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대 연구팀이 지난해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페루의 쿠엘카야빙권(만년설)에서 아이스 코어를 채취하고 있다. 연구팀이 처음 탐사를 한 1976년에 비해 빙권 면적이 46% 줄어들었다. 오하이오대 제공
세계 열대지방 고산지대의 만년설(빙하)이 지난 50년 동안 최대 93%까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오하이오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9일 지구의 4개 반구에 산재해 있는 고봉들의 빙하를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위성 사진과 현장 조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케냐의 푼착자야산(5039m) 꼭대기의 빙하가 1980~2018년 38년 동안 93%가 사라지는 등 빙하 유실이 심각한 상태”라고 밝혔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5895m)의 빙하도 1986~2017년 동안 71% 가까이 감소했다. 연구팀은 1972년 발사된 나사의 랜드샛 인공위성이 촬영한 지표 사진들과 1976년부터 현지에서 드릴로 채취한 아이스 코어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 작업을 했다. 연구 논문은 과학저널 <지구와 행성 변화>에 실렸다.(DOI :
10.1016/j.gloplacha.2021.103538)
나사가 촬영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산 정상의 빙하. 1975년(왼쪽)에 비해 2019년 면적이 크게 감소했다. 나사 고다드우주센터 제공
연구팀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가 이들 빙하의 유실을 일으켰으며, 최근 들어 유실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빙하는 오랜 세월 인근 국가들의 수자원이었다.
논문 교신저자 겸 제1저자인 로니 톰프슨 오하이오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이들 빙하를 ‘석탄광산의 카나리아’에 빗댔다. 그는 “빙하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대기오염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 빙하는 온난화라는 지구 시스템의 변화를 경고하는 첨병이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크게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페루와 볼리비아의 안데스, 중남아시아의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의 빙하지대 등 4개 지역의 만년설 면적을 비교했다. 톰프슨 교수는 1976년부터 이들 지역의 탐사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이곳에서 채취한 아이스 코어에는 수백~수천년 동안의 기후 기록이 남아 있다. 해마다 눈이 빙하에 쌓이면 압력에 눌려 얼음층이 만들어진다. 얼음층에는 눈의 화학적 성분뿐만 아니라 당시 대기에 함유돼 있는 오염물질이나 꽃가루 같은 생물물질들이 들어 있다. 연구팀은 얼음층 분석을 통해 얼음이 형성될 당시의 대기 성분을 알아냈다.
열대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인 페루 우아스카란산(6768m)의 2019년 사진은 얼음이 사라져 바위가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콜로라도대 연구팀의 분석을 보면 이 산 정상 부근의 빙하는 1970~2003년 사이 19%가 줄어들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페루 쿠엘카야빙권(만년설)의 2020년 현재 면적은 톰프슨 교수팀이 처음 정상에서 아이스 코어를 채취한 1976년과 비교해 46%가 감소했다.
열대지방의 빙하들은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더 빨리 반응한다.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빙하는 높은 고도에서만 유지된다. 지구온난화 이전에는 수증기가 눈으로 바뀌어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경우 비로 내려 빙하를 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게 한다.
논문 공동저자인 크리스토퍼 슈만 볼티모어 메릴랜드대 교수 겸 나사 고다드우주센터 연구원은 “우리는 지구 최고봉들의 빙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산 꼭대기에는 충분한 눈이 쌓일 만큼 춥지만 고도가 낮은 경계면은 따뜻한 공기와의 상호작용으로 빙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빙하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한테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연구팀은 쿠엘카야빙권 인근의 주민 사례를 소개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큰 얼음덩이가 인근 빙하호수에 떨어져 홍수를 일으켰다. 이 홍수는 한 농민 가족이 수년에 걸쳐 개척해온 농지를 파괴했으며, 이 농가는 마을을 떠나 4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빙하의 상실이 많은 원주민들한테 문화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빙하 인근에 살고 있는 원주민은 얼음을 신의 머리로 여긴다. 톰프슨 교수는 빙하가 2~3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톰프슨은 “과학이 우리가 향하고 있는 길을 바꾸지는 않는다. 과학이 명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궤적을 바꾸려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