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년, 정의당은 난바다를 표류하는 무동력선이었다. 연안으로 인도할 구조선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 한국 진보정당이 감당할 만한 민심 적재량의 최대치였다. 지난여름에서 올해 봄까지, 오늘의 정의당을 만든 다섯개의 결정적 장면을 되돌아본다.
① 조국사태
2019년 8월 시작된 ‘조국 사태’는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되물었다. 자녀 입시, 사모펀드 의혹이 잇달아 불거졌지만, 정의당은 “사법개혁이란 대의 차원에서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임명 찬성 뜻을 밝혔다. 정의당이 조 전 장관이 연루된 ‘공정 이슈’에 날을 세워 비판하지 못했던 데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공조했던 선거제 개혁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때마다 낙마자를 추려내는 ‘데스 노트’로 주목받았던 정의당이 조국 이슈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두고 지지층 안팎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심상정 대표는 결국 12월 국회 연설에서 “아무리 절실한 제도 개혁이라도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과 가치에 앞설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3월엔 정의당 청년 후보들이 공동 회견을 열어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이 보인 태도를 “깊이 반성한다”고 거듭 사과했다. 만시지탄이었다.
② 4+1 협의체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 개혁안은 12월 본회의 상정 직전까지 후퇴를 거듭하며 ‘누더기’가 됐다. 정치개혁특위가 합의한 선거제 개정안 원안은 ‘253 대 47’인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225 대 75’로 조정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비례성을 확대한다는 게 뼈대였다. 그러나 선거제 개혁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시점인 12월 초 민주당과 정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 실무단에서는 연동형 ‘캡’과 석패율제 도입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안 도출이 거듭 지연됐다. 결국 연동형 캡 30석을 21대 총선에만 한시적으로 적용하고, 석패율제는 없앤 최종안이 12월 말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의 강공에 정의당 등 소수정당들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결과였다. 이는 결국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과 의회의 양당구도 회귀로 이어졌다.
③ 비례대표 공천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은 당원투표 70%와 시민투표 30%를 반영해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개방형 경선제와, 비례대표 후보의 정책역량을 평가하는 ‘무지개 배심원단’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3월 초 치러진 비례대표 경선은 정책 실무역량이 검증된 당내 인사들이 후순위로 밀리는 결과를 낳았다. 정의당이 당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도입한 새 경선제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고질적 정파구도와 폐쇄적 조직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인지도와 조직투표에 의해 순번 결정이 좌우되면서 원내 역량의 전반적 저하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경선이 끝난 뒤 불거진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의 ‘대리게임’ 논란과 6번 신장식 후보의 무면허 음주운전 등의 논란도 선거기간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악재로 작용했다.
④ 비례위성정당 불참 선언
2월 초 미래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면서 ‘반미래통합당’ 진영에서도 위성정당 불가피론이 고개를 들었다. 2월 말 친민주당계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정치개혁연합이 “비례의석 싹쓸이를 통한 미래통합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민주당·정의당·녹색당 등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 창당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연합정당 참여를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이후 민주당은 정치개혁연합이 아닌 플랫폼 정당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위성정당은 정의당이 감당할 수 없는 악재로 작용했다. 역대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는 민주당에, 정당투표는 진보정당에 해온 전략적 교차투표층이 정당투표에서 대거 민주당계 위성정당으로 기운 것이다. 정의당은 끝내 10%의 벽을 넘지 못했다.
⑤ 선거운동
4월2일 시작된 선거운동 국면에서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선거제도 개혁의 원칙을 유일하게 지키는 정당’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썼다. 선거기간에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총선 이후 ‘엔번방 방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힌 민주당과는 달리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즉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지지율 고공 행진을 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기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완수를 돕겠다. 촛불정부의 소임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수위로 타협했다. 이런 선거 전략은 결과로 평가받았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심상정(고양갑), 여영국(창원성산), 이정미(인천연수을) 등 세명을 당선 가능권으로 봤지만 지역구 생환자는 심 대표 하나였다. 정당투표에서도 비례대표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