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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TMI’ 현상은 왜 생겨났을까?

등록 2019-05-21 15:38

2019년 4월 한 케이블방송사는 아이돌 관련 시시콜콜한 연예정보를 다루는 토크쇼 ‘TMI 뉴스’라는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2019년 4월 한 케이블방송사는 아이돌 관련 시시콜콜한 연예정보를 다루는 토크쇼 ‘TMI 뉴스’라는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단순 정보 과잉 아닌 ‘부적절한 사용’
정보접근 쉬워져 ‘불쾌한 사용’도 늘어
“적절한 주의 기울이는 방법” 가치 커져
‘너무 과한 정보’라는 의미의 ‘티엠아이(TMI: Too Much Information)’라는 줄임말이 대화나 채팅창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또는 누군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사소하고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듣는 이가 “티엠아이”라고 말한다. “그건 사생활 침해 수준이야” 또는 “그런 정보는 알고 싶지 않아”라는 반응이다. ‘안물안궁’(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아) 약어와 유사하다. 지난 4월 한 케이블 방송사는 아이돌 관련한 시시콜콜한 연예정보를 다루는 토크쇼 ‘TMI 뉴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왜 ‘TMI 현상’이 생겨났을까. TMI는 사람들이 현 정보사회에 대한 느낌을 포착한 단어인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쓰임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TMI 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정보사회의 대표적 부작용인 정보 과부하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인간의 유한한 인지 용량과 정보 처리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전달되고 유통되는 데 대해 이용자들이 ‘너무 많은 정보(TMI)’라고 반응하는 셈이다. 10년 전인 2008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캠퍼스의 세계정보산업센터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미국인들이 날마다 소비하는 정보는 34기가바이트로 영어 10만단어 수준이었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 규모는 32배 넘게 폭증했다. 그러나 과잉정보는 정보 자체의 과다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추구해왔으며 그 과정은 문명 발전과 삶의 질 개선의 역사다. 인간 정보추구 본능의 결과를 ‘과잉정보’라고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정보 처리의 실패, 적절한 정보를 선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정보에 파묻히는 현상에 대한 반응이 TMI다. 이용자 주도의 선택이라기보다 모바일 기기와 푸시 알림에 노출되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인 정보 이용습관에 대한 반작용이다. 정보 과잉이 아니라 이용자의 정보 선별(필터링) 실패다. ‘정보 과부하’, ‘인포데믹스’가 과잉 정보의 부작용을 지칭한 학술용어라면, TMI는 정보 이용자들이 만든 조어다.

둘째, TMI는 정보의 부적절한 정보 사용 증가를 드러낸다. 특정한 정보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해당 정보를 부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상황이 문제일 따름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정보로 넘쳐난다. TMI 현상은 습관적인 정보생활에서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정보 유통이 불쾌감을 유발하는 상황이다. 불필요한 정보이지만 인터넷에서는 검색 한 번으로 손쉽게 찾아내 익명으로 유통할 수 있다. 과잉정보, 부적절한 댓글로 누군가에게 흠집을 내고 사생활을 침해하기 너무 쉽다. 정보 접근과 유통의 문턱이 낮아져 개인은 편리함과 영향력을 누리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쓴다고 해서 정보 유통자로서의 힘과 영향력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마저 저절로 익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사회가 가져온 딜레마는 무한한 정보 증가와 달리 사람의 시간과 주의력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정보가 늘어나고 접근 문턱이 낮아질수록 유용하고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 제한된 주의력을 할당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 된다. 정보화기술과 기기의 보급 증가와 함께 가짜뉴스 현상이 확산되는 현실이 보여준다. ‘TMI’가 널리 쓰이는 상황은 모든 정보가 늘 유용한 것도 적절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한한 정보 속에서 제한된 주의력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는 능력이다.

지난 1월 숨진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끝없이 적절한 일”이라며 ‘인생사용 설명서’라는 시에서 “관심을 기울이라, 한껏 놀라라, 그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노래했다. TMI는 무한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주의력의 가치를 일깨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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