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 인공지능 연구개발 그랜드챌린지’ 대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정보통신기술평가원 주관)는 한국 인공지능과 드론 산업의 현주소와 과제를 드러냈다.
기존의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연구계획서 심사 위주의 선정 방식인 데 비해 ‘인공지능 R&D 그랜드 챌린지’는 정부가 대형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다수의 참가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연을 벌이고 우수팀에 후속연구비를 지원하는 도전·경쟁형 R&D 경진대회이다. 미국 국방부의 ‘다르파(방위고등연구계획국) 챌린지’를 모델로, 과기정통부가 지난 2017년 도입한 경진대회다. 첫 해인 2017년엔 ‘낚시성 문구 검출’, 지난해엔 ‘합성사진 판별’을 주제로 열려, 우수팀(각 3개)에 후속 연구비 총 27억원이 지원됐다. 올해부터는 1개년 문제해결 ·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4년에 걸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융합해 문제를 해결하고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형태로 확대 개편됐다.
올해 대회는 인공지능과 제어부문 4개 트랙으로 개최되었다. 트랙별 입상팀에겐 상금과 별개로 후속 연구개발을 위한 자금이 최대 6억원이 지원된다.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년도 인공지능 R&D 그랜드챌린지’ 참가자들이 대회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구본권 기자
트랙1 ‘상황인지’는 드론으로 촬영된 동영상의 내용을 인공지능이 얼마나 파악하는지를 테스트하는 문제다. 지하철역, 도로, 골목 등 일상생활에서 드론을 띄워 촬영한 동영상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사람과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이 테스트에서는 동영상에서 동일한 사람이 여러 차례 등장하더라도 이를 동일인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관건이다. 재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소화기, 소화전, 대피에 필요한 차량, 버스, 오토바이 등을 얼마나 잘 식별했는지도 평가했다.
트랙2 ‘문자인지’는 드론이 촬영한 대규모 이미지에서 한글과 숫자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지도 데이터와 사전지식 없는 공간에 드론이 투입된 경우 영상에서 표지판이나 간판 등에 나타난 문자를 통해 현장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외국의 인공지능 대회에서도 비슷한 문제인지 테스트가 많지만 한글 데이터는 없다. 한글이 포함된 문자를 식별하는 데이터가 구비되면 비상상황에서 유용성이 크다.
트랙3 ‘청각인지’는 재난 현장에서 스테레오 채널로 제시되는 음성의 방향과 발원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실외 공간에 20도 각도로 스피커를 9대 배치한 뒤 각각의 스피커에서 “살려주세요” “여기예요”라는 구조요청 목소리를 내보내 드론이 이 음성을 녹음한 뒤 참가자에게 들려준 뒤 방향과 발원 스피커를 파악하게 하는 테스트다.
트랙4 ‘제어지능’은 드론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다양한 장애물이 있는 테스트 공간에서 자율비행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문제다. 자동이륙, 창문통과, 폴 구간, 파이프 통과, 숲 구간, 그물 구간, 강풍 구간, 자동착륙 총 8단계로 구성된 미션을 자율비행으로 통과해야 하는 미션이다.
1트랙 라온버드, 2트랙 이스트소프트, 3트랙 한국건설기술연구원, 4트랙 카이스트 팀USRG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4개 트랙에서 가장 높은 성취가 나온 영역은 ‘문자인지’이고, ‘제어지능’은 성적이 가장 낮았다.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년도 인공지능 R&D 그랜드챌린지’에서 참가팀별로 과제 해결을 수행하고 있다.구본권 기자
가장 낮은 성적을 보인 ‘제어지능’ 부문 경쟁은 국내 인공지능 생태계를 보여준다. 평가 실무를 진행한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이세연 수석에 따르면, 4트랙엔 애초 19개팀이 참가를 신청했으나 최종 출전한 팀은 8곳뿐이었다. 대회를 3일 앞둔 7월9일부터 갑작스럽게 참가할 수 없게 됐다는 포기 신청이 잇따랐다. 대부분 드론 기체 손상 때문이었다. 대회 운영위원회는 4트랙에서 팀당 드론을 2기까지 허용했는데, 대회를 앞둔 마지막 연습에서 많은 팀의 드론이 파손되어 출전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국내에 드론 제작 기술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출전팀들은 기성품 드론이 아니라 챌린지 용으로 별도 제작하거나 커스터마이징했다. 출전팀은 대부분 4기 안팎의 기체를 제작해 연습용, 출전용으로 준비했는데 대회 연습을 앞두고 배터리가 타기도 하고, 비행 도중 부딪혀 날개가 파손돼 출전하지 못했다. 대회 당일 이동하다가 망가져 출전이 불가능해진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드론 자율비행인 4트랙은 과제도 고난도였다. 과기정통부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 수준의 문제를 요구해 장기 경쟁을 유도한 측면도 있지만, 실제 완주팀이 1곳도 없었다. 많은 팀이 8단계 임무 중 2단계인 창문 통과에 실패했고 폴 구간에서 대부분 추락했다. 폴 구간을 통과하려면 컴퓨터 비전기술이 있어야 하고 라이다, 레이더 등 센서 기술이 필요하다. 촘촘하게 막대가 꽂힌 구간을 통과하자면 드론이 작을수록 유리하지만, 큰 덩치는 비행에 불리한 모순적 상황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능력과 드론 기체의 하드웨어 비행능력간의 결합을 요구하는 과제였지만, 인터넷 연결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드론은 탑재 컴퓨터의 인공지능만으로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다.
파이프 통과도 난제였다. 사람과 달리 드론이 파이프를 식별하긴 어렵다.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둥그런 빛만 보이기 때문에 입구를 제대로 찾는 게 어려운 일이다. 또한 진입에 성공을 해도 파이프 안은 어둡고 프로펠러 때문에 와류가 발생해 좁은 공간에서 균형잡기가 어려워진다. 가까스로 파이프 구간까지 통과한 팀이 1위가 됐고, 많은 팀이 조기 탈락해 4트랙은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흥미로운 현상도 보고됐다. 경진대회가 끝난 뒤 남아 있던 참가팀들이 딥러닝 기반의 드론을 출제문제 세트 환경에서 반복학습을 했는데, 1위를 한 카이스트팀은 3차례 연습만에 8단계 임무를 모두 통과하고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4트랙 참가팀들은 그동안 국내에 드론과 인공지능을 이번 챌린지대회처럼 실제 환경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데 세트를 통해 구체적 문제가 주어진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일부 팀은 경기 뒤 4트랙 챌린지 세트를 폐기하는 대신 자신들이 인수해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타진했으나, 애초 예산 문제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1회용 세트로 만들어져 해체 뒤 재조립이 불가능한 세트였다.
국내 인공지능, 드론 기술과 생태계의 한계와 과제,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2019 인공지능 R&D 그랜드 챌린지’였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