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미래 생각하는 시대…제5의 시나리오를 만들자

[곽노필의 미래창]
팬데믹 공습에 달라진 일상과 세상
문명의 이면을 목격한 지금이 바로
지속가능한 지구 만들 절호의 기회

코로나19 전과 후의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 유럽우주국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이 우리 모두를 일시에 ‘미래주의자’로 바꿔놓은 것같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코로나19 이후엔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들 말한다. 코로나19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지금의 세상 풍경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인간 활동이 뜸해지자 공기가 맑아졌고, 하늘과 땅과 바다가 조용해졌다. 거리는 한산해지고, 밤은 더 어두워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경이다. 직장은 재택근무에, 학교는 화상강의에, 학계는 온라인세미나에, 문화계는 랜선행사에 익숙해지고 있다. 밖에선 마스크를 쓰고, 집에 들어와선 비누로 손을 빡빡 씻는다. 현대 산업문명 이후 전 세계가 이렇게 똑같은 유형의 일상을 보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이는 각 나라와 개인들의 새로운 길잡이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다섯달째에 접어든 지금 그 미래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까?

딜로이트가 시나리오 전문가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시나리오 네 가지를 내놨다. 픽사베이

국제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시나리오 전문가들과 함께 작성한 3~5년 후 세계 시나리오가 생각의 붓끝이 될 수 있다. 첫째는 지금으로선 최선이라 할 `지나가는 폭풍'. 사회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입기는 하지만 각 나라가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은 경우다. 각국은 사태 해결에 적극 협력하고 시민들은 사회적 격리를 준수한다. 백신이 조기에 개발되고 바이러스의 2차 대유행도 없다. 하반기부터 경기가 반등을 시작하지만 대대적 부양책에도 중소기업들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본다. 이는 계층간 긴장을 심화시킨다.

둘째는 기업사회로 전환하는 `좋은 친구' 시나리오다. 정부가 바이러스 퇴치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경우다.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재택근무 등 기업에 좀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하는 사회로 바뀐다. 대기업 의존도가 더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사회 재건을 위해 소비자와 주주, 종업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반면 정부 신뢰는 떨어진다.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면서 가상현실, 인공지능, 3D프린팅 기술혁신이 일어난다.

셋째는 국제질서 재편을 뜻하는 `해뜨는 동쪽' 시나리오다. 바이러스를 비교적 일찍 제압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경우다. 중국, 대만, 한국에서 보여준 강력한 중앙정부의 대응 능력이 세계 표준이 된다. 중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 해외투자를 크게 늘려 이름값을 높이려 한다. 사람들은 공공선을 위한 감시 메커니즘을 수용한다.

넷째는 세계가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고독한 늑대' 시나리오다. 바이러스 확산 차단에 실패하면서 각국이 협력 대신 고립 노선을 택하는 경우다. 사망자 급증, 사회 불안, 경제 추락이 어우러지면서 사회 전반에 불신이 팽배해진다. 각국은 자국 안전을 우선하고 외국인을 배격한다. 안전을 이유로 정부의 감시통제가 일상화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최악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경기 반등에서도 나라별 차이가 크다.

코로나19 이전(오른쪽)과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신전. Maxar Technologies 제공

지금 인류는 어떤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을까? 각각의 시나리오 상황에서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뭘까? 이런 물음을 던지도록 하는 것이 시나리오의 역할이다.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지금 뭘 해야 하는지가 하나둘씩 떠오르게 된다. 어떤 미래상이 현실이 될지는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제5의 시나리오를 만들면 어떨까? 코로나19 사태를 지속가능한 지구 시스템 구축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말이다. 19세기 말 바이러스의 발견은 서구인의 생활과 행동양식을 크게 바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질병 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생 개념이 일거에 달라졌기 때문이다. 구강청결제 같은 위생용품 산업도 이때 시작됐다. 코로나 팬데믹도 거대한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줄기차게 달려온 산업문명이 일시에 멈춰서면서, 인류가 번영을 명목으로 지구에 가한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생활 개념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폭력의 집약체는 기후변화다. 올해도 벌써 역대급 더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구 기온 상승 폭을 파국 경계선이라는 1.5도(산업화 이전 대비) 이내로 묶으려면 올해부터 10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7.6%씩 줄여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코로나19로 올해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8%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첫해의 감축 목표를 강제로 달성시켜주는 셈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그 책임은 오로지 인류의 몫이다. 코로나19가 벌어준 기간에 자연도 살고 인류도 사는 생활과 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하자. 코로나19가 우리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생각하고 준비할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줬다.

곽노필 선임기자 [e-mail],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