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를 만들어내던 기술이 가짜를 적발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까? ‘뽀샵’으로 불리는 포토숍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서 조작된 부분을 찾아내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 개발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 이미지 편집프로그램인 ‘포토숍’을 만든 어도비는 지난 14일 블로그에 글을 올려, 디지털 이미지의 조작된 부분을 찾아내 표시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장, 올리버 왕 등 어도비 소속 연구자들이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로,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딥페이크 탐지 개발프로젝트의 후원을 받았다.
어도비가 공개한 이 기술은 포토숍의 ‘픽셀 유동화(pixel liquify)’ 기능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포토숍의 ‘얼굴인식 픽셀 유동화’는 얼굴의 특정 부분을 자동 감지해, 간편하고 매끄러운 ‘뽀샵’ 효과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인물의 눈을 크게 만들려 하면 눈에만 영향을 주는 도구를 선택해 눈의 크기, 높이, 너비, 기울기와 거리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포토숍 픽셀 유동화 도구 사용 이전과 이후의 이미지를 포함하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인공지능 신경망을 학습시킨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실험결과 사람은 이미지의 픽셀 유동화 적용 여부에 대해 무작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 53% 식별율을 보였는데, 알고리즘이 구별해낸 비율은 99%에 달했다. 이 알고리즘은 픽셀 유동화를 이용해 조작하고 보정한 이미지를 ‘되돌리기’ 기능을 이용해 원래 이미지를 찾아낼 수도 있다. 현재 이 기술은 포토숍의 픽셀 유동화 기능에 국한되고 다른 이미지 편집 제품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연구진은 대상과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도비 포토숍의 픽셀 유동화 기능.어도비 제공.
어도비는 “우리가 1990년 출시한 포토숍이 창의성과 표현 민주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우리 기술의 윤리적 의미도 인정한다”면서 “이미지 편집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시각 이미지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가짜 콘텐츠는 절박한 문제”라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어도비는 이번 조작 이미지 기술 개발을 소개하면서, “이미지 포렌식 민주화의 여정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복사기가 만인을 언론 발행인으로 만든 것처럼, 포토숍은 소수 전문집단만 가능했던 이미지 편집과 조작 기술을 보편도구로 확대했다. 가짜와 ‘뽀샵’을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에 비해, 해당 이미지의 조작 여부를 밝혀내는 일은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오래전부터 법정에서는 동일성을 확보할 수 없는 디지털 이미지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아왔고, 이미지 변조여부를 확인해주는 디지털 포렌식은 검찰과 경찰, 연구소 등 전문기관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가짜 콘텐츠의 범람이라는 혼돈스러운 현실은 포토숍이 대중화된 것처럼 디지털 포렌식 도구의 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편리하게 조작 여부를 검증해주는 인공지능 포렌식 도구가 등장한다고 해도, 진짜와 가짜를 식별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 될 것이다. 가빈 밀러 어도비연구소 소장은 “이 알고리즘은 특정 유형의 이미지 편집을 탐지하는 중요한 단계”라면서도 “이런 기술을 넘어 최선의 방책은 사용자집단이 콘텐츠가 조작될 수 있다는 걸 아는 비판적 사고력이다”라고 말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