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검토하게 될 부유식 해상도시 ‘오셔닉스 시티’ 조감도. BIG 제공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도시가 빈곤층을 물 가까이 밀어넣고 있다.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물과의 공생을 생각해야 할 때다. 해상도시가 대안이다. 9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토론 결과를 제출해 달라.”
지난 4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의 고위급 원탁회의에서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차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혁신가, 엔지니어, 과학자들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져 온 해상도시를 유엔이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유엔이 2030년을 목표로 추구하는 `지속가능개발 어젠다 17'의 11번째 항목이다.
왜 이런 검토를 하게 됐을까?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요즘 지구촌은 유례없이 더운 해들을 보내고 있다. 인류가 공식적으로 기온을 기록하기 시작한 1880년 이후 가장 기온이 높은 해 1~5위가 모조리 2014년 이후에 몰려 있다. 5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또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파헤치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산림을 없앤 대가다.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3.2도 상승이 우려된다.
기온이 높아지면 바닷물 수위도 높아진다. 바닷물이 팽창하고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오는 탓이다. 기후변화정부협의체(IPCC) 5차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방치할 경우 2100년까지 해수면 상승 폭이 52~98cm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엔 상승 폭이 2100년 2m를 넘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뉴욕, 상하이, 뭄바이, 도쿄, 베네치아 등 주요 대도시 상당수가 바다와 닿아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0%인 24억명이 해안지대에 거주한다. 해수면 상승은 이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 기후변화 감시단체 클라이미트 센트럴은 3도 상승시 2억7500만명이 터전을 잃을 위험에 처할 것으로 우려한다. 남태평양 섬나라 가운데 일부는 이번 세기 중반이면 완전히 해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대량 기후난민 사태가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회의는 유엔이 그 대책으로 해상도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뱅상 칼보가 제안한 부유식 해상도시 ‘릴리패드’. 수련 모양을 본떴다. 뱅상 칼보 웹사이트
해상도시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세계 곳곳의 강과 해안에서는 수상주택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멕시코 아즈텍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위에 조성한 도시였다. 아틀란티스, 유토피아 같은 상상 속의 이상향 섬들도 해상도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세계적인 고도성장과 함께 도시 재건 붐이 일자 세계 건축가들은 유토피아적인 해상도시 구상을 잇따라 쏟아냈다. 그러다 21세기에 들어 지구 온난화가 뚜렷해지면서 해상도시는 기후변화 피난처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벨기에의 생태주의 건축가 뱅상 칼보가 제안한 해상도시 릴리패드다. 릴리패드는 2100년 상황을 가정한 자급자족의 해상도시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도시의 절반은 수중에, 절반은 수면 위에 떠 있다.
유엔이 이번에 검토 모델로 삼은 것은 타히티의 기업가 마르크 콜린스 첸과 덴마크 건축그룹 비아이지(BIG)가 함께 제시한 `오셔닉스 시티'다. 오셔닉스 시티는 최대 1만명이 살 수 있는 해상도시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장 3개 반 크기의 육각형 인공섬이 기본 단위다. 이 인공섬을 6개 결합하면 작은 마을을 만들 수 있다. 이를 다시 6개 결합하면 1만여명이 거주하는 소도시가 만들어진다. 해상도시 외곽에는 태양광 발전, 식량 재배 같은 특정 용도의 해상플랫폼을 배치한다. 이 시설들은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겸한다.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운영 방식은 소유가 아닌 공유를 원칙으로 한다. 필요한 물품들은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빌려쓴다. 식량은 수직 수경농장으로 자급하고 음식쓰레기는 퇴비로 재활용한다. 이동수단은 도보와 자전거, 전기차를 주축으로 한다. 해상도시는 바이오락으로 해저에 고정돼 있다. 바이오락은 바다에 철근 구조물을 침수시킨 뒤 여기에 전류를 흘려 바닷물에 녹아 있는 미네랄(광물질)을 굳힌 것이다.
부유식 해상도시는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이한석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교수는 “입지에 따른 비용이 문제일 뿐, 기술적으론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도 설계기술은 확보돼 있다”며 “도시 규모에 맞춰 다양한 계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유엔본부 앞을 흐르는 이스트강.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상도시의 장점은 뭘까? 도시 확장에 따른 자연 파괴를 막을 수 있다. 값비싼 땅값도 절약할 수 있다. 낯설고 물 선 내륙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있다. 바다에 떠 있으니 해수면 상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넘어야 할 걸림돌도 많다. 바다에 고정하려면 건축비가 많이 든다. 육지보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자연재해에도 취약하다.
오셔닉스 시티는 오는 가을 유엔본부 앞의 이스트강에서 모형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곳도 이번 세기 안에 바다에 잠길 수 있는 곳이어서 제법 상징성이 있다. 유엔은 이를 보고 해상도시를 공식적인 대안으로 삼을지 본격 검토할 계획이다. 해상도시가 과연 기후난민들을 위한 21세기 `노아의 방주' 후보로 선택받을지 지켜보자.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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