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자동번역 시대에 외국어 능력은 얼마나 필요할까. 지난달 열흘 동안 산장에 묵으며 몽블랑 둘레길(투르드몽블랑) 트레킹을 했는데, 자동번역의 요긴함과 한계를 동시에 경험했다. 둘레길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걸쳐 있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공식 언어이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등반객은 다양한 언어 사용자였다.
투르드몽블랑 트레킹 루트에 있는 산장에는 한국 여행자들도 적지 않아 구글 번역을 활용한 한국어 안내가 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사진처럼 한글 번역문구로만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스마트폰 사전과 번역 앱은 유용했다. 둘레길의 표지판은 지명과 방향, 소요시간만 알려주기 때문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표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당 간판이나 메뉴, 안내문 등을 읽어야 할 때 스마트폰의 이미지 검색이나 번역앱은 요긴했다. 낯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단어를 사진 찍은 뒤 번역하면 해결됐다. 특히 세 나라 식당 메뉴판은 현지 언어로만 쓰여 있어 무슨 음식인지 알 길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마트폰으로 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번역앱을 쓸 수 있지만 외국어 능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열흘 동안 산길을 걷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지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게 마련이다. 쉬는 곳이나 숙소도 겹치기 때문에 자주 마주치는 등반객들과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분도 쌓게 된다. 낯선 이들과 예기치 않은 만남과 대화는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봉주르’ ‘본조르노’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인사말은 바로 익혔지만 거기까지일 뿐, 대화는 불가능했다. 긴급한 도움을 요청할 사정이 있으면 번역앱이라도 사용했겠지만, 처음 만나 가볍게 인사하는 사이에서 그럴 일은 아니었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과는 여러 날 산길을 가는 동안 적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프랑스어만을 쓰는 여행자들과는 대화할 수 없었고 산장에서 여러 날을 함께 묵으면서도 친분을 쌓지 못해 아쉬웠다.
위의 자동번역 안내가 세면장에 붙어 있던 프랑스 샤모니 지역의 르 물랭 산장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환경에서 자동번역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번역앱 사용은 더 편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간 의사교환에서 도구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와 눈빛과 목소리로 바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의 차이는 크다. 글로벌화는 여행 수요만이 아니라 사업이나 학술 등 외국어가 중요한 환경과 소통 필요도 점점 늘리고 있다. 인공지능 자동번역 기술의 발달은 과거처럼 무작정 단어 외우기와 같은 학습법을 바꾸고 있지만,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은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글·사진/샤모니(프랑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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