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초파리는 빨리 늙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나나를 먹고 있는 초파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음식 냄새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매혹적인 이성을 향한 끌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감각 처리 과정은 생리적 반응을 통해 생명체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감각 지각은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를 거치면서 생명체의 대사 활동과 노화, 나아가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2007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연구는 후각을 잃은 초파리의 수명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포유류에서도 특정 통증 수용체가 없는 생쥐의 수명이 크게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2014년 <셀>에 발표됐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어떤 생리적 반응을 일으킬까?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죽음은 매우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예컨대 코끼리는 동료가 죽으면 시체 주변을 서성이고, 까마귀는 마치 장례식을 하듯 시체 앞에서 울어댄다.
15년 이상 초파리 연구를 해온 미국 미시간대의 크리스티 젠드론 교수팀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동료의 죽음에 대한 목격이 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공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48시간 동안 초파리 사체와 함께 있던 초파리는 수명이 거의 30% 단축됐다.
실험에서 사체들과 함께 있는 초파리들. Christi Gendron
연구진은 살아 있는 초파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엔 음식을, 다른 그룹엔 먹이와 함께 죽은 초파리를 같은 공간에 넣어줬다.
그러자 죽은 초파리와 같이 있던 초파리는 그렇지 않은 초파리보다 저장된 지방이 빠르게 사라졌고 결국 일찍 죽었다.
연구진은 죽은 초파리들의 뇌를 해부한 결과, 이들의 뇌에서 세로토닌 수용체에 관여하는 R2와 R4라는 두가지 유형의 뉴런이 활성화한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또 사체를 보지 않은 일반 초파리도 이 뉴런을 자극하자 똑같이 수명이 단축되는 걸 확인했다. 연구진은 죽은 동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울증 같은 스트레스 상태를 초래해 수명을 단축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험을 인지하면 번식을 위해 알을 더 많이 나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지 않았다. 짝짓기 하고 있는 초파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응급구조사 등의 심리 치료에 시사점
일부 과학자들은 동료의 사체를 보고 위험을 인지한 초파리들이 번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수명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2022년 영국생태학회가 발행하는 <기능 생태학>에 발표된 한 연구 논문에서는 사체에 노출된 암컷 파리가 더 많은 알을 낳는 것을 확인했지만 수명 단축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번 실험에선 연구진이 초파리들이 자유롭게 짝짓기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으나 초파리들이 알을 더 많이 낳는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파리 사체가 초파리의 생리에 미치는 것과 비슷한 영향을 다른 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개미와 꿀벌 같은 사회적 곤충은 사체가 생기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내다버린다. 사체가 일으키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곧바로 인간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으로 죽음을 목격하는 응급 구조사, 전투군인 등에 끼치는 심리적 영향을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371/journal.pbio.3002149
Ring neurons in the Drosophila central complex act as a rheostat for sensory modulation of aging.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