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뛰어든 3D프린터 제작기
무엇이든 만드는 프린터
심지어 자신도 복제 가능
핵심은 ‘알고리즘’에 있었다
초짜 기자도 15만원에 ‘뚝딱'
‘자가복제기계’의 이상 퍼지고…
무엇이든 만드는 프린터
심지어 자신도 복제 가능
핵심은 ‘알고리즘’에 있었다
초짜 기자도 15만원에 ‘뚝딱'
‘자가복제기계’의 이상 퍼지고…
호모메이커스의 탄생
2013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첫 국정 연설에서 3D프린팅 기술을 미래 제조업 혁명의 대표 주자로 언급하면서 3D프린터 붐이 일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이든 상상한 대로 출력해낼 수 있는 3D프린터는 기존 질서를 뒤집을 수 있을까. 인간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3D프린터로 3D프린터를 직접 만들어보며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타진해봤다.
“뭐라고요? 3D프린터를 만들었다고요? 3D프린터로 뭘 만든 게 아니고요?”
3D프린터를 직접 제작해봤다는 오늘공작소 한광현 선임연구원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공작소는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메이커 운동’으로 청년 자립과 주거, 지역공동체 문제 등을 해결하려 시도하는 단체다. 한씨는 수차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기자에게 계속해서 “맞다”고 답해야만 했다. 3D프린터는 최근 각광받는 신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런 첨단의 물건을 오늘공작소가 만든다고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씨는 더욱 놀라운 말을 꺼냈다. 그는 오늘공작소가 원재료비 “20만원”만으로 시민들이 3D프린터를 만드는 강좌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그 강좌에 참여했다.
15만원짜리 3D프린터
지난 4월18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3D프린터를 만들기 위한 첫 모임이 시작됐다. 기자를 포함한 ‘학생’ 14명은 강사로 나선 오늘공작소의 강동호 연구원과 함께 이날부터 3D프린터 만들기에 나섰다. 이날 강 연구원은 “3D프린터는 첨단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은 진짜 첨단기술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전부 들어가 있어요. 3D프린터라는 기계는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서 그저 X-Y-Z축으로 움직일 뿐이에요.”
첨단기술에 해당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설계도 등은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는 디지털 세상의 특성에 따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확산됐다. 영국의 에이드리언 보여 박사가 2004년부터 진행한 렙랩(RepRap) 프로젝트 덕이다. 이 모임에서도 렙랩에 올라온 ‘스마트랩 미니’라는 모델의 설계도를 참고해 3D프린터를 만들었다.
우선 전기신호에 따라 단계적으로 돌아가는 ‘스테퍼 모터', 필라멘트를 뜨겁게 달궈 녹이며 조금씩 배출해는 ‘핫엔드(헤드)’, 핫엔드가 X-Y-Z 축으로 직선운동할 수 있도록 축으로 쓰는 6~8㎜ 쇠봉(연마봉)과 전산볼트, 베어링 등을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직접 구매한 부품 가격을 더해보니 15만원 정도 들었다. 각종 부품을 한데 모아 ‘키트'로 판매하는 상품은 시중에서 38만~39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렇게 구매한 부품들을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3D프린터를 이용해 출력한 ‘프린트 부품’을 이용해 조립했다. 출력 부품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계도 구실을 했다. 프라모델을 조립할 때 굳이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출력 부품들의 구멍과 각도에 맞춰 모터를 끼우고 연마봉과 전산볼트 등을 끼우니 얼개가 완성됐다. 총 작업시간을 따져보니 프린트 부품을 출력하는 데 12시간, 조립하는 데는 4~5시간이 걸렸다.
컴퓨터의 신호를 기계에 전달해주는 회로기판인 ‘아두이노 보드’를 연결하고 컴퓨터와 연결하는 설정 작업이 복잡하긴 했지만, 축을 이루는 플라스틱이 휘어 직선운동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등의 일이 조립과정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단순한 기계가 첨단으로 불리는 이유가 뭘까.
“많아지면 달라진다”
사실 3D프린팅은 1984년에 개발된 오래된 기술이다. 제품 모형이나 시제품 제작을 위한 도구로 꾸준히 사용돼 왔지만 그 외의 용도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부터 시작된 렙랩 프로젝트와 2009년의 ME 방식의 특허권 만료는 새로운 시도를 배양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각종 개인용 제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 뜨고 있는 ‘메이커봇’이나 네덜란드의 ‘얼티메이커’, 국내의 ‘오픈크리에이터즈’ 모두 렙랩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개인용 3D프린터를 만들어 상품으로 내놓은 사례들이다.
3D프린터와 무관했던 여러 업계에서도 이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한 점도 혁신의 계기가 됐다. 복잡한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의 특성을 활용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구조체를 개발해 가벼운 오토바이를 만드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품이 나타났고, 의료계에서는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우주 분야에서는 달이나 화성의 원료를 그대로 이용해 우주기지를 건설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의 저자 클레이 셔키가 주장하듯,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혁신의 토양이다. 소수의 전문가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더 뛰어날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은 ‘크라우드소싱’ 같은 단어로 불리며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태양 입자와 관련해 35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를 대중에게 공개해 풀었다.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천체물리학계 인물이 아니라, 은퇴한 무선주파수 기술자였다.
문명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장은 “3D프린터를 혁신의 아이콘처럼 부르는 이유는, 3D프린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2년 말 미국 시사지 <타임>은 개인용컴퓨터(PC)를 ‘올해의 기계’로 선정했다. 외국의 각종 트렌드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더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엑셀을 이용해 예전에는 할 수 없던 데이터 분석마저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 물건을 복제할 수 있는 3D프린터는 더욱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값비싼 색소폰을 3D프린터로 출력하는 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토바이서 볼펜까지…이것이 머신해킹!
기계시대의 대안
<한겨레>는 오늘공작소 신지예 대표, 강 연구원과 함께 ‘수제'로 만든 3D프린터를 써서 ‘모나미 153 볼펜’을 만들어봤다. 모나미 볼펜을 선택한 이유는 기계화·분업화·컨베이어벨트 등으로 상징되는 포드주의가 확대되면서 1963년 출시 시점엔 ‘아껴썼던 중요한 물건’에서, 현재는 ‘일회용’으로 바뀐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을 가져보려 했다.
논의 과정에서 펜심은 제외하고, 껍데기 부분만 모사하기로 했다. 펜 끝의 볼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각 부품의 치수를 캘리퍼스로 측정해 모델링을 하고, 프린터로 출력했다. 모델링이나 실패 과정 등을 제외하고, 출력 시간은 3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필라멘트는 9g 정도 썼다. 1㎏의 필라멘트가 1만5000~2만원 정도니, 전기세를 제외하고 재료 가격만으로 따지면 사실상 공짜인 셈이다.
하지만, 3D프린터로 모나미153 볼펜이라는 단순한 형태를 완전히 똑같이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사출성형기와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 방식에 최적화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진짜 모나미 볼펜이 300원 정도라는 점을 비교해봐도 가격경쟁력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머신해킹' 하고 아이디어 내고
35분만에 똑같은 제품 출력
‘수제 모나미 볼펜’의 탄생 만든다, 고로 존재한다
‘만드는 법' 잃어버린 인류
혁신의 도구 쥘 때
인공지능 시대 두렵지 않다 다만 이 과정은 많은 고민을 던져줬다. 신 대표는 “볼펜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몸통을 왜 육각형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식의 제조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책상에서 구르지도 않으면서 구조적으로도 단단한 형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답을 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모나미 펜을 만들어보는 과정은 ‘머신 해킹'의 첫 단계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머신 해킹이란 기존 제품의 기술을 그대로 흉내내 직접 그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기술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을 기술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 이런 노동의 소외가 더욱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3D프린터로 볼펜을 만들어본 신 대표는 “자본이 기술을 독점하고, 청년들은 정보와 자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3D프린터로 청년들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D프린터는 기계시대를 극복하는 인간의 무기다. 3D프린터를 이용해 기계시대를 헤쳐나가는 인간을 우리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최초의 인류란 의미의 ‘호모 메이커스’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글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오늘공작소 사이트의 제작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http://todaymaker.com/category/%ED%94%84%EB%A1%9C%EA%B7%B8%EB%9E%A8/2016%EB%85%84
15만원 들여 만든 3D프린터.
모나미153 볼펜(아래)과 3D프린터로 만든 볼펜(위).
제품혁신 : 에이버스 에이피워크(APWork)의 CEO Joachim Zettler(왼쪽)가 3D프린터로 출력한 가벼운 오토바이를 직접 들어보이고 있다. 3D프린터는 35㎏에 불과한 가벼운 오토바이를 만든다든지, 매우 복잡한 격자구조의 쿠션을 만들어 신발 밑창에 쓰는 등 제품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출처 에이피워크
35분만에 똑같은 제품 출력
‘수제 모나미 볼펜’의 탄생 만든다, 고로 존재한다
‘만드는 법' 잃어버린 인류
혁신의 도구 쥘 때
인공지능 시대 두렵지 않다 다만 이 과정은 많은 고민을 던져줬다. 신 대표는 “볼펜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몸통을 왜 육각형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식의 제조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책상에서 구르지도 않으면서 구조적으로도 단단한 형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답을 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모나미 펜을 만들어보는 과정은 ‘머신 해킹'의 첫 단계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머신 해킹이란 기존 제품의 기술을 그대로 흉내내 직접 그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기술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을 기술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 이런 노동의 소외가 더욱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3D프린터로 볼펜을 만들어본 신 대표는 “자본이 기술을 독점하고, 청년들은 정보와 자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3D프린터로 청년들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D프린터는 기계시대를 극복하는 인간의 무기다. 3D프린터를 이용해 기계시대를 헤쳐나가는 인간을 우리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최초의 인류란 의미의 ‘호모 메이커스’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글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오늘공작소 사이트의 제작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http://todaymaker.com/category/%ED%94%84%EB%A1%9C%EA%B7%B8%EB%9E%A8/2016%EB%85%84
수송단계 생략, 우주에서 직접 제작 : 달이나 화성에 우주기지를 만드는 데에는 3D프린터가 유용하다. 지구에서 원재료를 가져갈 필요 없이 그 행성의 원료를 그대로 이용해 기지나 집을 출력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미 항공우주국
제품 모사 : 3D프린터 디자인 엔지니어인 올라프 디걸이 만든 색소폰. 복잡하면서도 비싼 악기, 옷걸이 같은 상품, 각종 피규어 제품 등 기존 상품들도 3D프린터로 거의 똑같이 출력할 수 있다. 출처 오드기타스(ODD Gui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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