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⑬ 관상과 눈매 교정술
⑬ 관상과 눈매 교정술
사극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지체 높은 양반과 비천한 천것의 만남. 양반님네는 늘 높다란 대청마루나 동헌마루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천것들은 흙바닥에 납죽 엎드려 코를 땅에 박고 이마를 조아린다. 비루한 목숨 하나쯤은 말 한마디로 바람에 날려버릴 수 있는 권세는 그 어떤 억센 완력보다도 강하게 등허리를 짓누르기 마련이다. 풍전등화 같은 순간의 칼날 같은 긴장감은 이 한마디로 풀어진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바로 핏줄과 가문으로 주어진 세속적 신분이 아니라, 눈을 가진 동등한 개체가 마주하는 순간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던가.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보고 싶을 때 눈을 보는 버릇이 있다. 심지어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확인해보고 싶다면 아무 사진이나 집어들고 눈만 가려보라. 눈이 가려지는 순간, 익숙한 이는 낯설어지고 초면인 사람이 익숙한 얼굴처럼 느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로마 고서적에도 나오는 눈매성형
실제로 눈은 많은 것을 볼 뿐 아니라,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드라마 <라이 투 미>에서 행동과학의 대가로 등장하는 칼 라이트먼 박사는 사람의 눈만 보아도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명확하게 꿰뚫어낸다. 눈으로 상대를 읽어내기 위해 꼭 라이트먼 박사처럼 신기에 가까운 관찰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때로는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눈빛이 있으니까. 넘치는 자신감과 패기는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져 나오며,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길은 중심 없이 흔들리는 공허한 마음의 반영이다. 눈을 치켜뜨는 것은 화가 났음을 의미하는 무언의 제스처이며, 눈을 홉뜨는 것은 다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톺아보는 눈길에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미움과 증오는 쏘아보는 눈길에 담겨 화살처럼 마음에 꽂히며, 미인의 뇌쇄적인 시선과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무언의 저항이 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을 때 흘깃거리며 상대와 얘기할 마음이 없을 때는 눈길을 돌린다. 눈빛이 보이지 않는 짙은 색의 선글라스는 자외선을 막아 안구를 보호하겠다는 건강상의 목적보다는 상대에게 눈빛을 읽혀 심중을 들키지 않겠다는 심리적 목적이 크다. 눈길이 마주쳤을 때,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다면 불안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 속 그 수많은 ‘요원’들이 어두컴컴한 실내에서조차 선글라스를 벗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두 눈의 시선이 맞지 않는 사시(斜視)에 대한 대중문화 속 묘사가 반쯤 맛이 간 악당의 이미지로 자주 왜곡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눈이 이토록 다양한 표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에 대한 속설들도 많다. 눈이 크면 시원시원해 보이고, 눈이 작으면 속을 알 수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도 눈꼬리가 처지면 순하지만 속기 쉬울 것 같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면 고집 있고 표독스럽게 보인다. 둥근 눈은 사람 좋아 보이고, 길고 가는 눈은 매서워 보인다. 크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미인의 대명사이며, 단춧구멍같이 빼꼼한 눈은 못난 외모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히나 관상학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눈을 빌려 설명하기도 하는데, 매서운 호랑이를 닮아 부리부리한 범눈은 강직하고 적극적이며, 황소를 닮아 커다랗고 둥근 소눈은 인자하고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거북이눈은 신망이 두텁고, 학눈은 이상이 높으며, 뱁새눈은 빠릿빠릿하고, 원숭이눈은 눈치가 빠르며, 뱀눈은 사납고 간사하다고 풀어놓는다. 눈의 생김새와 눈빛과 시선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과 관련된 다양한 선입관을 가지고 상대를 파악하게 된다. 타고난 눈의 모습이 길상(吉相)에 속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악상(惡相)이거나 흉상(凶相)이라면 대인관계에서 처음부터 걸림돌이 된다. 예쁘고 보기 좋은 눈매를 만들기 위한 눈매교정술이 왜 그토록 오래전부터 유행했는지 알 듯싶다.
보기 좋고 인상 좋은 눈매를 위한 시술은 기원후 1세기쯤 로마에서 제작된 책에서도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늘어진 눈꺼풀을 잡아당겨 나무 막대 사이로 집어넣고 그 사이를 꽉 묶으면 이 피부는 죽게 되고 열흘이 지나면 죽은 피부는 떨어져 나가고 흉 없이 깨끗이 낫게 된다”는 말이 등장한다. 실제로 피부나 조직을 꽉 동여매 혈액 순환을 차단시키면 혈액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어 해당 부위가 괴사하게 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해 눈꺼풀의 늘어진 피부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술은 미용적인 측면보다는 이완된 눈꺼풀이 시야를 과도하게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용 시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상학서 범눈은 강직하고 적극적
커다란 소눈은 인자하고 부지런
눈치 빠른 원숭이눈, 간사한 뱀눈
악상과 흉상은 대인관계 걸림돌
예부터 눈매교정술 유행한 이유 한국 20대 평균 눈의 크기는
가로 26~30㎜, 세로 10~14㎜
세로폭 5㎜ 차이가 인상 결정
다른 이목구비의 수치도 비슷
클레오파트라 코를 생각해보라 눈 미백술로 불리는 결막 절제술 이 시술에서 발전하여 눈매를 교정한다는 뜻의 눈매성형술(blepharoplasty)이라는 단어가 도입된 건 19세기 초반의 일이었다. 그리스어로 ‘블레파론’(blepharon)은 눈꺼풀을 뜻하며, ‘플라스티코스’(plasticos)는 ‘형성되다’라는 뜻으로 성형수술을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눈매를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담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 이런 식으로 늘어진 눈꺼풀을 제거하거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접어 넣는 것이 미용적인 가치가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늘어지는 것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나 혹은 눈꺼풀을 잡고 있는 근육과 인대가 늘어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그 자체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란다. 하지만 눈꺼풀이 늘어지면 시야가 가려져서 불편하긴 하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려면 커튼을 걷어야 하는 것처럼 눈꺼풀이 늘어져 시야에 방해를 받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집중해서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눈을 치켜뜨게 된다. 한두 번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행동을 오랫동안 반복하게 되면 그 반대급부로 미간과 이마에 주름이 지며 찌푸린 얼굴을 자주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주름지고 찌푸린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늘어진 눈꺼풀을 제거하게 되면 눈의 크기도 커질 뿐 아니라, 시야를 가리는 것이 사라지므로 굳이 눈에 힘을 줄 필요가 없어져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미간을 좁히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 사소한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는 매우 크다. 눈매교정술의 긍정적 효과는 눈 크기의 변화보다는 이로 인한 얼굴 전체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면 눈꺼풀이 당겨 올라가면서 겉으로 노출되는 눈 크기는 평균 20% 정도 커질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눈을 치켜뜨거나 눈살을 찌푸릴 필요가 없기에 이마도 5% 정도 길어지고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면서 이전보다 눈 크기에 더해 인상이 좋아지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주름지고 찌푸린 얼굴보다는 탄력있고 밝은 얼굴을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말이다. 단지 눈꺼풀을 접어 올려 쌍꺼풀을 만드는 것이 가져오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은 곧 미용적 눈매교정술에 대한 열풍으로 이어졌다. 사실 사람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차이도 커다란 결과로 나타난다. 미인과 추녀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얼굴은 절대적 수치상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20대 남녀 1500여명의 얼굴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20대의 평균 눈의 크기는 가로 26~30㎜, 세로 10~14㎜ 정도이다. 이 말인즉슨 눈을 떴을 때 눈의 세로 폭이 10㎜ 이하면 작은 눈이고, 15㎜ 이상이면 큰 눈에 속한다는 뜻이다. 미인과 추녀라는 엄청난 사회적 파급력의 차이가 5㎜라는 미미한 차이에서 시작된다니. 눈 크기뿐 아니라, 다른 이목구비의 수치 역시 마찬가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탄식한 파스칼은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가져오는 엄청난 창발성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자랑하는 셈이다. 명모호치(明眸皓齒)란 말이 있다. 한자만을 풀어내면 ‘맑은 눈과 하얀 이’라는 뜻이지만 이 말 속에는 매우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미인의 대명사인 양귀비를 지칭하면서 쓴 단어이기 때문이다. 굳이 양귀비까지 가지 않더라도 흐릿하고 탁한 눈동자보다는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 예쁘고, 누렇게 변색된 이보다는 하얗게 반짝이는 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미인의 조건에 맑은 눈이 포함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미의 기준은 양귀비가 살던 시대에서 1300여년을 건너뛴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미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면, 기준에 맞도록 몸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현대인들은 가지고 있으니까. 흔히 눈 미백술이라고 불리는 결막 절제술이 그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눈의 표면은 결막이라는 얇고 투명한 점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결막은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최전방의 장벽으로 미생물이나 이물질로부터 일차적으로 눈을 보호하며, 공막에 영양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각막과 수정체가 그렇듯 결막 역시도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색이 없이 투명하다. 우리가 흔히 눈동자와 흰자라고 부르는 부위의 색은 결막의 색이 아니라, 결막 뒤에 존재하는 홍채(눈동자)와 공막(흰자)의 색인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투명한 결막이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다. 바로 눈이 충혈될 때이다. 일반적으로 결막에 존재하는 혈관은 매우 가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혈관이 확장되면 눈에 보일 만큼 혈관들이 드러나게 된다. ‘눈에 핏발이 서다’라는 말은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자극으로 인해 결막 혈관이 확장되었다’는 말의 일상적 표현인 것이다. 눈에 핏발이 서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감을 눈이 대신 표현하는 경우이다. 눈은 마음의 창일 뿐 아니라, 몸의 창이기도 하니까. 우리 시대 중년 직장인들의 대명사 격으로 떠오른 <미생>의 오 과장이 늘 붉은 눈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보석 같은 눈? 아예 보석을 넣은 눈!
눈에 거미줄 같은 핏발이 서다 못해 피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 붉어진다 하더라도 눈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는 눈동자 쪽이기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용적인 측면에서 이런 눈은 결코 아름답다고 평가받지 못한다. 개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눈이 충혈되는 것이 아니라, 별다른 이유 없이도 늘 눈이 충혈되어 되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제시된 해결책이 결막 절제술이다. 즉, 눈의 가장 바깥쪽을 감싸고 있는 결막을 일부 벗겨내는 것이다. 결막에는 혈관이 있지만, 그 안쪽에 위치하는 공막에는 혈관이 분포하지 않기 때문에, 결막을 벗겨내면 흰자는 공막의 색 그대로 흰 자태를 뽐내게 된다. 흰자위를 다시 맑게 되돌려주는 효과를 보인 결막 절제술은 곧 심각한 안충혈 환자 외에도 외모의 완벽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안구미백술’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미생물에 대한 1차적 보호막으로 작용하는 결막을 단순히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절제하고 공막을 드러내는 시술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조차도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공막의 직접적인 외부 노출은 감염의 위험을 높이고, 심각하게는 공막 석회화 등의 부작용으로 시력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아름다운 눈에 대한 열망에 다양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현대적 미의식이 결합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대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이런 열망은 서클렌즈를 이용해 눈동자의 색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아예 흰자위에 염료를 주입해 영구적으로 색을 바꾸거나 그림을 새겨넣는 안구 문신, 그리고 결막에 작은 보석들을 삽입해 눈을 움직일 때마다 살짝 보이게 하는 일명 보석눈(jewel eye)까지 확장되고 있다.
글을 쓰는 사이, 어느새 잠이 깬 네살짜리 아이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배시시 웃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비친다. 저 맑은 눈동자에 담기기엔 지금의 내 모습은 그리 싱그럽지 못한데. 어쩌면 우리가 맑고 영롱한 눈에 집착하는 것은 그런 눈동자를 가졌던 시절에 대한 서글픈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울고 힘들면 투정부리고 기쁘면 펄쩍펄쩍 뛰었던,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말이다.
이은희 과학 작가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눈이 다양한 표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의 관상과 관련해 속설들도 많다. <한겨레> 자료사진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눈이 다양한 표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의 관상과 관련해 속설들도 많다. <한겨레> 자료사진
커다란 소눈은 인자하고 부지런
눈치 빠른 원숭이눈, 간사한 뱀눈
악상과 흉상은 대인관계 걸림돌
예부터 눈매교정술 유행한 이유 한국 20대 평균 눈의 크기는
가로 26~30㎜, 세로 10~14㎜
세로폭 5㎜ 차이가 인상 결정
다른 이목구비의 수치도 비슷
클레오파트라 코를 생각해보라 눈 미백술로 불리는 결막 절제술 이 시술에서 발전하여 눈매를 교정한다는 뜻의 눈매성형술(blepharoplasty)이라는 단어가 도입된 건 19세기 초반의 일이었다. 그리스어로 ‘블레파론’(blepharon)은 눈꺼풀을 뜻하며, ‘플라스티코스’(plasticos)는 ‘형성되다’라는 뜻으로 성형수술을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눈매를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담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 이런 식으로 늘어진 눈꺼풀을 제거하거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접어 넣는 것이 미용적인 가치가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늘어지는 것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나 혹은 눈꺼풀을 잡고 있는 근육과 인대가 늘어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그 자체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란다. 하지만 눈꺼풀이 늘어지면 시야가 가려져서 불편하긴 하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려면 커튼을 걷어야 하는 것처럼 눈꺼풀이 늘어져 시야에 방해를 받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집중해서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눈을 치켜뜨게 된다. 한두 번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행동을 오랫동안 반복하게 되면 그 반대급부로 미간과 이마에 주름이 지며 찌푸린 얼굴을 자주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주름지고 찌푸린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늘어진 눈꺼풀을 제거하게 되면 눈의 크기도 커질 뿐 아니라, 시야를 가리는 것이 사라지므로 굳이 눈에 힘을 줄 필요가 없어져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미간을 좁히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 사소한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는 매우 크다. 눈매교정술의 긍정적 효과는 눈 크기의 변화보다는 이로 인한 얼굴 전체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면 눈꺼풀이 당겨 올라가면서 겉으로 노출되는 눈 크기는 평균 20% 정도 커질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눈을 치켜뜨거나 눈살을 찌푸릴 필요가 없기에 이마도 5% 정도 길어지고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면서 이전보다 눈 크기에 더해 인상이 좋아지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주름지고 찌푸린 얼굴보다는 탄력있고 밝은 얼굴을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말이다. 단지 눈꺼풀을 접어 올려 쌍꺼풀을 만드는 것이 가져오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은 곧 미용적 눈매교정술에 대한 열풍으로 이어졌다. 사실 사람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차이도 커다란 결과로 나타난다. 미인과 추녀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얼굴은 절대적 수치상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20대 남녀 1500여명의 얼굴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20대의 평균 눈의 크기는 가로 26~30㎜, 세로 10~14㎜ 정도이다. 이 말인즉슨 눈을 떴을 때 눈의 세로 폭이 10㎜ 이하면 작은 눈이고, 15㎜ 이상이면 큰 눈에 속한다는 뜻이다. 미인과 추녀라는 엄청난 사회적 파급력의 차이가 5㎜라는 미미한 차이에서 시작된다니. 눈 크기뿐 아니라, 다른 이목구비의 수치 역시 마찬가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탄식한 파스칼은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가져오는 엄청난 창발성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자랑하는 셈이다. 명모호치(明眸皓齒)란 말이 있다. 한자만을 풀어내면 ‘맑은 눈과 하얀 이’라는 뜻이지만 이 말 속에는 매우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미인의 대명사인 양귀비를 지칭하면서 쓴 단어이기 때문이다. 굳이 양귀비까지 가지 않더라도 흐릿하고 탁한 눈동자보다는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 예쁘고, 누렇게 변색된 이보다는 하얗게 반짝이는 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미인의 조건에 맑은 눈이 포함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미의 기준은 양귀비가 살던 시대에서 1300여년을 건너뛴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미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면, 기준에 맞도록 몸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현대인들은 가지고 있으니까. 흔히 눈 미백술이라고 불리는 결막 절제술이 그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눈의 표면은 결막이라는 얇고 투명한 점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결막은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최전방의 장벽으로 미생물이나 이물질로부터 일차적으로 눈을 보호하며, 공막에 영양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각막과 수정체가 그렇듯 결막 역시도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색이 없이 투명하다. 우리가 흔히 눈동자와 흰자라고 부르는 부위의 색은 결막의 색이 아니라, 결막 뒤에 존재하는 홍채(눈동자)와 공막(흰자)의 색인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투명한 결막이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다. 바로 눈이 충혈될 때이다. 일반적으로 결막에 존재하는 혈관은 매우 가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혈관이 확장되면 눈에 보일 만큼 혈관들이 드러나게 된다. ‘눈에 핏발이 서다’라는 말은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자극으로 인해 결막 혈관이 확장되었다’는 말의 일상적 표현인 것이다. 눈에 핏발이 서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감을 눈이 대신 표현하는 경우이다. 눈은 마음의 창일 뿐 아니라, 몸의 창이기도 하니까. 우리 시대 중년 직장인들의 대명사 격으로 떠오른 <미생>의 오 과장이 늘 붉은 눈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눈이 다양한 표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의 관상과 관련해 속설들도 많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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