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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슈퍼 대장균 빚어낸 ‘생명공학 신세계’

등록 2010-08-03 19:47수정 2010-08-03 19:59

지난 6월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세계대사공학대회’에 참석한 대사공학과 합성생물학의 주요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이오 연료와 고분자 화학물질을 만드는 ‘화학공장’으로 미생물을 활용하려는 대사공학은 최근 인공으로 합성 유전자와 게놈을 만드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상엽 교수 연구팀 제공
지난 6월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세계대사공학대회’에 참석한 대사공학과 합성생물학의 주요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이오 연료와 고분자 화학물질을 만드는 ‘화학공장’으로 미생물을 활용하려는 대사공학은 최근 인공으로 합성 유전자와 게놈을 만드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상엽 교수 연구팀 제공
[미래를 여는 첨단 과학] ③ 미생물대사공학
이상엽 교수에게 듣는 미생물대사공학

생물의 과학과 공학이 만나 펼치는 신세계. 포도당 같은 먹이를 먹고 뱉어내는 미생물의 대사물질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은 미생물의 어떤 대사회로는 차단하고, 또 증폭하고, 또는 서로 연결함으로써 효율 높은 대사작용을 하는 새로운 미생물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런 미생물의 미래는 기대와 두려움을 자아낸다. 기자가 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전했다면, 과학자는 그런 위험 요소의 관리 대책을 요구하며 기술의 선용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이 달랐다. 세계대사공학대회(6월)가 열린 서귀포와 대전 카이스트에서 이어진 세 차례 인터뷰에서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대사공학)는 활기차고 막힘없는 말투로 미생물 대사공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얘기를 쏟아냈다.


이상엽 교수
이상엽 교수
■ 이상엽 교수는 누구?

대장균 같은 미생물의 대사회로와 유전자를 조절해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대사공학과 시스템생명공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여러 종의 가상세포와 가상실험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활용해 바이오부탄올, 숙신산, 다이아민(디아민), 플라스틱 등을 고효율로 생산하는 대사공학 미생물들을 개발해왔다. 요즘엔 의약물 개발을 위한 인간 가상세포도 연구중이다. △카이스트 특훈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화학공학) △미국 공학한림원 외국회원 △국제학술지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 편집장 △세계대사공학대회 주관(2010)

미생물 공학에 자주 쓰이는 대표 주자는 아무래도 대장균일 법하다. 과학자들이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대장균 단세포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대사와 유전자 조절,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조작하고 조절해 새로운 슈퍼 대장균들을 만들어왔다. 지금은 10여종의 균주를 다룬다.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숙신산 등을 만들어내는 미생물들이 그의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미생물 대사회로 조작해
에너지원·화합물 등 생산
‘인공효소’로 효율성 높여

- 미생물들이 화학공정을 대신해 여러 화학물질을 만든다는 게 흥미롭군요. 그걸 연구하는 대사공학은 일반 시민들한텐 생소한데요.

“어떤 목적에 맞춰 어떤 생명체의 대사회로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목적을 달성하는 게 대사공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미생물에 적용돼 미생물 대사공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조작된 미생물 균주는 높은 효율로 숙신산, 부탄올, 에탄올을 만들기도 하고 화학적으론 합성하기 어려운 의약물질을 만들기도 합니다.”

- 인위적으로 대사 경로를 바꾸고, 유전자를 변형하는 식으로 어떤 대사 과정은 증폭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과정은 없애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요.

“네, 그렇지요. 또 자연에는 없는 대사물질을 만들어 대사회로 안에 끼워넣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선 자연엔 없는 새로운 효소를 만들어 이용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 그의 연구팀은 자연에 없는 효소 유전자들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설계·제작한 뒤 이 인공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까다롭고 값비싼 화학공정이 대장균 몸 안에서 저절로 이뤄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 성과는 미국 <시엔엔>의 온라인판에서 한때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 흔히 이런 미생물은 ‘화학공장’으로 불리는데 실제로 화학공장을 대체한 사례는 있나요?

“점점 많아지고 있죠. 이미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이 1990년대 중반부터 설계·조작된 미생물을 만들기 시작해 몇 해 전부터는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국내에서도 지에스칼텍스와 우리 연구실이 이런 공정 연구를 한창 진행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진화하는 가상세포

그의 연구실에서 많은 미생물의 변신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가상세포’ 덕분이었다.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인 가상세포는 어떤 생물종의 세포 안에서 이뤄지는 대사와 유전자 조절, 그리고 신호전달 과정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따라 구현해낸다. 가상세포는 어떤 생물종의 대사 반응이나 유전자 조절 과정을 인위적으로 바꿀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컴퓨터 화면에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생명현상을 연구하거나 특정 물질을 고효율로 생산해내는 미생물을 제작할 때 쓰임새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컴퓨터 속 ‘가상세포’ 이용
실험없이도 결과예측 가능
생물학+공학 ‘이질적 융합’

- 가상세포는 주로 어디에 쓰입니까?

“가상세포는 우리가 생물 실험을 직접 하지 않고서도 컴퓨터에서 가상으로 할 수 있고 거기에서 얻은 획기적이거나 눈에 띄는 실험 결과만을 골라 실제로 실험을 할 수 있게 하지요. 예를 들어 대장균의 어떤 대사산물을 얻기 위해서 대장균의 유전자 세 개를 동시에 없애려 한다면, 세 개 유전자 조합을 없애는 실험을 1억6600만번 되풀이해야 할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가상세포 프로그램을 돌리면 고성능 피시에서 간단한 시뮬레이션은 1주, 복잡한 것도 6~9주 정도면 끝낼 수 있습니다.”

- 가상세포로는 단세포 생물만 연구하나요?

“아직 발표 단계는 아니지만 인간 가상세포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 단세포도 어려운 일인데, 식물이나 다른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 인간 가상세포를 구현하겠다는 건 욕심 아닐까요?

“저는 화학물질 생산을 위해선 미생물만을 공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식물이나 다른 동물은 생각하지 않고 있고요. 다만 인간 가상세포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기 위해 3년 전에 시작한 것이지요. 최근에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로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새로운 치료 약물을 찾는 연구에 활용될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합성과 대사공학을 이용한 미생물 개발
유전자 합성과 대사공학을 이용한 미생물 개발
공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공학

얘기를 들을수록 그가 전하는 ‘공학’의 정신과 기법이 새롭게 다가왔다. 미생물 공학의 연구자들은 ‘최적의 공정’과 ‘최고의 효율’을 추구한다. 또 반도체의 전자회로처럼 생체 대사의 ‘회로’를 그려넣고 설계하고, 그 ‘유전자 부품’을 조작하며 ‘유전자 모듈’을 제작해 끼워넣는다. 이 교수는 “생명현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래에도 다 알기 힘들 것”이라며 “그렇지만 모른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 파악되지 않은 복잡한 중간과정을 ‘블랙박스’로 여기면, 무엇이 투입돼 무엇이 산출되는지에 관해 정밀한 지식을 갖출 때 공학은 가능하다.

‘유전자 창조’ 시대 곧 도래
장밋빛희망·악용위험 공존
생명윤리 책임감 가져야

- 말씀을 들으면서 상당한 수준의 생물 과학이면서 또한 ‘공학적인 너무나 공학적인 생물학’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공학이지요. 오남용을 피하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서 무엇을 집어넣어 무엇을 얻는 전체 공정을 최적화하는 게 이 연구의 기본이니까요. 하지만 생물학의 기초가 없어선 안 돼요. 그러니 생물 과학과 공학의 융합이지요. 컴퓨터도 알아야 하고 생물학 실험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더러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와 공동연구도 해야 하고, 생명현상의 복잡계를 다루다 보니 상당히 여러 학문이 융합될 수밖에 없는 분야지요.”

- 생명의 복잡함을 어떻게 다 다루는지 궁금했는데, 그런 융합 때문에 가능한 것이군요.

“혼자선 다 못하죠. 우리 실험실 안에서도 아주 이질적인 웨트(wet) 팀과 드라이(dry) 팀이 모여 있어서….”

- 웨트 팀, 드라이 팀이라면?

“흔히 젖은 대상을 다루는 생물학 실험 팀을 ‘웨트 팀’이라 부르고, 컴퓨터의 가상세포를 다루는 팀을 ‘드라이 팀’이라고 부릅니다. 실험실 사회에서 만들어진 말이죠. 그런데 두 집단은 아주 이질적입니다. 그래서 늘 두 집단이 얼마나 활발하게 상호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이런 연구의 성패가 갈린다고 보고 있지요. 융합의 문화가 아주 중요합니다.”

합성생물의 미래, 기대와 두려움

더러 생명공학은 미래를 먹고산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제껏 없었던 방법으로 물질을 풍요롭게 생산해내는 미래는 장밋빛이다. 또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것은 환경에 해를 끼치고 먹을거리의 위험을 높이는 어두움이다. 흔히 유전자 변형 농작물은 한두 개의 유전자만을 건드리지만, 지금은 미생물 유전자를 수십 개나 한꺼번에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다.

- 유전자 변형 작물의 수준을 뛰어넘는 생명공학의 시대가 빠르게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미생물 대사공학에서 다루는 것들도 모두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죠.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창조 생명체(LCO), 또는 유전자 인공 생명체(LAO) 같은 용어 말입니다. 자연에 있는 유전자를 변형한 게 아니라 직접 설계하고 합성한 유전자를 쓰기에 창조(Created), 또는 인공(Artificial) 같은 말이 더 정확한 용어가 될지 몰라요.”

- 유전자 합성기술이 너무 간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있는 듯합니다.

“국가안보의 문제로도 논의되지요. 얼마 전에 미국 연구팀이 인공으로 합성게놈을 만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이런 기술이 생물테러에도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요하고도 우려할 만한 기술로 여기고 전문가들한테 기술 평가를 정식으로 의뢰했지요.”

- ‘굴뚝 화학공장’을 대체하는 ‘바이오 기반 화학공장’의 신기술로 주목받지만, 이처럼 우려의 대상이 되는 것도 현실이군요.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를 합성하는 단계, 합성 유전자를 유통하는 단계에 대해선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연구자와 유전자 합성회사들은 모두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지녀야 하겠고요. 하지만 위험만을 부각하다 보면 좋은 점이 버려질 수도 있지요. 적절한 균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전·서귀포/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카이스트의 대사·생물분자공학 연구실에선 여러 단세포 미생물들을 배양하고 그 대사회로를 조작·조절하는 실험들이 주로 이뤄진다.  대전/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카이스트의 대사·생물분자공학 연구실에선 여러 단세포 미생물들을 배양하고 그 대사회로를 조작·조절하는 실험들이 주로 이뤄진다. 대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미생물대사공학 연구실 가보니

가상세포로 ‘진짜’같은 생체실험
40명 연구원, 분석기 수치에 희비

“이게 가상세포라는 건가요?”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의 ‘대사·생물분자공학 연구실’에서 본 대장균 가상세포(‘메타 플럭스넷’)는 겉모습으로만 보면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도 소박한 디자인을 갖춘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대사공학계에선 이게 대단한 ‘물건’으로 통한다. 가상세포를 움직이는 생체 대사 반응 정보와 유전자 네트워크의 알고리즘이 실제 대장균의 대사 과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흉내 내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연구원 김현욱(28)씨는 “먹이인 포도당이 대장균 세포 안에서 탄소나 5탄당, 6탄당 같은 여러 중간 대사산물로 쪼개졌다 결합하면서 진행되는 대사의 1천가지 화학반응식들이 정교하게 입력돼 있다”며 “그런 대사산물들과 더불어 촉매 구실을 하는 단백질(유전자)들이 이루는 복잡한 네트워크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이 보여준 가상세포의 알고리즘엔 대사산물이 어떤 단백질과 반응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나타내는 화학반응식들로 빼곡하다. 프로그램에 영양분과 온도, 산도, 산소량 따위의 초기 조건값을 주고 어떤 유전자를 바꾸자, 몇 초 만에 개량된 대장균의 대사산물이 확인됐다.

가상세포는 컴퓨터 안에서 진화한다. 가상세포 팀이 새롭게 밝혀진 대사 반응식 정보들을 프로그램에 입력해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한다. 김 연구원은 “우리 팀은 가상세포를 수시로 향상하는 일도 하지만, 컴퓨터로 수많은 ‘가상실험’(in Silico)을 실행해 가장 좋은 결과를 내놓을 실험 방법을 예측하고 기획·설계하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생화학 반응식 설계가 마무리되면, 이젠 실제의 미생물을 조작하는 일이 주된 과제가 된다. 어떤 유전자를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대사반응이 일어나 어떤 대사물질이 얼마나 생산될지 예측한 대로 실제의 미생물에서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박사과정 연구원 이종민(25)씨는 “원하는 생화학 반응 회로를 만들려면 특정 유전자를 지우거나 삽입하거나, 개량해 집어넣는 실험을 주로 하는데 유전자를 지우는 실험이 가장 많고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자들한테 ‘뜻깊은 공간’이 실험실 한쪽에 있었다. 김 연구원은 개량한 미생물에서 설계한 대로 대사산물이 나오는지 확인해주는 분석 기기 쪽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서 희비가 엇갈리죠. 뜻대로 실험이 이뤄졌는지 처음 확인하는 곳이니까요.” 대사공학 연구실에선 모두 40여명의 연구자들이 생활한다. 대전/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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