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탄생한 때는 1983년이다. 미국 1호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가 그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탑승했을 때의 모습이다. 나사 제공
2021년 7월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이 실시한 첫 준궤도 우주여행은 행사 자체도 뉴스였지만 60년 만에 우주여행의 꿈을 이룬 한 82살 여성 탑승객의 이야기로도 화제를 모았다.
월리 펑크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1960년대 초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비공식적으로 진행한 여성 우주비행사 양성 프로그램 ‘머큐리 13’에 선발돼 훈련을 받은 13명의 여성 우주비행사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펑크의 꿈은 우주비행사 자격을 ‘공학 학위를 가진 고속 전투기 조종사’로 제한한 나사의 벽에 막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여성들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었다.
미국이 그러는 사이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라는 칭호는 소련이 가져갔다. 미국이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83년이었다.
1960년대 성차별적 규정 때문에 우주비행사 꿈을 접었던 월리 펑크가 60년만인 2021년 블루오리진의 준궤도 우주비행을 하고 난 뒤 환호하고 있다. 블루오리진 제공
우주탐사의 성비 불균형…심우주 경험자는 ‘0’
우주 탐사는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분야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인간이 처음 우주 비행을 한 이후 65년 동안 우주를 다녀온 620여명 가운데 여성은 70여명뿐이다. 10%를 약간 웃돈다. 특히 지구 저궤도가 아닌 심우주의 달 표면 또는 달 궤도까지 다녀온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 우주비행사 24명에는 여성이 전혀 없다.
이제는 상황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0년 나사가 새로운 유인 달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를 준비하기 위해 선발한 우주비행사 18명 가운데 절반인 9명이 여성이었다.
이런 가운데 여성 우주비행사 육성을 고무하는 연구 논문이 나왔다. 독일의 유럽우주국(ESA) 우주의학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여성 우주비행사가 남성보다 물과 에너지, 산소를 덜 쓰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신진대사에 따른 열(대사열) 발생도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따라서 비용도 더 많이 들고 환경도 더 가혹한 달, 화성 등의 심우주 탐사에는 여성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달 유인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할 달궤도 정거장 게이트웨이의 주거모듈 ‘헤일로’(상상도). 나사 제공
탐사비용 얼마나 절약할 수 있나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여성 우주비행사는 남성보다 26% 적은 칼로리, 29% 적은 산소, 18% 적은 물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4명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1080일간 우주정거장에 머물 경우, 이들의 총 음식 섭취량은 남성보다 1695kg 적다. 스페이스엑스의 팰컨헤비 로켓의 탑재화물의 10%에 해당하는 양이다. 여성 우주비행사를 보내면 그만큼 발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나사에 따르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화물을 운송하는 비용은 1kg당 9만3400달러에 이른다. 연구진은 여성 4명만으로 구성된 팀이 1080일간의 우주탐사를 수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1억5800만달러(약 2100억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며 우주선 공간도 2.3㎥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나사가 새로운 달 유인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추진을 위해 구축할 달궤도 정거장 ‘게이트웨이’의 주거시설인 헤일로 모듈(60㎥)의 4%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여성 우주비행사는 체구에 따른 총 에너지 소비량 변화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성이 같은 체구의 남자에 비해 산소와 물은 덜 쓰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대사열 발생은 적기 때문이다. 키 150~190c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변화량이 남성에 비해 5~29% 적었다.
2022년 4~10월 국제우주정거장 임무를 수행한 크루4 우주선에 탑승한 4명의 우주비행사팀은 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수로 구성됐다. 나사 제공
우주선 생활에도 여성이 유리
우주의 미세중력에 장기간 노출되면 우주비행사의 몸에도 나쁜 영향이 나타난다. 근육 위축, 뼈 손실, 유산소 및 감각운동 능력 약화로 건강은 물론 자칫 임무 수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서도 매일 운동을 한다. 이를 ‘대항 운동’(countermeasure exercise)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우주비행사가 30분 유산소 운동을 하루 두 번씩 1주일에 6일간 대항운동을 한다고 치자. 평소보다 산소 소비량, 이산화탄소 배출량, 대사열 발생량이 늘고 수분 보충을 위한 물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체구가 클수록 그 양은 더 많아지고 남녀 간의 격차도 더 커질 것이다. 연구진은 “특히 유산소 운동 때 흘리는 땀의 양도 여성이 남성보다 29% 적어 운동 후 보충해 줄 물도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남녀간의 이런 차이는 여성 우주비행사가 남성 우주비행사보다 휴식과 운동 중 산소요구량이 낮은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키가 같더라도 남성보다 체중이 가볍고 최대산소섭취량(VO2max)도 낮다는 것이다. 최대산소섭취량이란 운동 중에 심장과 폐, 근육이 산소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말한다.
아르테미스2호 승무원으로 선발된 네명의 우주비행사들. 맨왼쪽이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달에 가는 크리스티나 코크다. 나사 제공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선의 크기 문제에서도 여성이 유리하다. 우주정거장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는 체구가 작은 여성이 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일할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보다 공간이 좁은 달 궤도 정거장에선 여성의 이점이 더 부각될 것이다.
연구진은 “현재 추진 중인 심우주 탐사의 경우 우주비행사의 활동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의 유인 우주 탐사 임무는 무조건 여성이 유리하며, 특히 키가 작을수록 이점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나사는 2024년 말 예정된 아르테미스 2호의 유인 달 궤도 여행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우주비행사를 보내기로 했다. 이어 2025년 아르테미스 3호의 달 유인 착륙에도 여성 우주비행사를 포함한 탐사팀을 꾸릴 계획이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98-023-31713-6
Effects of body size and countermeasure exercise on estimates of life support resources during all-female crewed exploration missions.
Scientific reports(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