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993년 6월4일 충남 태안군 안흥시험장에서 쏘아 올린 과학로켓 1호(추력 8.8t, 탑재중량 150㎏)는 고도 39㎞까지 솟아올라 101㎞를 비행했다. 한국이 쏘아 올린 우주발사체가 처음으로 상공을 가른 그날로부터 29년이 지난 21일, 누리호가 고도 700㎞까지 치솟아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고 2800㎞(2단 기준)가 넘는 비행에 성공했다. 29년 전에 견줘 추력은 34배(300t), 탑재중량은 10배(1.5t)로 늘었다.
누리호까지 우주개발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토종 기술로 과학로켓 2호까지 만들었지만, 우리는 한-미 미사일지침 탓에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 올릴 수준으로 비행고도를 높일 수 없는 한계를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 이 지침은 지난해 폐지됐다. 국내 여건도 열악했다. 2003년 30t급 액체엔진을 만든 국내 연구진은 국내 시험장이 없어 러시아에 가져가 연소시험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폭발사고로 부품들이 불타버리기도 했고, 러시아가 더는 원정 시험을 허용하지 않아 발사체 개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누리호 1단에 들어간 75t급 액체엔진 연소시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누리호 발사에 앞선 나로호의 여정도 다르지 않았다. 2009년 6월 나로우주센터가 완공되고 두 달 뒤, 러시아 안가라로켓을 1단으로 한 2단형 한국형 발사체 나로호를 쏘아 올렸지만, 페어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발사에 실패했다. 1년 뒤인 2010년 6월 나로호 2차 발사 때는 1단 로켓이 폭발하면서 우주 도약의 꿈은 다시 좌절됐다.
2013년 1월30일 나로호 3차 발사는 성공적이었다. ‘칠전팔기’로 우주발사국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나로호는 온전한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가 아니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종합연소시험동에서 75t급 연소시험이 진행되자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누리호 개발에 나선 것은 2010년부터다. 2023년까지 모두 1조9572억원이 투자되는 대형 사업이다. 항우연은 30t급 엔진 개발 경험을 토대로 75t급 엔진 개발에 나섰지만, 엔진을 개발해도 시험할 설비가 없었다.
종합연소시험동 등 10여개의 추진기관 시험설비를 갖추는 데만 전체 사업 예산의 4분의 1(5천억원)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75t 엔진은 34기, 누리호 3단에 쓰인 7t 엔진은 12기를 만들어 시험했다. 75t 엔진은 184차례에 걸쳐 1만8290초, 7t 엔진은 93차례에 걸쳐 1만6925초 동안 연소시험을 거쳤다. 고 본부장은 “중간에 엔진이 폭발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항우연 연구원들은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서 발사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발사체를 제작할 때 몇개를 개발해야 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정해진 원칙도, 알려주는 사람도, 교과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리호 1차 발사 실패를 딛고 8개월 만에 이뤄진 두번째 도전에서 이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고흥(나로우주센터)/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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