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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천적’ 자외선을 찾았다

등록 2021-10-12 10:10수정 2021-10-19 10:49

222나노 파장 자외선, 살균력 가장 좋고 인체 무해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에서 방출되는 자외선. 콜로라도대볼더 제공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에서 방출되는 자외선. 콜로라도대볼더 제공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UV)은 파장 길이에 따라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그 중 살균력이 있어 소독용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파장이 200~280nm(나노미터, 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인 자외선-씨(UV-C)다. 이 파장대의 자외선은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겨 있는 게놈 분자에 흡수되면서 게놈의 복제, 증식을 방해한다.

다행히 태양에서 날아오는 막대한 양의 자외선-씨는 지구의 오존층이 대부분 흡수해 버린다. 오존층 덕분에 지구상의 생물과 미생물은 유해한 자외선-씨 걱정 없이 안전하게 생활하면서 진화해 왔다.

코로나19 이후 병원 등에서 이 자외선을 이용한 소독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안전을 위해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해 자외선 소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외선이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를 실험하려면 생물안전도(BSL) 3등급 이상의 시설이 필요한데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 연구진이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자외선 효과를 다양한 파장대별로 실험한 끝에, 살균력이 가장 좋으면서도 인체에 안전한 자외선 파장을 확인해 과학저널 ‘응용 및 환경 미생물학’(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바이러스 파괴 효과 실험에 사용한 자외선 발생 기기는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KrCl*), 저압 수은등, 2종의 엘이디(LED)이다. 이 기기들은 각각 222nm, 254nm, 270nm, 282nm 파장의 자외선을 방출한다.

파장이 짧을수록 피부 투과력이 약하다.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에서 나오는 222nm 파장의 자외선은 피부 표피층을 뚫지 못한다. 반면 가시광선(400nm)에 가까울수록 피부 깊숙히 침투한다. 콜로라도대 볼더 제공
파장이 짧을수록 피부 투과력이 약하다.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에서 나오는 222nm 파장의 자외선은 피부 표피층을 뚫지 못한다. 반면 가시광선(400nm)에 가까울수록 피부 깊숙히 침투한다. 콜로라도대 볼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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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확산 차단 가능

이 가운데 저압수은등과 엘이디를 이용한 200~282nm 파장의 자외선 살균은 20세기 초부터 물과 공기, 물체 표면의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데 널리 사용된 방법이다. 자외선 살균은 다른 살균법에 비해 효과가 빠르고 화학적 잔류물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두 기기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사람의 피부나 눈 등에 노출됐을 때 안전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222nm의 자외선을 내는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제거 효과가 가장 좋으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엑시머램프는 식수나 하수 정화, 공기 정화, 산업폐기물 오염 제거 등에 이미 쓰이고 있다.

연구진은 “이 기기가 내는 자외선은 에너지가 높아서 다른 파장의 자외선에 비해 바이러스의 단백질과 핵산에 더 큰 타격을 주는 반면, 인간의 피부와 눈 표피층은 뚫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인체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 양의 자외선으로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222nm 자외선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히로시마대 연구진. 히로시마대 제공
222nm 자외선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히로시마대 연구진. 히로시마대 제공

앞서 2019년 일본 과학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처럼 200~225m 파장의 자외선을 방출하는 원자외선기기는 피부와 눈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콜로라도대 연구에서 바이러스 제거 효과가 가장 낮은 것은 엘이디에서 방출되는 282nm 파장의 자외선이었다. 지난해 9월엔 히로시마대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액을 222nm 자외선에 노출시키자 30초만에 99.7%가 사멸됐다는 실험 결과를 과학저널 ‘감염통제아메리칸저널’(American Journal of Infection Control)에 발표했다.

병실에 설치된 자외선-씨 살균장치. AEROMED/‘IEEE스펙트럼’에서 인용.
병실에 설치된 자외선-씨 살균장치. AEROMED/‘IEEE스펙트럼’에서 인용.

이번 연구를 이끈 칼 린든 교수(환경공학)는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한 거의 모든 병원체 중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단연코 자외선으로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린든 교수에 따르면, 이는 매우 적은 양의 자외선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공공장소 방역에서 매우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크립톤염화엑시머램프의 자외선을 이용하면 공항, 콘서트장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줄이는 데 쓸 수 있는, 저렴하고 안전하며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발견을 ‘자외선 살균의 게임 체인저’에 비유했다.

연구진은 또 자외선 소독은 실내 환기와 필적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자외선 조명은 전체 환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방역 현장에서 사용하려면 좀 더 다양한 조건에서의 실험과 공중 환경에 적합한 기기 개발이 추가로 필요하겠지만, 이번 연구는 효율이 높은 코로나19 방역 수단을 새롭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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