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 어떤 것이 더 강력할까? 사진 픽사베이.
주는 기쁨엔 `쾌락적응 법칙'이 적용 안돼
물건은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진다. 생명체도 생장성쇠의 단계를 거쳐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심리 기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강한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든다. 이를 표현하는 행복심리학 용어 중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란 게 있다. 특정한 경험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것이 반복될수록 줄어든다는 걸 뜻하는 말이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인간 심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주는 기쁨'에서 얻는 행복감은 이 법칙의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 중 어느 것이 더 강한 행복감을 안겨줄까?"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자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과 노스웨스턴대 심리학자 사만타 캐서러(Samantha Kassirer)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험 결과를 미 심리과학협회 저널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소개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선물을 주는 사람은 같은 선물을 반복해서 받는 사람에 비해 행복감이 줄어들지 않거나 훨씬 더디게 줄어들었다. 행복감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통설과는 다른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기부를 하는 경우에는 횟수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신선하고 즐거운 느낌을 갖게 된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기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받는 기쁨은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낮아졌지만, 주는 기쁨은 5일째에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논문에서 재인용.
기부자들은 시간 흘러도 행복감 줄지 않아
실험 방식은 이랬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5일 동안 매일 5달러를 줬다. 그리곤 매번 똑같은 데 돈을 쓰도록 요구했다. 무작위로 어떤 학생에겐 자신을 위해, 어떤 학생에겐 다른 사람을 위해 쓰도록 했다. 예컨대 매일 같은 카페에 들러 팁을 주든가, 같은 재단에 온라인 기부를 하는 식이다. 또 하루가 끝날 때는 자신이 어디에 썼으며 행복감은 어땠는지를 돌아보고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 96명이 제출하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명확한 패턴이 드러났다. 자신에게 돈을 쓴 사람들은 5일 동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행복감이 감소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준 사람들에게선 행복감의 감소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5번째로 주는 기쁨도 첫번째로 줄 때만큼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온라인을 통해 두번째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엔 502명이 참가했다. 연구진은 이들을 대상으로 10라운드에 걸쳐 단어 퍼즐 게임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에게 1라운드당 5센트를 지급했다. 그리곤 참가자들이 이 돈을 자신이 선택한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자신이 갖도록 했다. 각 라운드 후에 참가자들은 게임에 이겼을 때와 같은 정도의 행복감과 기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실험에서도 남에게 돈을 준 사람들의 행복감이 돈을 가진 사람의 행복감보다 훨씬 더디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돈을 주거나 받을 때도 마찬가지일지는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뒀다. 픽사베이.
초점이 행위냐, 결과냐에 따라 생기는 차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연구진은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과, 행위에 중점을 두는 것의 차이로 해석했다. 돈을 받는 것은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이 경우 횟수가 거듭될수록 경험에 대한 반응이 둔감해진다. 반면 기부처럼 행위에 중점을 둘 경우엔 각 경험 간에 비교가 어렵다. 연구진은 기부 행위가 사회적 소속감과 연대감을 높여주고 자신의 사회적 평판에 도움을 주는 것도 행복감을 유지시켜주는 데 한몫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서 얻는 행복감이 바로 자선과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반대급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 실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주거나 받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까? 또 낯선 사람에게 줄 때와 친구에게 줄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연구진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연구 과제로 미뤘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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