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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남의 일 아닌 ‘지진’…건물밑 고무가 당신을 구한다

등록 2016-08-01 10:42수정 2016-08-01 21:39

문명과 기술

우리집·회사는 내진설계 돼있을까

내진설계법 1988년에 처음 도입
6층 10만㎡ 이상에만 적용해
수차례 개정 거쳐 현재 3층까지

내년엔 사실상 모든 건축물 의무화
내진설계 됐어도 실제 시공은 별개
지진 땐 책상 밑, 멈춘 뒤엔 탈출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은 울산·부산·경남 일대 주민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우리 동네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우리 집은 안전할까? 우리 회사, 우리 학교 건물은 내진설계가 돼 있을까?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5일 울산시 동구 동쪽 해상 52㎞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을 몸으로 느꼈다고 119 등에 들어온 신고 건수는 7918건에 이른다. 서울에서만 54건의 신고가 들어올 정도로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다행히 진앙지가 바다여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1978년 10월7일 충남 홍성에서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2명이 다치고 건물 118동이 부서졌다. 1100여동의 건물에 균열이 생겼으며 홍주성곽이 90m가량 무너졌다. 지진이 내가 머무는 곳에서 발생하면 우리 집은, 우리 회사 건물은 안전할까?

지난해 12월 국민안전처가 공공시설물에 대한 내진 성능 확보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설계 대상 시설물 11만6768동 가운데 내진이 적용된 곳은 5만3206동으로 45.6%에 그쳤다. 다목적댐과 리프트는 100%, 원자로 및 관계시설도 98.4%로 높은 반면 놀이동산 등 유기시설은 13.0%, 학교시설은 23.7%만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재난 상황을 종합 지휘해야 할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와 종합상황실 268곳 가운데 내진 성능이 확보된 곳은 158곳(59%)에 불과한 형편이다. 민간건축물의 내진설계율은 이보다 못 미쳐 29.1%에 그친다. 우리 집이 내진설계가 돼 있는지 여부는 언제 지어졌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1962년 건축법을 제정할 당시 “건축물은 지진에 대하여 안전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시행령이 없어 실효가 없었다. 실질적으로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것은 1988년 관련 규정이 마련되면서이지만 당시에는 규모 5.0 지진에 대해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건물에만 적용됐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88올림픽 이전에 지어진 것이라면 내진설계가 안 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후 국내외 지진 발생이 늘어나면서 규정도 점차 강화돼왔다. 1996년에는 면적이 1만㎡로 축소됐으며, 2000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이 포함됐다. 2005년에는 1000년에 1회 발생할 정도의 지진 규모, 곧 규모 5.5~6.5 지진에 대한 내진 성능을 갖추되 3층 이상, 면적 1000㎡ 이상 건물로 크게 강화됐다. 국토교통부는 내년에 2층 이상, 면적 500㎡ 이상으로 기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택. 아래에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집을 얹은 필로티 구조로, 내진설계가 돼 있어도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 파괴가 약한 쪽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일반 주택보다 크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택. 아래에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집을 얹은 필로티 구조로, 내진설계가 돼 있어도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 파괴가 약한 쪽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일반 주택보다 크다.
서울 강남구의 고급빌라 라테라스. 유명 연예인들의 계약으로 이름을 알린 이곳은 건물과 지면 사이나 건물 층간에 면진 고무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의 고급빌라 라테라스. 유명 연예인들의 계약으로 이름을 알린 이곳은 건물과 지면 사이나 건물 층간에 면진 고무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건물의 준공연도는 정부민원포털 민원24(minwon.go.kr)에서 건축물대장을 무료로 열람하면 된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iros.go.kr)에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는 방법도 있지만 유료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의 경우 엘리베이터에 있는 정보무늬(QR코드)를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정보무늬를 읽으면 간단한 정보가 뜨는데, 상세(more)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 설치일이 나와 건물 준공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엘리베이터를 전면 교체했다면 최초 준공일을 추산하기 어렵다. 가령 내가 사는 아파트가 2006년에 지어진 15층짜리라면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다. 하지만 내진설계를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건물이라는 것과 실제 공학적 의미로 내진 성능을 지녔는지는 다른 문제다.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101’ 빌딩의 정상부에는 질량이 큰 추가 설치되어 있다. 지진과 바람으로 인한 흔들림을 줄여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101’ 빌딩의 정상부에는 질량이 큰 추가 설치되어 있다. 지진과 바람으로 인한 흔들림을 줄여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내진설계란 지진에 저항하도록 하는 설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항진, 격진, 감진 세가지 방법이 있다. 일본식 한자어로는 각각 내진, 면진, 제진이라 표현한다. 항진은 지진에 힘으로 버티는 것을 말한다. 내진설계라 하면 대부분 이 항진에 대해 구조적으로 버티도록 건물의 골격을 튼튼히 건설하는 것을 가리킨다. 격진은 어느 한 층에서 지진을 차단시키는 것으로, 이를테면 건물을 얼음판 위에 올려놓는 셈이다. 땅이 흔들려도 베어링이나 고무를 설치한 면진층이 충격을 흡수해 나머지 층에는 지진력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감진은 감쇠·베어링 등 완충장치를 건물에 집어넣어 힘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쓴다. 자동차의 완충장치인 쇼크업소버(이른바 쇼바)처럼 바퀴가 자갈밭을 지나도 차체는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로, 지진에 땅은 흔들려도 건물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소나무는 땅이 흔들리면 함께 움직이지만 부드러운 갈대는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격진이나 감진은 설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극히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항진, 곧 내진설계에 그친다. 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장은 “내진설계는 수직 하중이나 바람에 대한 저항력 등 기존에 작용하던 힘에 지진이 지반을 움직이는 힘을 더해 계산된다. 철근 몇개를 더 넣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 건축 부재들이 지진이 흔드는 힘을 잘 견디도록 촘촘히 엮어주는 상세(디테일) 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설계사무소가 작성하는 건물설계는 감리를 받지만 건축 현장에서 상세 설계대로 시공하는 것은 다른 사안이라는 데 있다. 유 소장은 “철근 간격을 가지런히 맞추고 갈고리(훅)로 엮어줘야 한다. 2005년 3층 이상으로 내진설계가 강화됐지만 3~5층짜리 집을 짓는 영세업체들이 현장에서 상세설계대로 시공을 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최근 유행하는 필로티 구조 건물들은 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 1층에는 기둥보만 세워 주차장으로 쓰고 2층 이상은 아파트식의 건물을 꽉 채워 올려놓는 형식의 건물들은 내진설계 범위의 지진이 오더라도 지진 파괴가 약한 곳, 곧 기둥보 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진설계가 된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 안에서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박지훈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는 “건축물의 내진설계 여부에 따라 행동요령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진설계는 건축물이 붕괴하지 않고 버티도록 설계하는 것이지 특정한 피난경로를 확보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 소장은 “지진의 지속시간은 아주 짧아 진동을 느끼는 순간 우선적으로 천장에 부착된 조명·냉방장치, 마감재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책상이나 탁자 밑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진이 멈춘 뒤에는 건물 밖으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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