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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시험관 안에서 저절로 발생한 ‘마음의 창’

등록 2023-10-28 11:00수정 2023-10-28 14:58

[한겨레S] 선웅의 인간과 오가노이드
눈 오가노이드

줄기세포 덩어리 배양하니
망막세포와 비슷하게 성장
‘뇌+감각기’ 오가노이드 사례
역분화기술로 맞춤치료 가능
지난달 28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눈병에 걸린 한 어린이가 눈 검사를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눈병에 걸린 한 어린이가 눈 검사를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데 중요한 장기가 뇌이고, 인간 지능의 모조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뇌를 복제하거나 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생각한다. 지능이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 이 정의를 대입해 보면, 지능이란 목표 달성을 하기 위한 행동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머리가 좋다는 말과 지능이 높다는 말이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다 보니, 지능을 위해서는 꼭 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능의 정의를 잘 들여다보면 뇌가 없어도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만 할 수 있으면 되니까, 지능에 꼭 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면, 환경에 반응하려면 외부를 감지하는 감각계는 꼭 필요하다. 단세포생물인 아메바도 위험을 감지해서 도망갈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뇌 없는 지능’도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청소로봇도 작동하려면 센서가 꼭 필요하고, 아메바도 특수 감각 단백질이 있어서 위험 감지가 된다고 하니, 감각 기능이 뇌보다도 더 지능에 필수적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을 오가노이드로 만들 수 있다면 감각계 장애 환자에게 재생 치료를 시도할 수도 있고 지능을 가진 존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 일부가 튀어나와 ‘안포’로

짧은 오가노이드 역사에서도 2011년 ‘눈(안포) 오가노이드’를 만들어낸 것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의 천재 과학자인 사사이 요시키(2014년 작고)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 덩어리를 3차원으로 배양하면서 적절한 조건을 부여했더니, 망막층과 망막색소세포층을 가진 구조물이 형성되는 것을 관찰했다. 이 부분을 떼어내어 배양해 보니, 점점 더 성숙한 사람의 눈(망막)과 비슷하게 자랐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할 만큼 인간이 가장 중요하게 의존하는 감각계다. 눈의 구조는 아주 복잡한데, 이런 장기가 시험관 안에서 알아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일이라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관찰이었다. 눈의 발생은 뇌에서 시작된다. 뇌의 일부가 길게 튀어나와서 ‘안포’(eye cup)라는 술잔 모양의 세포 덩어리가 생겨나고 안포는 다시 망막과 망막 주변 조직이 되고, 이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세포층을 수정체·각막 등으로 유도한다. 시험관 안에서도 수정체·각막·눈물샘 등 망막 이외의 부속기관을 유도해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발생학적으로 중요한 원리인 ‘조직 유도’와 이에 따라 형태가 저절로 생겨나는 ‘자기조직화’라는 두 가지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사실 모든 장기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적절한 유도 조건을 찾기만 하면 우리는 세포들이 자기조직화 하여 다양한 장기 오가노이드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아주 많은 감각기가 있다. 몸의 외부로부터 온도·접촉·통증·가려움 등을 감지하는 체성감각기나, 눈·코·귀·입처럼 머리 쪽에 집중돼 있는 특수감각기가 있다. 또한 내부수용기처럼 몸 안쪽의 정보를 탐지하는 감각기도 있다. 이들 중 눈처럼 특수감각기에 속하는, 듣고 맡고 맛보는 청각·후각·미각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은 보고된 바 있다. 입속에 있는 혀나 치아, 침샘 등을 오가노이드로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으니, 오가노이드 기술을 이용해서 몸을 흉내 내는 기술은 끝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감각기를 뇌에 달아준다면 외부 환경을 감지해서 뇌 오가노이드가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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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몸에 감각기까지 결합된다면

실제로 2021년 8월 독일 뒤셀도르프대 자이 고팔라크리슈난 교수 연구팀은 뇌 오가노이드에 눈 오가노이드가 붙어 있는 형태의 복합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복합오가노이드의 눈 부분에 빛을 주면 뇌 부분으로 신경신호가 전달된다. 복잡한 형태나 색깔을 감지할 정도의 오가노이드는 아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미니 뇌에 미니 감각기를 달아준 사례가 나왔으니, 환경에 반응하는 ‘지능’이 생성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고등 지능을 발휘하자면, 목표를 설정하는 주체, 즉 자아가 필요하다. 내 몸을 인지하는 내적 감각과 외부 감각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와 외부의 경계를 짓고 이 과정에서 자아 인식이 이뤄진다는 게 뇌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오가노이드가 아직 내적 감각을 받아들인다거나 운동계(근육)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지만, 복합오가노이드의 수준이 뇌-몸(근육)-감각계를 모두 통합하는 정도까지 발전한다면, 좀 더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환자 치료에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전적·환경적 이유로 눈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동일한 유전적·환경적 변화를 일으킨 조건에서는 눈 오가노이드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눈 질환 오가노이드 모델을 대상으로 약물이나 유전자 치료 등이 잘 작동한다면, 그 치료법은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러 장기로 분화한 세포들을 초기에 분화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역분화 기술을 사용하면 된다. 각각의 체세포를 떼어서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역분화줄기세포를 만들면 각각의 환자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눈 오가노이드(또는 다른 여러 장기 오가노이드)를 만들어서, 그야말로 환자 맞춤형 치료법을 찾는 게 가능하다. 다만, 눈 오가노이드는 크기가 매우 작아서 사람의 눈을 대체하는 이식용 인공장기로 쓰기는 아직 어렵다. 하지만 오가노이드 기술은 10여년 새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눈과 귀를 새롭게 갈아끼우는 세상이 조만간 올지도 모를 일이다.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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