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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눈이 하나면 왜 앞을 볼 수 없을까

등록 2014-09-12 19:50수정 2014-10-15 10:28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원래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빈 채로 남고 이마 가운데에 하나의 눈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맨 위 작은 사진은 관상용으로도 인기 있는 익시아. 익시아의 잎에 든 사이클로파민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알칼로이드는 태아 단안증의 원인이 된다.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원래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빈 채로 남고 이마 가운데에 하나의 눈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맨 위 작은 사진은 관상용으로도 인기 있는 익시아. 익시아의 잎에 든 사이클로파민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알칼로이드는 태아 단안증의 원인이 된다.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② 단안증
“밤이 깊어지자 오디세우스는 조심스레 일어났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는 그가 권한 포도주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잠든 거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와 부하들이 이곳에 붙잡혀 있던 며칠 동안 식인 거인은 그의 부하들을 디저트로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불타는 장작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격에 거인을 죽이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거인을 죽이면 동굴 앞을 가로막은 바위 덕에 그들도 꼼짝없이 굶어 죽을 터였다. 그는 거인을 죽이지는 않으면서도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곳을 찾았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공격 부위가 정해졌다. 그의 미간 사이에 붙어 있는 단 하나의 커다란 눈. 그는 망설임 없이 그 눈꺼풀에 불붙은 장작을 찔러넣었다.”(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중에서)

좌뇌·우뇌 분리되지 않는
완전전뇌증의 결과가 단안증
내부적인 뇌의 이상은
표면적인 눈의 이상으로 연결
뇌와 눈은 그만큼 밀접하다

키클롭스 등 외눈박이 거인들의
이야기는 허구의 상상물이지만
이런 선천적 기형은 실제 존재
태아 상태에서 죽거나 얼마 못 살아
키클롭스처럼 자라지는 못한다

익시아를 먹고 눈 하나로 태어난 새끼양들

그리스 신화에는 다양한 신과 요정, 반인반수,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것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들이다. 사람을 비롯해 눈을 가진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두 개의 눈을 가진다. 그래서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희귀함과 기괴함은 키클롭스들을 흉측하다는 이유로 제 아비로부터도 버림받고 지하에 갇힌 괴물이자 제우스에게 천둥 무기를 만들어준 괴짜 장인이며, 인육을 즐기고 산 채로 인간의 골수를 빨아먹는 식인 괴물로 다양하게 변주시켰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눈을 지닌 존재들은 모두 잔인하고 난폭한 도깨비나 오니, 혹은 다양한 괴물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마치 눈이 하나인 존재들은 모두 잔인한 성품의 괴물로 여기자고 합의라도 한 듯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태풍의 일종인 사이클론(cyclone)이다. 태풍도 키클롭스처럼 눈이 하나뿐인데다,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를 남기는 잔인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키클롭스를 비롯해 외눈박이 거인들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의 상상물이지만, 실제로 하나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눈이 하나뿐인 선천성 기형을 단안증(cyclopia syndrome)이라 하는데, 이미 17세기 발간된 포르투니오 리체티의 <자연 속에서 찾은 괴물의 원인과 다양성>에 단안증을 가진 채 태어난 아이의 그림이 등장할 정도다. 단안증은 사람뿐 아니라 두 개의 눈을 가진 동물이라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이미 19세기 이전에 단안증을 가진 양, 소, 말, 고양이가 발견되어 의학 서적에 등재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눈이 하나인데다 몸마저 하얀 단안증 알비노 상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1950년대, 미국 서부의 목장주들은 경악했다. 임신한 암양들이 스무 마리에 한 마리꼴로 눈이 하나밖에 없는 새끼 양(주 ➊)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이한 사건은 전무후무했기에 당국에서는 즉시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밝혀진 비극의 원인은 익시아(corn lily)였다. 붓꽃과에 속하는 익시아는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도 인기 있는 꽃인데, 이 익시아의 잎에 든 사이클로파민(cyclopamine)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알칼로이드는 태아 단안증의 원인이 된다. 이를 모른 채 임신한 어미 양들은 익시아의 푸른 잎을 뜯어먹었고, 눈이 좌우로 발달하는 특정 시기(임신 14일 전후)에 먹은 경우 단안증을 가진 양을 낳게 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익시아라는 외부 요인(주 ➋)으로 인해 단안증이 대량 발생했지만 단안증의 대부분은 유전자 이상, 곧 주로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에 속하는 유전자들의 이상으로 나타난다. 인체의 외부는 좌우대칭형이다.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군은 처음에는 하나의 통으로 발생하는 신체의 기관들을 좌우대칭으로 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그래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원래는 양쪽으로 갈라져야 하는 눈이 하나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좌우 분리에 문제가 생기므로 단 하나밖에 없는 눈은 얼굴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단안증을 가진 알비노 상어(위)와 일반적인 상어(아래).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 화면 갈무리
단안증을 가진 알비노 상어(위)와 일반적인 상어(아래).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 화면 갈무리

진정한 의미의 시각은 ‘인식행위’까지 포함

누군가는 인간에게도 단안증이 나타난다는 이유를 들어 전설 속 키클롭스는 실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안증을 가진 태아는 대부분 유산 혹은 사산되거나 태어나더라도 얼마 못 살고 사망하기 때문에(주 ➌) 신화 속의 키클롭스처럼 성인으로 자라나지는 못한다. 현재 남아 있는 단안증 표본들은 대개 태아이거나 신생아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다. 이렇듯 단안증을 가진 아이가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눈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 앞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뇌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의 이상이 뇌의 이상으로 이어진다고? 사실은 뇌의 이상이 눈의 이상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 두 개의 반구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부터 좌뇌와 우뇌가 따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는 하나였던 신경관이 양쪽으로 나누어지면서 형성된다. 이때 여러 가지 이유로 뇌가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 현상을 ‘완전 전뇌증’(holoprosencephaly)이라고 한다. 단안증은 완전 전뇌증의 극단적인 표현형으로 이들의 뇌는 좌우 반구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합쳐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내부적인 뇌의 이상이 표면적인 눈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뇌와 눈이 그만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 만들어진 수정란은 난할을 거듭해 부지런히 자라난다. 사람의 태아는 수정 후 2주 무렵(주 ➍)이면 장차 신체 기관들로 분화될 3개의 배엽-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을 형성한다. 이들은 안쪽에서부터 차례로 내배엽은 소화관과 간, 이자, 폐 등의 내부 장기로 분화되며, 중배엽은 심장과 혈액, 비뇨생식계, 근육과 결합조직 등으로 분화되고, 외배엽은 피부와 신경계, 그리고 눈으로 분화된다. 이 시기는 눈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외배엽 중앙에서 발달하는 신경관의 앞부분 일부가 원시눈이 된다. 수정 후 2주라면 일반적인 임신 주수로는 4주쯤으로 태아의 크기가 채 1㎜도 되지 않아 아직 초음파로도 잡히지 않고, 심지어는 임신한 당사자조차도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때다. 그런데도 이 시기에 이미 태아의 눈은 장차 세상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자라는 중인 것이다. 일단 발생 스위치가 켜진 태아의 원시눈은 빠르게 발달하여 수정 후 3주면 신경관의 좌우로 밀려나 자리를 잡고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며, 수정체도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눈의 발생 과정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뇌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으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을 배운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한글로 쓰인 전문 학술서를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그 아이가 진정으로 책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다. 아이가 읽은 것은 학술서에 쓰인 글자였을 뿐, 그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읽을 때 더 중요한 건 글자를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의 ‘시각’은 단순히 망막에 비치는 형상이 아니라, 그 형상을 읽어내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 해석은 뇌의 기능을 상당 부분 요구한다. 사람의 대뇌피질에서 시각중추가 차지하는 영역이 가장 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각막이식 성공하고도 보지 못한 이유

1950년대, 영국의 신경인지심리학자였던 리처드 랭턴 그레고리(1923~2010) 박사의 S.B에 대한 사례 연구(주 ➎)는 왜 눈과 뇌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06년생인 S.B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었으며, 1958년 처음으로 각막이식 수술을 받아 빛을 보게 되었다. 일단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이식받은 각막은 성공적으로 생착했고, 그의 눈은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망막에 상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각막 이식만 받으면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S.B는 눈을 뜨고도 눈앞의 의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의사의 얼굴을 처음 보았으니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는 의사가 말을 걸기 전까지 누군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보지 못했던 것이다. 수십년 동안 시각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채 살아왔기에 그의 뇌에서는 시각중추가 거의 발달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이미지들을 그의 뇌가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로 재활 훈련을 통해 ‘보인다’는 감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늘어났으나, 이후로도 그의 시각적 이해도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심봉사 역시 부처님의 은덕으로 두 눈이 번쩍 뜨였더라도 뇌의 시각중추도 동시에 뜨이지 않았다면,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리따운 귀부인이 청이라는 것을 알아보기는커녕, 딸이 눈앞에 서 있는지도 몰라 청이의 속을 두 번 뒤집어놨을 듯하다.

이은희 과학 작가
이은희 과학 작가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흔들리는 눈동자, 맞지 않는 시선, 어두운 눈빛 등은 감정의 동요와 부끄러움, 걱정스러움 등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관용적 표현이다. 이 말은 생물학적으로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뇌는 마음이 만들어지는 곳이며, 눈은 뇌가 세상을 인식하기 위해 피부 밖으로 밀어낸 부위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뇌가 세상을 인식하기 위해 만들어낸 입력 장치, 그것이 바로 눈이기에.


➊ http://www.learner.org/courses/biology/archive/images/1717.html

➋ 사람의 경우에도 모체가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 에테르, 클로로포름, 아세톤, 페놀 등의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단안증의 발생 비율이 다소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➌ 자연계에서 단안증이 나타나는 비율은 1만6000건의 출산당 1회로 알려져 있는데, 유산된 태아로 범위를 넓히면 250건 중 1의 비율로 껑충 뛰어오른다. 단안증을 지닌 개체들의 대부분이 출생 이전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➍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만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시기 이후에는 신체 각 부위가 분화되기 때문이다.

➎ Richard Langton Gregory, ‘Recovery from Early Blindness A Case Study’, http://www.richardgregory.org/papers/recovery _blind/recovery-from-early-blindness.pdf

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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