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의 전초전인 4·7 보궐선거가 가덕도에서 시작해 내곡동에서 끝났다? 이번 선거판을 달궜던 인상적인 장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다.
4·7 보선을 앞둔 여권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정책 프로젝트’는 단연 가덕도였다. 민주당은 예비타당성 조사 등 각종 특혜를 담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주도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가덕도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하루 앞둔 지난 2월25일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 일대를 둘러보며 공항 건설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가덕도 특별법 통과 직후 여권에 잠시 돌아섰던 부산의 표심은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가덕도 공항이 여권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본래 부산이 당연히 받아야할 사업이었다는 여론에 거센 정권심판론이 작용한 결과였다.
지난해 말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기 보다는 도시계획 전문가로서의 꿈을 재차 확인시키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보궐선거 출마자의 의원직 사퇴 시한(3월8일)을 엿새 앞둔 2일,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출마를 위해 후보 확정 이전에 의원직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기에 김 의원의 선택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티브이토론을 거친 단일화 경선 끝에 박영선 후보로 단일화됐으며 김 의원의 비례대표직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승계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에 반기를 들고 서울시장 자리를 내놓았던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10년간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불출마’ 선언을 할 때도 그저 정치권의 비웃음만 샀다. 그러나 지난달 4일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시장으로서 10년간 살아오면서 죄책감, 자책감이 있었다”며 울먹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를 다시 울게 한 건 청년층의 지지였다. 지난 4일 오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20·30대 청년들의 지지 발언에 감동해 또 울먹였다.
‘보수 여전사’로 불리는 이언주(48) 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에서 패배했다. 경선 초반 박형준 예비후보와 대등하게 맞섰지만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박민식 예비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최종 경선 결과는 박성훈 예비후보에게도 뒤진 3위였다.
너무 강한 보수색이 경선 참패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4차례 탈당과 5차례 입당한 전력도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 전 의원은 3년 뒤 총선에서 박재호 민주당 의원이 있는 부산 남구을에 재도전할 것 같다. 그는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 25일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오 후보의 ‘저격수’로 직접 나섰다. 2007년 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비비케이(BBK) 의혹’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그였다. 당시 검증의 ‘후과’로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적 탄압에 시달렸지만 세월이 흐른 뒤 진실은 드러났고 엠비는 결국 단죄받았다. 그뒤 여당의 중진으로 성장한 박 후보는 이번엔 오 후보를 ‘엠비(MB) 아바타’라고 공격하며 ‘내곡동땅 거짓말’ 의혹 검증에 집중했다. 정권심판론이 거세게 부는 악조건 속에서 박 후보의 ‘투지’가 돋보였다.
앙 다문 입술. 그동안 큰 선거를 마무리하는 ‘정치인 안철수’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벌이다 후보를 사퇴할 때도 그랬다. 2017년 대선,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로 낙선하면서 그는 웃지 못했다. 이번에도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패했지만 이번엔 웃으며 유세 현장을 함께 돌았다. 꼬리표처럼 붙은 ‘철수 정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행보였다.
김종인과 안철수. 참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다. 10년 전 소원했던 두 사람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말폭탄을 주고받았다.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토론회 방식 등을 놓고 갈등하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토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며 안 대표를 ‘토론 무능력자’로 규정했다. 안 대표는 “정말 모욕적”이라며 발끈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상왕·상황제 논란’을 벌이며 극단으로 치달았다. 막판 단일화 협상이 진통을 겪자 안 대표는 “후보 뒤에 상왕이 있는 것 아닌가”라며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 “본인을 조종하는 ‘여자 상황제’가 있단 말은 들었나”(이준석 전 비대위원)라는 반박이 나오자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의 사모님이 제 아내와 이름이 같다. 그분과 착각해서 그런 거 아닌가”고 받아쳤다. 김 위원장과 본인 배우자의 이름(김미경)이 같다는 점에 착안해 역공을 편 것이다.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그 사람(안 대표)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다”며 노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장소에 있는 것마저 불편한 감정은 유세현장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25일 안 대표는 단일화 경선 뒤 대한문 앞에서 열린 국민의힘 유세에 처음으로 참여해 지원 연설을 시작했지만 김 위원장은 1분 만에 자리를 떴다.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의 882가구 101층 규모의 아파트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개발업자인 이영복(구속)씨가 사업 편의 등의 명목으로 부산지역 주요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열층 분양권을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 가족이 비(B)동 17~18층 분양권 2개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 후보가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4월 정상적인 매매를 했다”고 밝혔는데 이후 분양권을 넘긴 사람이 의붓아들로 드러나면서 의혹은 커졌다. 며칠 뒤 박 후보가 “의붓아들과 의붓딸이 2015년 10월 각각 700만원과 500만원의 웃돈을 주고 정상 매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엘시티 초기 분양 담당자가 한 라디오방송에서 한 발언이 다시 논란을 키웠다. 이 담당자는 라디오방송에서 “엘시티 비동 17~18층은 로열층이었고 분양 초기 4천만~5천만원의 웃돈이 형성됐다. 500만~700만원의 웃돈을 주고 매입했다면 누군가가 작업(분양권을 빼돌리는 것)을 해서 선물했거나 전매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엘시티 문제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박 후보를 공격할 호재라고 판단한 민주당은 지도부가 현장에 총출동하며 선거 쟁점화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땅 셀프보상 의혹’은 선거전이 중반부로 치달으면서 ‘거짓말 논란’으로 비화됐다. 오 후보가 “내곡동 땅의 존재도, 위치도 몰랐다”는 해명이 의혹을 키운 것이다. 내곡동 택지개발 전에 오 후보의 처가 소유 땅에서 경작을 했다는 한 주민이 지난 2005년 오 후보가 장인과 함께 측량하러 왔었다는 증언이 보도됐고(3월26일), 당시 측량을 마친 뒤 오 후보 일행이 생태탕을 먹었다는 식당 주인의 진술(4월2일)까지 공개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ㅂㄱㅅㄱ 왜 하죠?’ 초성 퀴즈인가. 이런 알쏭달쏭한 펼침막 문구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게시 불가를 결정했다. ‘ㅂㄱㅅㄱ’는 보궐선거의 초성모음이라고 한다. “보궐선거 왜 하죠?”는 물론 “ㅂㄱㅅㄱ 왜 하죠?”도 펼침막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금지 이유다. 선관위는 ‘내로남불·무능·위선’이라는 단어도 투표 독려 문구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더불어민주당을 “내로남불·무능·위선 정당으로 인증해줬다”고 꼬집었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을 유추하게 하거나 특정 정당에 유불리한 표현을 금지하는 해석이 공직선거법 조항 때문이라며 개정 의견을 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있는 정치권 탓이라며 억울해한다. 그러나 법 조항에 기댄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일관되지 못한 탓에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현 김태규 기자, 부산/김광수 기자 edigna@hani.co.kr
가덕도에 ‘올인’한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가덕도 주변 해상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금배지 내던진 김진애
김진애 열린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의 울먹울먹
서울시장 보궐선거 범야권 단일화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3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패배한 보수 여전사
박형준 후보(가운데)가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뒤 박성훈(왼쪽), 이언주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격수 박영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졌지만 웃은 안철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공원 인근에서 열린 순회 인사 및 유세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참 어색하고 불편한 김종인-안철수
4.7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한문앞에서 열린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시청역 거점유세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욕망의 엘시티
지난 2019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최고 101층 규모 엘시티가 준공을 앞두고 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내곡동의 증언자들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 당시 처가가 소유한 내곡동 땅 부지가 국민임대주택지구 부지로 지정돼 36억원의 보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내곡동 주택지구를 둘러보고 회견 중인 더불어민주당 야당후보검증팀. 공동취재사진
선관위의 ‘투표 독려’ 규제
‘4월 7일, ㅂㄱㅅㄱ 왜 하죠?’가 적힌 현수막.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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