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저문 21세기에도 일부 정치인을 겨냥한 ‘색깔론’ 공세는 여전합니다. 가장 최근 색깔론의 표적이 된 인물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입니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은 두 사람에 대해 ‘사상’과 ‘색깔’을 끈질기게 따져물었습니다. 21대 국회가 출범했는데도 정치권이 낡은 이념공방을 거듭한 데에는, 안보 상업주의에 물든 보수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19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지원 원장은) 적과 내통하는 사람, 적과 친분관계가 있는 분”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박 원장의 대북관과 사상을 문제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상전향’ 여부를 집요하게 물었다. 한겨레TV
김이택 <한겨레> 대기자는 ‘김이택의 저널어택’ 두번째 시간에 이런 보수 정당·언론의 이중성을 짚었습니다. 김 대기자는 “외려 진정한 ‘내통’의 원조는 미래통합당 계통 정당과 그 정부”라며 과거 ‘안기부 북풍 언론 공작’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김대중 후보의 ‘색깔 시비’를 일으키려고 “김 후보가 북한 김정일한테서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이뤄지도록 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북풍’을 일으킨 뒤, 이를 선거에 악용하려고 했던 겁니다.
2018년 영화 <공작>은 ‘북풍 공작’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한겨레TV
영화 <공작>을 보면, 남한의 여당과 정보기관 인사가 북쪽과 접촉해 북한의 무력시위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쪽의 안보 불안심리를 자극해 이를 선거에 활용하고자 했던 정권의 비겁함을 꼬집은 건데, 영화와 현실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과거 정권의 이런 행태에 눈감은 채, 박 원장과 이인영 장관을 겨냥해 철지난 색깔론 공세를 펼친 것이고요.
정권 차원에서 북풍 등 안보 이슈의 불씨를 당기면, 이를 확산하는 일은 언제나 수구·보수 언론이 맡았습니다. 문재인·박근혜 후보가 맞붙은 2012년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어김없이 북풍을 일으켰습니다. 대표적인 게 곧 ‘서해 NLL 포기발언’ 논란인데요.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 김정일 만나 NLL 주장 않겠다고 말해” 등 기사(10월9일)를 1면에 내는 등 사실상 박근혜 후보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색깔론 공세'를 이용해온 수구, 보수세력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비판하는 김이택 <한겨레>대기자. 한겨레TV
김 대기자는 보수 정당·언론의 이런 행태를 ‘안보 포퓰리즘’이자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과거 선거에서 정치인과 정권은 안보를 입맛대로 이용해왔는데, 수구·보수 언론은 그때마다 여기에 적극 부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보상업주의에 물든 언론이 대국민 사기극의 ‘조연’에 머문 게 아니라 ‘주연’ 구실을 했다는 이야기죠.
이인영 장관과 박지원 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또다시 드러난 색깔론 시비. 그 길고 긴 역사 ‘김이택의 저널어택’ 2회에서 확인해주세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