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달 탐사 활동 증가 추세 대비 ‘정지궤도~달’ 정찰 위성 개발키로 지금보다 거리 10배, 영역은 1천배 강력한 망원경 탑재해 정밀 감시
정지궤도 너머 달에 이르는 광대한 우주 공간을 비행하는 칩스(CHPS) 위성 상상도. AFLR 제공
‘지구-달 고속도로 순찰 시스템’(Cislunar Highway Patrol System=CHPS).
우주의 용어와 지상의 용어를 한데 합쳐놓은 이 생소한 이름은 지난 2일 미 우주군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미래 청사진이다.
이 영상에는 미 우주군이 향후 정찰 영역을 달까지 확장시키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미 공군연구소(AFLR)가 제작한 이 영상에서 우주군은 “지금까지의 우주 임무는 지상 2만2천마일(약 3만5400km)에 그쳤지만 이는 지난 일이며, 앞으로는 우주 임무 범위를 거리는 10배, 작전 영역은 1천배 넓혀 달 뒷면까지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평균 38만km로 정지궤도(약 3만6천km)의 10배가 조금 넘는다.
이 영상은 대중적인 주목을 끌고 있진 못하지만 우주군이 지구 궤도를 넘어 심우주에까지 작전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언론들은 미군이 이전에도 작전 영역의 확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취할 행동을 밝혔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지궤도와 달 궤도 사이에 강력한 성능의 망원경을 탑재한 위성을 발사한다는 내용이다. 영상에 따르면 이 위성의 이름이 바로 ‘칩스’(CHPS)이다.
연구소는 오는 21일 이 위성에 대한 ‘시제품 제안서’를 공개한 뒤 7월까지 계약 내용과 업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소의 우주차량국이 관리 및 감독 역할을 맡는다.
위성이 개발되면 미군은 우주 군사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미 우주사령부를 통해 이 장비를 구입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 위성의 개발은 정지궤도에서 달 너머로 미 우주군의 작전 영역이 확장된다는 걸 뜻한다.
미 우주군의 새로운 작전 영역으로 설정된 ‘지구-달 궤도’. CSIS 보고서
위협 대응보다는 상황 파악에 중점
지속가능한 우주를 내세우고 있는 비영리 민간기구 ‘안전한 세계 재단’(Secure World Foundation)의 프로그램 기획이사 브라이언 위든(Brian Weeden)은 온라인 미디어 ‘아스테크니카’에 “이는 미 우주군이 정지궤도와 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이 미국의 활동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첫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위성이 모든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보다는 주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우주사령부는 왜 달까지 작전 범위를 넓히려 할까?
공군연구소는 영상에서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후원하는 민간 우주활동, 아르테미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우주 활동을 포함해 증가하는 달 교통량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테미스는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미 나사의 새로운 달 착륙 프로그램이다.
이는 앞으로 달로 가는 우주선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 ‘나를 달에 데려다줘’(Fly Me to the Moon)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예정된 달 탐사 임무가 벌써 수십개나 된다.
올해만 해도 줄줄이 달 비행과 탐사가 예정돼 있다. 우선 나사가 3~4월중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첫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새로 개발한 차세대 로켓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LS)과 유인 우주선 오리온에 마네킨을 태워 달을 돌고 돌아온다. 연말엔 미국의 민간기업 아스트로보틱과 인튜이티브머신 2곳이 나사의 과학장비 등을 싣고 소형 무인 착륙선을 달에 보낸다. 영국의 첫 달 탐사차가 아스트로보틱 탐사선에 실린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도 일단은 오는 7월 소유즈 로켓에 달 탐사선 루나 25호를 실어 달 남극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러시아의 달 탐사는 1976년 이후 46년만이다.
한국도 올해 달 탐사국 대열에 합류한다. 오는 8월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로켓으로 첫 무인 달궤도 탐사선을 쏘아올린다. 중동의 소국 아랍에미리트는 오는 10월 일본 민간기업 아이스페이스의 첫 달 착륙선에 소형 달 탐사차를 실어보낸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의 우주 탐사를 맹렬하게 뒤쫓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올해는 별다른 달 탐사 계획은 없지만 이미 미국보다 앞서 달 뒷면에 착륙선을 보냈고, 무인 탐사선을 이용해 암석 표본도 가져왔다. 2030년까지는 유인 달 착륙을 실현시킨다는 목표다.
미 항공우주국의 달 궤도 정거장 ‘게이트웨이’에 다가가는 오리온 우주선 상상도. 나사 제공
달 궤도를 작전 영역에 포함시킨 또다른 이유
미 우주군이 정지궤도 너머의 달 궤도를 작전 영역에 포함시키는 이유로 내세우는 건 우주의 평화적 이용과 안전 보장을 위해서다. 위든은 그러나 이런 표면적 이유 말고도 또다른 전략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군 지휘부는 다른 나라 정부가 달에 배치하는 우주 물체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데 지구 저궤도와 정지궤도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우주 경계 네트워크로는 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미군 지휘부가 상상하는 시나리오 가운데는 달 주위를 도는 다른 나라의 우주 물체들이 방향을 돌려 정지궤도의 미군 위성을 공격하는 상황도 포함돼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위든은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가능한 것이며, 이는 미군의 현재 우주 경계 능력이 못 미치는 부분을 확실하게 이용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실제보다 과도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은 현재 이 우주 공간에 군사적 자산이 없는 데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주 기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국 등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 현재 공백 상태인 이 우주공간에 선제적으로 대응 시스템을 갖춰놓으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