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라는 절지류 종은 한국에는 낯선 동물이다. 아시아에 총 3종의 투구게가 현존하는데 그 가운데 세가시투구게(Tachypleus tridentatus)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997년 제주도 우도의 해변가로 알려져 있다[1]. 이 세가시투구게는 1980년대부터 주사가 가능한 의약용품, 백신 등의 시험을 위해 상업적으로 채취가 되어 왔다[2].
수억 년 동안 그 모습이 바뀌지 않고 생존하여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투구게는 이제 그 개체 수가 줄어들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멸종 위기종(Endangered)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투구게의 파란 혈액에 포함된 라이세이트(LAL)라는 물질은 소량의 독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람이 쓰는 의약용품에 대한 독성 여부(오염 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사람에게 주사가 되는 모든 물질은 이 시험을 거치기 때문에 주사에 쓰이는 물(시험용수) 역시 이 투구게 혈액을 이용한 시험을 요구한다.
동시에 백신, 의약품, 정밀의료 등에 대한 수요 증가로 투구게 혈액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헬스 산업이 커지면서 투구게 혈액 수요도 2024년까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3].
투구게의 파란 혈액에 든 물질은 의약품 독성을 가려내는 데 쓰인다. 사진 출처: Jan van de kam
투구게의 혈액은 살아 있는 생물에서 채취되는 것이어서 모든 투구게에서 완벽히 동일한 혈액을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구게마다 혈액 성분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이성은 실험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과학적 오류의 단점을 극복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투구게의 보존을 위해 대체시험방법이 나왔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재조합 C 인자’(recombinant Factor C)를 만들어 활용하는 시험이다. 시험 정확도에 있어서도 우수한 결과를 보인다는 과학적 보고가 수차례 발표되었다. 이미 상업적으로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인정하기만 하면 대체 방법으로 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다행히 과학적 정확성과 투구게 보존을 위해 재조합 C인자를 이용한 시험 방법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재조합 C 인자’를 사용한 결과를 인정하고 있고, 유럽은 2021년 1월 약전에서 유럽에서 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이 대체시험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2019년 약전에 투구게 대체시험을 추가하는 개정 작업을 시작했고, 중국은 2020년부터 이 시험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투구게 대체 시험법으로 국내에서 시판중인 재조합 C 인자를 사용한 엔도자임 시험 키트. 사진 출처 : BioMerieux
국내에서도 대한민국약전 개정을 통해 재조합 C 인자 시험을 투구게 혈액 기반 시험의 대체 방법으로 인정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법을 통한 개정도 중요하지만 실용화를 위해선 실제로 기업들이 이를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동물실험 대신 대체시험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동물실험의 특성상 소비자에게 노출이 안 되어 동물실험을 계속해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또 실험에 쓰이는 동물의 종과 방법의 다양성 등 여러 복잡성은 동물실험에 대한 기업의 태도 변화를 이끌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동물실험을 대체하려는 노력은 특히 기업의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 지배 구조를 뜻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정책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국내 제약회사, 시험기관들도 ESG 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이 투구게의 멸종을 부르는 실험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앞장서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이런 사실을 대내외에 적극 알리면 국내에서도 동물실험 대체에 관한 인식이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 대체 시험에 대한 회사의 방침을 알리는 유니레버 웹사이트의 구호.
실제로 해외에선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알린 사례가 있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GSK는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동물실험을 대체하고, 새로운 비동물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 역시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에게 안전한 제품 개발을 위해 ‘동물 대신 과학을 사용한다’(Use science, Not animals)는 구호를 앞세워, 동물실험이 아닌 사람에 대한 결과 예측률이 높은 방법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활동을 적극 알리고 있다. 사노피글로벌헬스는 실험동물의 사용 수를 ESG 측정 수치에 포함시켜, 투구게 혈액을 이용한 시험방법 대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 분야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사례다.
글로벌 시대에 서로 다른 국가들 간에 제품 수출입을 위한 법적인 제약을 최소화하고 규제 사항을 조화롭게 하는 규제 혁신 사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동물실험에서 대체방안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도 의약제품의 높은 안전성과 품질 보장을 위해 국내 정부와 산업계에서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2020년 12일 발의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이상독성부정시험 사례와 같이 불필요한 동물실험법 중지 개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투구게 혈액을 사용한 실험의 대안 방법이 대한민국약전을 통해 개정이 될 것에 대비해 산업계에서도 내부 시험 규정 검토를 통해 이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흐름이 이어지길 바란다.
서보라미/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한국HSI) 정책국장 bseo@hsi.org
주)
[1] http://www.kpubs.org/article/articleMain.kpubs?articleANo=DMBRBT_2015_v31n1_42
[2] https://www.iucn.org/news/species-survival-commission/202104/a-program-implementing-effective-regional-conservation-actions-asian-horseshoe-crabs
[3] https://ncseagrant.ncsu.edu/coastwatch/wp-content/uploads/sites/2/2021/06/Blood-Draw-at-the-Horseshoe-Corral_by-Julie-Leibach_NC-Sea-Grant_Coastwatch-Autumn-2020_compressed-3.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