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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유독 한국에서 흥행 부진했던 ‘스타워즈’ 시리즈

등록 2019-06-03 06:00수정 2019-06-03 10:29

[박상준의 과거창]
전통 서사에 과학 상상 보탠 SF대작
과거 대신 미래서 찾아낸 영웅 신화
낯선 가상 세계에 한국 관객들 외면
1970년대 말 출간된 ‘스타워즈’ 번역서들.
1970년대 말 출간된 ‘스타워즈’ 번역서들.
1977년에 처음 발표된 ‘스타워즈’는 세계영화사를 새로 쓰게 만든 대작이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이 연작물이 흥행하지 못했다. ‘아바타’나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인터스텔라’처럼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SF 외화들 사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2015년에 개봉된 ‘스타워즈:깨어난 포스’가 300만을 넘긴 것이 최고 실적이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은 100만을 넘긴 것도 드물다. 대규모 제작자본을 투입한 할리우드 상업영화 기획물이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은 우리나라 영화 시장의 규모로 볼 때 이례적이라 할 정도이다. 이유가 뭘까?

‘스타워즈’가 영미권에서 성공한 것은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포장을 무척이나 세련된 솜씨로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SF 장르는 이른바 ‘B 무비’, 즉 저예산으로 만드는 통속적 오락극 성격이 강했다. 조악한 특수효과에 뻔한 줄거리와 단순한 설정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스타워즈’는 기존의 대하 역사물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공이 들어갔다. 웅장한 비주얼에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그전까지 선보였던 어떤 SF와도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그런 시도는 미국의 짧은 역사성을 만회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건너와 넓은 북미대륙을 차지한 지 500년도 채 안 된 백인들에게는 자기 자신만의 신화나 전설이 없었다. 눈부신 산업 성장으로 20세기에 세계의 맹주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문화적 전통은 몹시 빈곤했다. 결국 그들은 과거 대신 미래로 눈을 돌려 창과 말이 아닌 광선 총과 우주선으로 새로운 영웅 신화를 만들어냈다. ‘스타워즈’보다 10여년 일찍 TV 시리즈로 먼저 시작한 ‘스타 트렉’도 마찬가지다. 미지의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탐험에 나선다는 설정은 좁게는 서부개척시대부터 넓게는 제3세계를 향한 제국주의적 확장을 ‘진취성’으로 포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점들 때문이라 보인다. 굳이 그런 것에 열광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온갖 설화나 전설 등 풍부한 고유 서사들이 있다. SF라는 장르의 문법도 생소한 데다 배경이나 인물은 온통 낯선 가상의 세계이니 여러모로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게다가 ‘스타워즈’나 ‘스타 트렉’은 몇십년에 걸쳐 연작으로 이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세계관을 차근차근 수용할 환경도 되지 않았다.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 것은 1978년인데, 그 뒤로 나온 속편들은 수입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개봉이 몇 년씩 늦어지거나 순서가 뒤바뀌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한편 영화 수입배급업과는 달리 출판계는 아직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기 전이라서 해외 도서들의 이른바 ‘해적판’ 출판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스타워즈’ 소설판도 동시에 여러 군데서 중복으로 출판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스타워즈’ 번역서는 확인된 것만 최소 5종이 넘는다. 물론 ‘스타워즈’가 해외에서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하리라 기대하며 앞다투어 내놓은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기획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스페이스 오페라’, 즉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웅활극담의 전망은 앞으로도 계속 어두울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소설 및 영화 부문에서 중국의 SF 창작 역량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양상을 보면 새로운 판도를 가늠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국이나 동아시아의 신화와 전설들이 SF라는 새로운 외피를 입고 극장가에 등장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기술은 할리우드를 비슷하게 따라잡았다. 시각디자인이나 스토리 텔링 등의 세련미만 갖춰진다면 최근에 중국 역대 2위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유랑지구’처럼 경쟁력 있는 아시아산 대작 SF영화들이 속속 선을 보일 것이다. 지금 극장가를 채우곤 하는 ‘마블 유니버스’ 같은 작품들의 유통기한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나는 것은 아닐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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