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인해, 앞으로 사람의 일은 기계를 위한 데이터 제공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인공지능을 위해 인간이 노동을 하는, 도구와 사람의 역할이 역전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위한 노역을 제공하는 일이 핀란드 교도소 2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매체 <버지>는 지난 3월28일 핀란드의 데이터마이닝 스타트업 기업인 바이뉴(Vainu)가 헬싱키와 투르쿠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인공지능을 위한 노역을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의 데이터마이닝 기반의 정보기술 스타트업 바이뉴(www.vainu.io)의 홍보 페이지.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주어진 노역은 인터넷에서 수집된 수십만개 기사를 읽고 태그를 다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애플’에 관한 기사가 정보기술기업 애플에 대한 정보인지, 과일 사과에 관한 정보인지를 구분해주는 일이다. 바이뉴의 공동창업자 투오마스 라실라는 “영어에서 이러한 일은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핀란드어에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뿐”이라고 <버지>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바이뉴는 핀란드 교정청(Criminal Sanction Agency)과의 협약을 통해, 3개월 전부터 ‘수감자 노동’을 활용하고 있고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약 100명의 수감자가 날마다 몇 시간씩의 인공지능 분류작업을 위한 태깅 작업을 하고 있다.
핀란드 교정청은 바이뉴의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징역형 재소자에게 시켜온 육체노역과 달리 새로운 제안은 물리적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교도소 징역의 작업 도구가 종종 위험한 흉기로 사용되는 현실에서 새로운 인공지능 노역을 위해 필요한 도구는 노트북뿐이었다. 국내 교도소내 노역도 주로 목공, 봉제, 영농 등의 작업으로 진행된다. 또한 교도소내 노역이 징벌 부과와 함께 작업을 통한 직업기술 훈련의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 출소 이후 사회 적응을 돕는 목적을 띤다는 점은 핀란드 교정당국의 긍정적 수용 배경이다. 교도소 인공지능 노역에 대해 당사자인 인공지능 기업과 교정당국간은 ‘호혜적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핀란드 교정청과 연간단위의 계약을 맺고 있는 바이뉴는 이러한 형태의 계약을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로 확장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인공지능 위한 교도소 노동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수감자를 미래 직무에 적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바이뉴가 수감자들에게 제공한 인공지능 업무의 학습효과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필요한 직무능력은 문해력뿐이다. UCLA의 정보과학 교수 사라 로버츠는 “이는 반복적이고 시시하고 단조로운 일일뿐”이라며 “수감자들이 메커니컬 터크와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지만, 메커니컬 터크의 임금은 극도로 낮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버지>에서 지적했다.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는 전세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인데, 글로벌 수준의 실질적 최저임금에 수렴하는 결과로 귀착된다. 최근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2달러(2300원)로 형성돼 있다.
인공지능을 위한 교도소 노역은 해묵은 논란으로 이어진다. 수감자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일이라고 보는 관점과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훈련이라는 관점간 논쟁이다. ‘인공지능’ 업무가 추가됐을 뿐, 본질적으로 교도소 노역을 둘러싼 논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