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오른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에서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론조사는 투표가 아니다. 후보 지지도가 실제 선거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러나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숫자의 변화에는 의미가 있다. 민심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4월1일부터 이번 재보궐선거에 대한 여론조사가 금지된다. 31일까지 쏟아진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는 오 후보가 55.8%, 박 후보가 32%였다. 리얼미터가 일주일 전인 24일 발표한 같은 조사에선 오 후보가 55.0%, 박 후보 36.5%였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30일 발표한 조사에선 오 후보 60.1%, 박 후보 32.5%였다. 25일 같은 회사의 조사에선 오 후보 46.3%, 박 후보 25.3%였다.(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악으로 치닫는 부동산 민심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직전 전셋값을 크게 올렸다가 경질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건이 치명타였다. 정권의 도덕성까지 흔들리는 악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직원들의 투기 사태로 활활 타오르던 민심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이나 다름 없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에서 국민의힘의 단골 메뉴도 바로 김상조 전 실장 사건이다. 급소를 정확히 가격하고 있는 셈이다. 연일 부동산 투기 고강도 대책을 주문하며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이 허무하게 됐다. “윗물은 맑은 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했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도 무색하게 됐다.
여권의 선거 전략 혼선도 한몫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박영선 후보는 엘에이치 사태로 악화한 민심에 ‘사죄’와 ‘맞불’ 두 가지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머리 숙여 사죄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부동산 투기 원조는 우리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과 오세훈 후보”라고 외치는 모양새다. 상호 모순되는 이런 태도는 두 가지 전략의 효과를 모두 다 떨어뜨릴 수 있다.
박 후보는 4선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직무대행,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여권에서 이만한 경력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후보 본인이 오 후보를 직접 공격하고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강점인 정책 역량과 정치적 능력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하고 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 있다.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한다는 이론이다.
정치와 선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가 25% 수준으로 떨어지면 정부·여당 지지자들이 입을 다물기 시작한다고 본다. 점심 메뉴를 선택할 때도 ‘2 대 1’로 갈리면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지만, ‘3 대 1’로 갈리면 한 사람이 입을 다물고 따르는 경우가 많다. 여권으로서는 민심잡기 경쟁에서 백약이 무효인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서울의 국회의원 49명 가운데 4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 시의원 109명 가운데 10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야당보다 월등히 앞선 조직력에 여당은 마지막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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