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6일 서울 남산 타워가 열기로 가득하다.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했으며 붉은색은 높은 온도, 푸른색은 낮은 온도를 나타낸다. 연합뉴스
기상청은 21일과 22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을 36도로 예보했다. 지난 16일 강원 홍천에서 기록된 전국 최고기온 35.7도와 서울 최고기온 35.2도를 넘는 수치다. 평년의 반절밖에 안 되는 짧은 장마 끝에 오는 강력한 폭염에 역대 1·2위를 겨루는 2018년과 1994년의 ‘불가마 더위’가 다시 닥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1994년의 7월 더위는 2018년을 능가하지만 8월에는 더위가 한풀 꺾였다. 전국 70개 지점에서 7월 최고기온 최곳값이 2018년에 기록된 곳은 23곳(33%)인 반면 1994년인 곳은 30곳(43%)으로 훨씬 많았다. 반면 8월 최고기온 최곳값이 2018년에 기록된 곳은 39곳(56%)이나 되는 데 비해 1994년인 곳은 강릉 한 곳뿐이다. 두 해 모두 올해 예상되는 기압계처럼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한반도를 뒤덮었지만, 8월 폭염의 차이를 가른 것은 태풍이었다.
2018년 여름 두 개의 태풍(암필과 종다리)이 폭염을 가중시켰다. 기상청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994년에는 8월 상순에 제11호 태풍 브렌던(7월29일∼8월3일)과 제14호 태풍 엘리(8월8∼16일)의 영향으로 두 차례 많은 비가 내려 폭염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린 반면 2018년에는 제10호 태풍 암필(7월18∼24일)과 제12호 태풍 종다리(7월25일∼8월3일)가 오히려 폭염을 강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2018년의 경우 두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았다. 중국에 상륙하며 간접적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에서 강화하게 하고, 고온다습한 수증기을 유입시켜 더욱 덥게 만들었다.
1994년 여름 두 개의 태풍(브렌던과 엘리)이 비를 내려 폭염을 누그러뜨렸다. 기상청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올해는 제6호 태풍 ‘인파’가 19일 오전 9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약 430㎞ 해상에서 북서진해 23일께 중국 상하이 남쪽 해변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태풍 인파가 현재 예상 진로대로 진행한다면 우리나라 폭염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진로가 북쪽으로 치우치면 수증기 공급 등 영향을 줄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번주 폭염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하기 때문에 예상되는 것으로, 반대로 이런 기압계 때문에 태풍 인파가 현재 예상진로로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19일 오전 3시 현재 제6호 태풍 ’인파’의 예상진로도. 기상청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민기홍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는 “현재 폭염은 남쪽 태풍이 북태평양고기압을 밀어올리면서 생기는 것으로, 이럴 때면 우리나라에 동풍이 들어온다.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강원 영서와 수도권의 기온이 남부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영서형 폭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진행되는 중에 태풍 종다리 영향으로 영서형 폭염이 나타나 8월1일 홍천에서 역대 최고기온인 41.0도가 기록되기도 했다. 21~22일도 ‘영서형 폭염’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이날 오전 현재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태평양지역 중층 대기 변화 예상을 보면, 이번달 말까지 제6호 태풍 ’인파’ 외 모의된 태풍이 없는 상태다.
2018년과 1994년 여름 폭염 절정기 때의 기압계. 기상청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북태평양고기압 중심 위치도 변수…이번주 우리나라로 확장
올해 폭염이 얼마나 강할지를 결정할 또다른 변수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의 중심 위치와 강도이다. 8월 중하순까지 폭염이 이어져 매우 더운 여름으로 기억되는 2016년에도 기압계가 2018년이나 1994년과 유사했다. 하지만 폭염 절정기 때 2018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중심이 우리나라 정중앙에 위치한 반면 2016년에는 약간 비켜나 동중국해와 중국 중앙 사이에 놓여 있었다. 또 2018년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세력이 1994년에 비해 더욱 강했다.
이명인 울산과기원 도시환경공학부 교수(폭염연구센터장)는 “현재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남쪽 상공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기압골이 들어와 다소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7월 중순 때부터 매우 강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북서태평양 대류 활동에 의한 매든줄리안진동(MJO)이 며칠 사이 대만과 필리핀쪽에서 활성화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크게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강해진 북태평양고기압이 계속 세력을 유지할지는 매우 가변적이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올해 더위가 2018년이나 1994년과 닮은 역대급 폭염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짧은 장마다. 올해 장마는 지난 3일 전국에서 동시에 뒤늦게 시작해 17일 만인 19일 사실상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해 북서쪽 경계면이 한반도에 머물러도 비가 안 오는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현재 기압계 상황으로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수축하이 이전에 정체전선에 의한 장맛비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폭염이 오는 이유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 복사열이 쌓이거나 따뜻한 공기가 전달돼 대류열이 쌓이기 때문이다. 장마기간이 짧고 강수량이 적으면 비가 땅에서 증발하면서 생기는 냉각 효과가 줄어들어 폭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2018년과 1994년도 올해처럼 짧은 장마였다. 6월26일 시작한 장마가 중부는 7월11일에 끝나 16일에 그쳤고, 남부는 이틀 먼저 끝나 14일이었다. 평년의 장마기간은 31∼32일이다. 1994년에도 장마기간이 전국적으로 평년보다 짧은 15∼22일에 그쳤다. 특히 2018년에는 장마가 끝난 뒤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고 지속적으로 누적되면서 제19호 태풍 솔릭이 8월 하순 우리나라에 상륙할 때까지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됐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