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만 해도 최고 갑부를 지칭하는 말은 백만장자(이하 달러 기준)였다. 억만장자란 말은 20세기 초반 독과점 심화의 산물이다. ‘최초의 억만장자’는 20세기 초반의 석유왕 록펠러였다. 미국의 독과점금지법은 그 때문에 생겨났다. 80여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의 억만장자는 2천명이 넘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1천억달러가 넘는 부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다. 그의 재산은 10월 현재 1500억달러(약 170조원) 안팎에 이른다.
베이조스가 슈퍼부자의 재산 단위를 한 자릿수 더 올려놓자 호사가들이 조만장자의 탄생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데이터를 토대로 베이조스가 2030년 9월에 세계 첫 조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보고서도 나왔다. 스위스의 금융그룹 크레디트 스위스는 60년 안에 11명의 조만장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1조달러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한국 GDP의 3분의 2, 인구 2억6천만명이 넘는 세계 4위 인구대국 인도네시아의 GDP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 달 585만원을 버는 한국 평균 도시근로자가구의 가장이 한 푼도 쓰지 않고 1600만년간 모아야 가능한 액수다.
어찌 보면 믿거나 말거나 식의 전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상들이 엉터리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부의 편중이나 기업 세계의 약육강식 때문이다. 아마존의 거침없는 사업 확장은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아마존은 창업 24년 사이에 온라인 소매업은 물론 물류,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미디어, 영화, 식품, 약국, 보안에 이어 우주 사업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마존의 행보를 두고 “‘에브리싱 스토어’를 넘어 ‘에브리싱 컴퍼니’를 바라본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출처=크레디트 스위스 글로벌 웰스 보고서 2017
부를 늘리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부의 집중, 다른 하나는 부의 창출이다. 과거엔 전자가 주된 방식이었다. 고대의 영토 확장이나 근대의 식민지 침탈, 현대의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부의 축적이 전형적인 사례다. 21세기에는 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부의 창출이 활발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IT 대기업들이 이런 흐름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부의 흐름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부의 집중과 부의 창출을 연결해주는 통로다. 바로 인터넷에 기반을 둔 글로벌화다. 이를 기반으로 다국적 기업은 세계 기업으로 도약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전 세계 광고시장의 4분의 1, 온라인 광고시장의 60%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미국에선 아마존의 새 사업 구상 소문만 돌아도 관련 주가가 소용돌이치는 ‘아마존 효과'란 말까지 등장했다.
요즘 또 하나의 부의 증식 통로가 생기려 하고 있다. 우주산업이다. 세계 최고 부자 베이조스는 우주여행 실현을 위해 매년 10억달러(1조1천억원)을 우주산업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주개발 사업자들에겐 걸림돌이 있다. ‘우주는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으며, 우주에서 얻는 이익은 인류 공통의 이익을 위해 써야 한다'는 1967년의 우주조약이다. 그러나 우주의 상업화 바람 앞에서 이 합의도 무력해질 것 같다. 미국 정부는 2015년 이미 “영리 목적의 우주 자원 이용”을 허용하는 우주법을 제정했다.
지난해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소득의 80% 이상을 가져가고 있으며, 최상위 부자 8명의 재산을 합치면 하위 50%인 36억명의 재산과 같다는 것이다. 옥스팜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슈퍼부자들의 자산은 연평균 11% 늘고 있다. 옥스팜은 이런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25년 후 첫 조만장자를 볼 수 있다고 예상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하위 50%의 소득 증가율은 0이다. 반면 상위 1%의 소득 증가율은 300%다. 일단 축적된 부는 자기 증식력을 갖는다. 첫째는 재산상속이다. 옥스팜에 따르면 억만장자의 부 가운데 3분의 1은 상속재산이다. 여기에 투자를 비롯한 각 부문 전문가가 붙어 재산을 튀겨준다. 정치적 영향력까지 가세해 각종 혜택까지 덧붙여지면 스스로 증식해가는 구조가 완성된다. "20% 상위 소수자가 사회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발표된 때가 19세기 말이었다.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부의 균형추는 더욱 끝으로 치우쳐 ‘1% 사회’로 치닫고 있다. 조만장자의 탄생은 그 1% 내부의 또 다른 계층 분화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0.1%의 빛과 나머지 그림자'로 나뉜다면, 누가 조만장자 시대를 반길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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