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에 불이 켜지는 순간. 바로 5억4300만년 전에서 5억3800만년 전까지의 500만년 동안 갑작스레 수많은 동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종류는 순식간에 38개의 문으로 늘어났다. 그 원동력은 ‘눈’의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① 빛의 시작
① 빛의 시작
아홉살 때의 일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는 아버지의 지방 발령으로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삿짐을 내린 곳은 작은 마을 가장 안쪽에 새로 지어진 단층 양옥집이었다. 집 뒤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바로 바닷가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곳. 집은 깨끗했고, 아이에겐 동생과 나눠 쓰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방이 생겼으며, 주변 풍광은 신기했다. 아이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고, 만족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이었다.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아이는 완벽한 어둠을 접해 본 적이 없었다. 인공조명이 위력을 발하는 대도시의 밤은 완벽하게 어둡지 않다. 대도시의 어둠은 처음 불을 껐을 때만 잠시 위력을 나타낼 뿐, 곧 암적응이 된 눈은 사물의 형태 정도는 너끈히 구별할 수 있었으니까. 이곳의 밤은 달랐다. 눈을 떴으되 감았을 때와 다르지 않은 깜깜한 어둠. 평소 악몽을 꿨을 때처럼 베개를 들고 엄마 아빠 방으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의 완벽한 암흑. 아이가 현실로 돌아온 건, 아이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부모님이 전등 스위치를 누른 순간이었다. 세상은 다시 밝아졌고, 그 환하고 밝은 빛에 밀려 순식간에 어둠은 사라졌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가설들 중
눈에 띄는 ‘빛 스위치 이론’
빛, 정확히 말해서 빛을 식별하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 진화시킨 원동력이란 것 동물세계의 완전히 새로운 감각
그 무엇보다 막강한 ‘본다’는 감각
캄브리아기 이전에도 빛을 느꼈다
빛을 느끼는 것과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30억년간 이 세상은 암흑이었나 “빛이 있으라.” 이 한마디의 위력은 대단하다. 전등빛이 아이의 마음에서 어둠의 공포를 밀어냈듯이 빛이 있으라는 말 한마디로부터 영겁의 혼돈이 끝나고 세상은 시작되었다. 비단 창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록되거나 구술되어 내려오는 거의 모든 창조 설화에서 ‘빛의 탄생’ 혹은 그와 대비되는 어둠의 파괴는 태초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도 혼돈의 바다 아비스(Abyss)에서 태어난 창조신 아툼이 가장 먼저 만들어낸 것은 빛이었으며, 중국의 반고는 칠흑처럼 깜깜한 어둠이 너무도 갑갑해 이를 깨뜨리며 세상의 시원(始原)을 고했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리 빛이 가득 넘친다 해도 그 빛을 감지할 수 없다면, 빛이 존재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진정한 ‘빛의 세계’의 탄생은 우리가 그 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 즉 ‘눈’을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화석상의 기록을 보면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난 것은 적어도 35억년 이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초의 생명체 출현 이후 진화와 종간 분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서,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축약해서 볼 수 있는 존재에게조차도 생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최초의 생물 발생 이후 30억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동물계에서는 겨우 3문(아래 주석 참조)의 동물들이 발생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지루한 영화도 결국 끝이 나고, 불이 켜진다. 지구의 역사에도 바로 그렇게 ‘불이 켜지는 순간’이 존재했다. 바로 5억4300만년 전에서 5억3800만년 전까지의 500만년. 지질학적 시간 개념으로는 하룻밤에 불과한 500만년 사이에 그동안 갑작스레 수많은 동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종류는 순식간에 38개의 문으로 늘어났다. 생물 다양화라는 폭탄의 뇌관이 드디어 작동한 것인가? 하지만 이 시기 이후 이처럼 역동적인 생물계의 변동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진화는 계속되었지만, 이 시기의 변화가 지각변동이라면 이후는 여진에 불과했다. 500만년의 폭발 순간 이후, 다시 5억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38개의 동물문에는 하나의 새로운 문도 추가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수십억년 동안에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생물종이 이렇게 다양하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새로운 동물문이 추가되지 않은 것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5억년 전에 처음 생겨나 지금까지 지속되는 무언가, 이후 그 변화를 능가할 만한 새로운 변화를 허락하지 않은 무언가가 말이다. 이처럼 진화상에서 갑작스레 많은 동물문들이 추가된 것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학자들은 저마다 증거들을 해석해 캄브리아기의 생물 대폭발을 일으킨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했지만,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빛 스위치 이론’이다. 빛, 정확히 말해서는 빛을 식별할 수 있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를 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빛 스위치 이론’을 주장한 앤드루 파커는 자신의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비유한다. “상이 있으라! 동물 세계에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들어왔다. 더구나 이 감각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감각보다 막강해지게 될 감각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눈이 눈을 떴을 때, 세상 모든 것이 처음으로 빛에 노출되었다. 지구에 빛의 스위치가 켜졌고, 그 빛은 이전 시대를 특징지었던 점진적 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동물들의 구조를 다양하게 변모시키다
물론 캄브리아기 이전에 살던 동물들도 빛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꼭 눈이 있어야만 빛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눈은커녕 그와 비슷한 것조차 없는-사실 가지기에는 너무 작은- 미생물조차도 빛을 따라 움직이는 주광성(走光性)을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빛을 ‘느끼는’ 것과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빛을 느끼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고 빛과 동반하는 열기를 피부감각으로 느끼는 것에 불과하지만, ‘보는’ 것은 빛을 이용해 주변 사물의 존재와 위치를 감지하고, 상대를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시각이 없는 경우, 나는 내 앞의 상대가 내 먹잇감인지 나를 먹잇감으로 삼을 천적인지 알 수 없다. 문득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일순간에 눈이 먼 사람들은 오물과 배설물이 널려 있는 더러운 거리에서 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때는 몸을 웅크린 채 두려움에 떨 뿐이다. ‘보지 못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들에게서 판단 가능한 정보를 대부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반면 눈먼 자들 속에서 오로지 홀로 눈을 뜨고 있던 여자는 홀로 경악하고 절망하고 슬퍼하며 이들을 구원한다. 그녀의 인도에 따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줄을 선 이들은 앞사람의 어깨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꼭 붙잡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갓 태어난 어린 오리들처럼 그녀의 뒤만 졸졸 쫓는다. 그녀는 단지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이들을 구원하는-혹은 구원해야만 하는- 절대적이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것이다. 본다는 것의 위력을 이토록 실감나게 묘사하다니.
캄브리아기 동물들도 비슷한 충격을 겪었으리라. 여기 갑자기 ‘눈’이 뜨인 동물이 있다. 이전까지는 고만고만한 다른 동물들과 비슷했지만, 눈을 가진 이후 이들의 운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들에게 천적을 피하고 먹이를 구하는 일은 이전보다 수월해졌으며, 이로 인해 생존하고 번식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의 변화는 다른 생물체들에게는 변화의 필요성을 뼛속 깊이 자각시키는 진화적 압력이 된다. 눈이 없는 존재는 눈을 가진 존재들과 먹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어 멸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변해야만 했다. 외골격을 바꿔 단단한 외피를 만드는 것이든, 보호색이나 위장색으로 몸을 감추는 것이든, 몸의 구조를 바꿔 물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아야 했다. 개중에는 상대가 가진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택한 존재들도 있었다. 물론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같은 척추동물의 눈은 수정체를 가진 단안 구조이지만, 곤충과 같은 절지동물들은 작은 눈을 여러개 겹쳐 커다란 눈을 만드는 복안으로, 둘의 발생 방법은 전혀 다르다. 이렇듯 눈의 탄생을 계기로 등장한 진화적 압력은 너무도 강력해서 오랜 세월 완만하게 이루어져 왔던 동물들의 구조를 다양하게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상은 빛에 의해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생물들의 진화는 눈에 의해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생물체에게 있어 더욱 강한 메시지는 ‘눈이 있으라’였을지도 모른다.
이은희 과학 작가
생물체는 계(界, Kingdom)-문(門, Phylum)-강(綱, Class)-목(目, Order)-과(科, Family)-속(屬, Genus)-종(種, Species)으로 나뉘는데, 이 분류에 따르면 사람은 동물계-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속-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눈에 띄는 ‘빛 스위치 이론’
빛, 정확히 말해서 빛을 식별하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 진화시킨 원동력이란 것 동물세계의 완전히 새로운 감각
그 무엇보다 막강한 ‘본다’는 감각
캄브리아기 이전에도 빛을 느꼈다
빛을 느끼는 것과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30억년간 이 세상은 암흑이었나 “빛이 있으라.” 이 한마디의 위력은 대단하다. 전등빛이 아이의 마음에서 어둠의 공포를 밀어냈듯이 빛이 있으라는 말 한마디로부터 영겁의 혼돈이 끝나고 세상은 시작되었다. 비단 창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록되거나 구술되어 내려오는 거의 모든 창조 설화에서 ‘빛의 탄생’ 혹은 그와 대비되는 어둠의 파괴는 태초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도 혼돈의 바다 아비스(Abyss)에서 태어난 창조신 아툼이 가장 먼저 만들어낸 것은 빛이었으며, 중국의 반고는 칠흑처럼 깜깜한 어둠이 너무도 갑갑해 이를 깨뜨리며 세상의 시원(始原)을 고했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리 빛이 가득 넘친다 해도 그 빛을 감지할 수 없다면, 빛이 존재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진정한 ‘빛의 세계’의 탄생은 우리가 그 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 즉 ‘눈’을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화석상의 기록을 보면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난 것은 적어도 35억년 이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초의 생명체 출현 이후 진화와 종간 분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서,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축약해서 볼 수 있는 존재에게조차도 생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최초의 생물 발생 이후 30억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동물계에서는 겨우 3문(아래 주석 참조)의 동물들이 발생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지루한 영화도 결국 끝이 나고, 불이 켜진다. 지구의 역사에도 바로 그렇게 ‘불이 켜지는 순간’이 존재했다. 바로 5억4300만년 전에서 5억3800만년 전까지의 500만년. 지질학적 시간 개념으로는 하룻밤에 불과한 500만년 사이에 그동안 갑작스레 수많은 동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종류는 순식간에 38개의 문으로 늘어났다. 생물 다양화라는 폭탄의 뇌관이 드디어 작동한 것인가? 하지만 이 시기 이후 이처럼 역동적인 생물계의 변동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진화는 계속되었지만, 이 시기의 변화가 지각변동이라면 이후는 여진에 불과했다. 500만년의 폭발 순간 이후, 다시 5억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38개의 동물문에는 하나의 새로운 문도 추가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수십억년 동안에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생물종이 이렇게 다양하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새로운 동물문이 추가되지 않은 것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5억년 전에 처음 생겨나 지금까지 지속되는 무언가, 이후 그 변화를 능가할 만한 새로운 변화를 허락하지 않은 무언가가 말이다. 이처럼 진화상에서 갑작스레 많은 동물문들이 추가된 것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학자들은 저마다 증거들을 해석해 캄브리아기의 생물 대폭발을 일으킨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했지만,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빛 스위치 이론’이다. 빛, 정확히 말해서는 빛을 식별할 수 있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를 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빛 스위치 이론’을 주장한 앤드루 파커는 자신의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비유한다. “상이 있으라! 동물 세계에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들어왔다. 더구나 이 감각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감각보다 막강해지게 될 감각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눈이 눈을 떴을 때, 세상 모든 것이 처음으로 빛에 노출되었다. 지구에 빛의 스위치가 켜졌고, 그 빛은 이전 시대를 특징지었던 점진적 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반도 태백에서 발굴된 삼엽충 화석. 캄브리아기 초기인 5억2000만년 전부터 페름기 말기인 2억5000만년 전까지 고생대 모든 시기에 걸쳐 약 3억년 동안 생존했던 절지동물의 조상인 삼엽충은 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정교한 눈을 발달시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은희 과학 작가
생물체는 계(界, Kingdom)-문(門, Phylum)-강(綱, Class)-목(目, Order)-과(科, Family)-속(屬, Genus)-종(種, Species)으로 나뉘는데, 이 분류에 따르면 사람은 동물계-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속-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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