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페이스북 본사 입구에 있는 대형 ‘좋아요’ 간판. 구본권기자.
2004년 2월4일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 이달초 15돌을 맞았다. 15년 동안 페이스북은 이용자 규모가 하루 기준 15억명, 월간 기준 23억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사회연결망 서비스로 성장했다. 인구는 더 늘어나고 세상은 더 복잡해졌지만, 사람들간의 연결은 더욱 편리해지고 잦아졌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달하며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주지만, 페이스북 이전과 이후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찍이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던 연결과 친구 개념이 등장했다. 페이스북이 없던 시기로 돌아가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불가역적 변화다.
2004년 2월 페이스북이 하버드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서비스하던 시절의 페이지 모습.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끊임없이 더 편리하고 많은 연결을 추구해왔고, 페이스북은 이런 인간 본능을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페이스북은 사회적 존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인간의 관계와 연결에 대한 추구는 무한히 확장할 것인가? 페이스북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현실의 관계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미국 <디 애틀랜틱>에 실린 페이스북 시대의 우정을 조명한 글(“Facebook: Where Friendships Go to Never Quite Die”)은 페이스북을 판타지소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유니콘의 피’에 비유한다. 《해리 포터》에서 유니콘의 피를 마시면 죽음을 모면하고 반평생의 삶을 더 얻지만 그 순간부터 저주받은 삶을 살게 된다. <애틀랜틱>의 글은 우리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더 많은 친교와 편리한 우정을 얻게 되지만, 이는 ‘유니콘의 피’처럼 그 대가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클릭 한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호출해 대화할 수 있지만 그 대가는 진정한 우정의 상실이며, 상시연결된 상태로 사람들과의 공허한 관계를 지켜보는 삶이라는 것이다.
2014년 미국 퓨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 이용자의 평균 친구는 338명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맺기의 한계를 5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그 수가 꽉 찬 이들도 적지않다.
로빈 던바, "인간 두뇌의 특성상 친구는 150명까지"
로빈 던바의 책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 국내엔 <던바의 수>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오른쪽은 무리별 집단의 크기.
페이스북과 모바일을 통해서 관계 맺기가 편리해졌지만, 인간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일찍이 이에 대해 주목할 만한 관점을 제시하며, 《던바의 수》라는 책을 펴냈다.
던바는 한 사람이 사귀면서 믿고 호감을 느끼는 사람, 즉 진짜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계는 달리 표현하면 예고 없이 불쑥 저녁 자리나 술자리에 합석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던바는 2012년 논문을 통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디지털 세대의 친구 숫자가 수천 명 단위로 늘어난 상황에서 아무리 새로운 기술 도구를 통해 인맥이 확대되더라도 진짜 친구의 숫자는 변화가 없다는 주장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던바는 원숭이와 유인원을 통해 확인한 신피질과 집단 규모의 상관관계에 기초해 추정하면 인간 집단의 적정 크기는 약 150명이라고 주장했다. 즉 150명은 평범한 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간 집단의 크기를 알려주는 사회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부족이다. 수십 개의 부족 사회를 조사한 결과 평균 규모는 153명으로 나타났다. 로마 시대 로마군의 기본 전투 단위인 보병 중대는 약 130명이었고 현대 군대의 중대 단위도 세 개 소대와 지원 병력을 합쳐서 대개 130~150명이다. 기능성 섬유인 고어텍스의 제조사인 고어(Gore)는 위계질서에 따른 조직이 아니라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면서 공장의 조직 단위를 150명으로 운영한다.
가족과 친구 등 우리가 기꺼이 마음을 열고 무엇이건 소통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결론이다. 뱁슨대학 학장인 경영학자 토머스 데이븐포트는 2001년 펴낸 《관심의 경제학》에서 유한한 자원이자 화폐로서의 관심을 분석했다. 정보기술 사회가 되면서 정보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 공급은 크게 늘어났지만 수용자인 사람의 관심은 정보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정보 공급이 늘어날수록 관심 자원은 부족해진다. 즉 소셜네트워크 환경에서 관심을 요구하는 친구가 늘어날수록 제한된 관심 자원은 부족해지고 이는 관계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친구는 늘었지만 외로움은 커지는 관계다. 2013년 뉴욕대학 사회학 교수 에릭 클리넨버그는 저서인 《고잉 솔로》에서 외로움을 결정하는 것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이 관련 연구의 공통된 결과라고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양으로 질을 대체하려는 것은 허망한 시도라는 얘기다. 외로워서 더 많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법이라는 지적이다.
사회적 관계 실험하는 '배양접시', 꺼내면 홀로 생존 못해
연구자들은 페이스북이 관계에 끼치는 역할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카네기멜런대학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교수인 로버트 크로트는 페이스북이 갖는 약한 연결(weak tie)의 장단점을 이야기한다. 크로트 교수는 페이스북을 인간관계의 ‘저수지’로, 페이스북이 과거와 같은 관계의 친밀성을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필요시 이용가능한 관계(약한 연결)라고 설명한다.
미시건대 커뮤니케이션 학자 니콜 엘리슨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많은 사람과 친구관계를 맺는 현상을 오래된 대형 백과사전에 비유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처지이지만 우리는 기꺼이 백과사전을 보관한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재의 종말》을 쓴 캐나다 작가 마이클 해리스는 페이스북을 사회적 관계를 실험하는 배양접시 샬레에 비유한다. 샬레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지만, 이를 접시 바깥으로 꺼내는 순간 시들거나 죽어버리는데 우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우정과 관계는 시간과 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는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들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