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부 정치인들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명백한 과학적 진실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지구가 둥근 공 모양이 아니라 평평한 원반 모양이라는 주장하는 ‘지구 평면설’이다.
유사과학이라고 부르기도 부적절한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기는커녕 지지자들의 근거없는 주장과 황당한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회원이 10만명 이상인 ‘평평한 지구학회’의 황당한 주장과 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국외 주요 신문과 방송들에서 다뤄지고 있다. 헛소리 동영상의 확산경로가 되고 있는 유튜브는 지난 1월25일 공식블로그를 통해 지구 평면설을 적시하며 유해 콘텐츠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상태다.
누구나 손 안에서 인류가 축적한 지식 체계에 무료로 접근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왜 황당한 주장과 그에 대한 추종이 넘쳐나고 있을까.
■ 지구 평면설이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은 “지구의 중앙에 있는 북극을 중심으로 각 대륙이 배치돼 있고 가장자리를 이루는 바다의 끄트머리는 45미터의 남극 얼음벽으로 둘러 싸여 있어 넘치는 것을 막아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구가 공 모양이면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양쪽 끝이 아래로 휘어져 보여야 하나 그렇게 관찰되지 않는 게 증거라는 등 200여가지의 ‘지구평면설 증거’ 동영상을 공유한다. 이들은 중력은 없다고 말하며 아폴로 계획의 달 탐사와 착륙도, 우주로켓과 국제우주정거장, 우주인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 천문학적 발견에 대항해 지구 평면설을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새뮤얼 로버텀(Samuel Rowbotham, 1816~1884)이다. 로버텀은 영국 베드포드강에서 높이 실험을 했는데, 지구가 구형이라면 나와야 할 곡률이 나오지 않았다는 측정 결과를 얻었다. 측량 실수 때문으로 당시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틀린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로버텀은 도리어 <지구는 둥글지 않다(Earth Not a Globe)>는 400여쪽 책까지 펴내며 주장을 고집했다. ‘지구의 중심은 북극이고, 테두리는 남극의 얼음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은 로버텀으로부터 유래했다.
지구 평면설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어긋나는 모든 사실적 증거에 대해서는 ‘조작된 영상’이자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아 아니라고 묵살한다. 그 근거로 자신들도 얼마나 손쉽게 조작 동영상과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시연해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평평한 지구 국제컨퍼런스(FEIC)’를 조직해 201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2018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국제학회를 개최했다. 올해엔 11월 텍사스에서 열린다. 지난해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서울에서도 국가별 학회가 공개 개최됐다. 지난해 3월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마이크 휴스가 지구 평면설을 입증하겠다며 모하비 사막에서 사제 로켓을 타고 570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실험을 했다. 휴스가 탄 로켓은 ‘평평한 지구’(FLAT EARTH)라는 문구를 새기고 솟아올랐다가 1분 뒤 낙하산을 펴며 하강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평평한 지구 신봉자들은 내년에 대형 크루즈에 승선해 지구 평면설을 입증하는 항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왜 이런 일이 생겼나
헛소리와 유사과학이 사라진 적 없지만 지구 평면설의 특징은 음모론이 음지에서 양지로 부상하는 구조다. 배경엔 검색과 유튜브 등 정보기술 환경이 있다. 지난 17일 애슐리 랜드럼 미 텍사스공대 교수는 미 과학진흥협회(AAAS) 연례 학술대회에서 “지구 평면설 추종자의 급증이 유튜브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랜드럼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구글에서 ‘평평한 지구’ 검색이 폭증했으며 평평한 지구 학회에 참석한 사람 30명을 인터뷰한 결과 모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지구 평면론자가 됐으며, 신봉자들의 평균 연령이 젊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터뷰한 평면설 신봉자들은 대부분 9.11테러와 달착륙 음모론 동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는 동영상 시청이 완료되면 유사 콘텐츠를 자동재생하고 추천한다.
1969년 7월10일 달 표면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과 미국 국기. 음모론자들은 대기가 없는 달 표면에서 깃발이 펄럭일 수 없다며 달 착륙은 조작된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실감나는 깃발 사진을 위해, 미리 펄럭이는 모양의 깃발을 준비했다고 설명했고, 이를 입증하는 깃발 게양 전후의 동영상도 있지만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유튜브의 추천과 자동재생 알고리즘은 유튜브가 허위 조작정보와 가짜뉴스의 유통 경로로 활용됨에 따라 비판받고 있다. 유튜브에서 3년 동안 추천 시스템을 다뤘던 유튜브의 전 엔지니어 기욤 샬로(Guillaume Chaslot)는 지난해 2월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특정 의도를 지닌 채 작동한다고 폭로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진실에 가깝거나 균형 잡혀 있거나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용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시청시간(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극적 영상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관련 영상을 자동 재생한다는 의미다. 샬로는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을 개선시킬 방법이 많이 있지만, 유튜브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 2월 연구 발표에서 랜드럼 교수는 평평한 지구 신봉자 증가와 관련해 유튜브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지만, 음모론 확산 방지를 위해 유튜브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유튜브가 지난 1월 공개한 대책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유튜브는 이때 “가짜 기적의 치료법, 지구 평면설, 9.11 허위 주장 동영상 등 유해한 방법으로 사용자들을 오인할 수 있는 콘텐츠와 이와 유사한 콘텐츠에 대한 대한 추천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