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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데이터는 석유가 아니다”

등록 2019-03-01 14:00수정 2019-04-05 10:04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구축한 대형 서버. 수많은 분량의 개인정보들이 모인 빅데이터 저장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구축한 대형 서버. 수많은 분량의 개인정보들이 모인 빅데이터 저장고다.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마르티네스·와이겐드, 잇따라 “데이터는 석유 아냐”
정제기술·용도 발견 ‘검은 황금’ 석유와 비교됐지만
생성량, 가공비용, 소유 방식 등 물질적 재화와 차원 달라
“빅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다.”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정제 기술과 사용처를 발견하면서 무한한 가치의 원자재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와 석유는 비교되어 왔다. 며칠 만에 인류가 전 역사를 통해 생성한 양만큼의 데이터가 생성되는 사물인터넷 환경에서 빅데이터의 가치는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기하급수적 증가 속도로 인해 사람이 인지하고 처리할 수 없는 규모의 빅데이터를 다루는 프로그래밍 도구와 인공지능 기계학습의 도움으로 빅데이터의 가치는 더 주목받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인공지능 기술자와 더불어 수요에 공급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다.

그런데, 이미 상투어가 된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라는 비유를 반박하며 “데이터는 석유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돼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 최신호는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가 아니다”라는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의 글을 실었다. 마르티네스는 버클리대 물리학 박사로, 골드먼삭스에서 퀀트전략가와 페이스북에서 광고플랫폼 개발자로 일했다. 국내엔 실리콘밸리의 실태를 고발한 저서 <카오스 멍키>가 소개돼 있다.

그는 기고를 통해 석유가 물질적 형태 덕분에 운반, 유동화, 거래가 가능하고 정제를 통해 연료와 화학원료가 되고 회계장부에 기재할 수 있지만, 데이터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고객 정보는 엄청난 가치의 데이터이고 이용과 거래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회계장부에 기재할 수 있는 형태의 자산이 아니다. 그는 또한 페이스북, 구글 등이 이용자의 데이터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으므로, 이용자들이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데이터 배당금’을 해당기업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비판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이용자 동의없이 이용자의 정보를 가져간 게 아니고, 이용자가 편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이용한 결과가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알래스카 주정부가 석유 개발이익을 전체 주민에게 1년에 1600달러(약 180만원)씩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것과 달리, 페이스북의 가입자 1인당 연간 매출액은 25달러(약 2만8000원)에 불과해 배당금 지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이터의 가치는 이용자가 제출한 정보 자체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플랫폼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사후적으로 생성된 부가치라는 점도 ‘데이터 배당금’의 주장을 허문다.

“기존 법률과 사회규범 물질적 소유 기반해, 빅데이터 시대에 부적합”

지난해말 국내에 번역된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저자인 안드레아스 와이겐드(Andreas Weigend)도 데이터를 원유에 비교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해온 인물이다. 둘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와이겐드는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로, 아마존의 수석과학자를 지내며 데이터 전략을 수립했고, 현재 스탠퍼드 소셜데이터 연구소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독일 메르켈 정부의 디지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이용자 데이터 활용 서비스와 전략을 만들어온 데이터 전문가이다.

와이겐드는 좀더 분석적으로 석유와 데이터의 구조를 비교한다. 석유는 매장량이 무한하지 않고 시간 경과에 따라 채굴 비용과 생산비가 상승한다. 반면 데이터는 석유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생성량이 늘어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비용 또한 지속 감소하는 구조다. 석유와 같은 물질적 자원을 접근하는 관점에 있어서 기존의 법률과 사회규범은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하고 유한하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데이터 사회는 그 무한성과 비용 감소세로 인해 재화의 유한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존 사회규범을 적용하는 게 부적합하다는 게 그의 핵심 논지다.

그의 주장은 소유와 통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이어진다. 기존 소유의 개념은 물질적 세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물질적 소유는 기본적으로 배타적이고, 소모적이고 제한적 대상을 점유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데이터의 소유는 물질적 소유와 달리 비배타성, 비소모성, 무제한성을 지닌다. 유사 이래 지배적이었던 소유권 개념이 데이터 시대에 달라져야 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데이터 통제권과 관련해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이동성을 주창한다. 데이터의 주체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자유로운 이동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플랫폼 기업과 조직을 대상으로 투명성을 요청해야 한다. 인류가 지난 1000년간 신체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투쟁해왔다면 이제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석유와 비교되어선 안된다”라는 이들의 주장 또한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라는 상투어처럼 데이터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이들 주장은 데이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클리셰대신 좀더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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