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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후두는 악기다

등록 2013-12-27 20:05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목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것이 후두이다. 방송에서는 아직도 이것을 목젖이라고 틀리게 부른다. 목젖은 입천장 뒤끝에 달려 있는 것이다. ‘희망 사항’의 노랫말인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가 맞는 말이다. 실제로는 웃을 때 목젖이 보이지 않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구토하는 척해야 보인다.

이 글의 주인공인 후두의 속을 보면 오른쪽 성대와 왼쪽 성대가 각각 앞뒤에 붙어 있고, 양쪽 성대 사이가 좁다. 삼킨 음식은 식도로 내려가야 하는데 후두로 내려갈 때가 있고, 이때를 사레들렸다고 말한다. 이때 음식은 대개 성대에 걸리고, 기침하면 바깥으로 나간다. 음식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허파로 내려가면 허파를 해친다. 따라서 성대와 기침은 허파를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쪽 성대 사이가 좁은 것이 해로울 수도 있다. 양쪽 성대 사이에 사탕 따위가 꽉 껴서 숨길을 막는 경우이다. 실제로 숨을 못 쉬는 환자가 있으면 의사는 후두가 막힌 경우를 의심한다. 의사가 막힌 후두를 뚫지 못하면 후두 아래에 있는 피부와 기관을 잘라 숨길을 만든다. 응급치료 중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다.

양쪽 성대는 가깝지만 붙어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숨을 쉬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후두의 근육이 수축해서 양쪽 성대가 붙으면 내쉰 숨이 성대를 떨게 만들고, 따라서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를 내는 곳은 입이잖아요?” 나는 오해를 바로잡는다. “아닙니다. 목소리를 내는 곳은 후두이고, 그 목소리로 말을 만드는 곳이 입입니다.” “휘파람은 입에서 내는 소리잖아요?” 그것은 맞다고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휘파람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성대가 앞뒤에 붙어 있는 것을 자기 몸으로 증명할 수 있다. “아~”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후두를 누른다. 그러면 앞뒤에 붙어 있는 성대가 느슨해지고 목소리 음이 낮아진다. 기타 줄이 느슨해지면 낮은 음을 내는 것과 같다. 후두는 뼈가 아닌 연골로 이루어졌으므로 자주 누르면 다친다. 증명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후두를 자주 누르면 바보다.

누구나 알다시피 남성은 여성보다 후두가 더 튀어나왔다. 아담이 먹은 사과가 목에 걸린 것이라며 ‘아담의 사과’라고 일컫는다. 남성은 후두가 더 튀어나온 만큼 앞뒤에 붙어 있는 성대가 길고, 긴 성대는 움직이기 힘들다. 그 탓에 남성은 여성보다 말을 적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아담의 사과보다 침묵의 사과라고 일컫는 것이 알맞다. 또한 남성은 성대가 길기 때문에 여성보다 목소리 음이 낮다. 피아노와 하프에서 줄이 길면 낮은 음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후두를 해부하면 목소리를 내는 근육과 안 내는 근육, 목소리 음을 낮추는 근육과 높이는 근육을 볼 수 있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후두는 악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좋은 악기, 나쁜 악기가 있듯이 좋은 후두, 나쁜 후두가 있다. 이것은 해부학 실습실이 아닌 노래방에서 생각하게 된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이비인후과에서 ‘이’가 귀이고 ‘비’가 코이고 ‘인’이 인두이고 ‘후’가 후두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구토하는 척해야 목젖이 보인다고 했는데, 목젖 뒤의 위아래 통로가 인두이다. 인두의 공기는 후두로 내려가고, 인두의 음식은 식도로 내려간다. 인두와 후두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차지한 땅이다. 인두와 후두가 다치면 이비인후과 의사한테 간다는 뜻이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후두를 잘 아니까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죠?”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소화기내과 의사는 밥을 잘 먹고, 비뇨기과 의사는 정력이 좋고, 영상의학과 의사는 야한 영상을 즐겨 볼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의사가 재미 삼아 그런 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업과 특기가 딱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해부학 선생도 마찬가지니까, 고깃집에서 고기 썰라고 시키지 마십시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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