그 시간은 어찌 되었는가? 반복되는 냉소와 환멸의 시간을 멈춰세우기 위해 민의의 시계탑을 향해 종이 탄환을 날려보낼 자는 또 누구인가? 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코로나 시대’의 아침,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무거운 질문이다.

이세영 정치팀 데스크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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