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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도핑의 진화? 유전자 바꿔 금메달 딴다면…

등록 2016-08-08 09:14수정 2016-08-0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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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간과 몸

스포츠계 뒤집어 놓은 약물 투여

니트로글리세린 먹고 뛴 마라톤
근대스포츠는 도핑과 함께 시작
‘필로폰’ 같은 마약 먹고 뛰기도

스테로이드에서 ‘수혈 도핑’까지
리우 올림픽에서도 논란 이어져
반도핑기구는 ‘유전자 도핑’에 촉각
약물로 신체 기능을 일상적으로 조정하는 시대가 온다면, 스포츠는 어떻게 재정의될까?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선 달리기나 사이클 선수에게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였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스웨덴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준 다이너마이트의 주 성분이다. 당시 유럽에선 장거리 달리기나 자전거 경주가 대유행이었다. 영국의 스포츠 역사학자 레스 우드런드는 책 <이 섬의 경기>에서 이런 시합에 “매일 2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곤 했다”고 기록했다. 시합은 길게 일주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코치가 선수를 옆에서 보좌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좌역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선수가 잠들거나 탈진하지 않도록 각종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니트로글리세린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실제 심장마비 대응 약물이기도 했던 니트로글리세린은 선수의 호흡을 원활하게 했다. 현대 스포츠의 형성 초기 이런 약물의 투여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져서, 1904년 올림픽 마라톤에선 한 선수가 너무 많은 약물과 독주를 마신 나머지 골인 뒤 기절하기도 했다.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도핑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나라가 앞장선 조직적인 도핑이 적발되면서 104년 만에 역대 최소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우리나라에선 수영 스타 박태환 선수가 과거 금지약물 사용으로 올림픽 출전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컸다. 니트로글리세린으로 시작됐던 이런 인위적인 기록 향상 기법들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서 현재는 선수의 몸을 아예 바꾸는 유전자 조작까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백년 넘게 끝없이 선수들을 유혹하는 그 힘은 무엇일까?

적은 노력으로 근육 키우는 꼼수

대표적인 도핑 약물은 두 가지 그룹을 꼽을 수 있다. 진영수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은 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흥분제(스티뮬런트)와 근육 강화제(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두 군이 가장 널리 쓰이는 약물들”이라고 말했다. 흥분제는 정신에 작용하는 약물로, 암페타민이 대표적이다. 암페타민을 섭취하면 지각이 강화되고 지구력이 향상되며 움직임이 빨라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유는 이 물질이 몸의 중추신경계에서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런 물질들이 우리 뇌 안에 풍부해진다는 뜻이다. 이 경우 뉴런과 뉴런 사이를 잇는 정보 전달의 화학적 연결이 빨라지면서 몸의 기능이 놀랍게 증대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합성 마약인 ‘히로뽕’의 정확한 명칭은 메스암페타민이다. 암페타민 계열의 물질인 것이다.

신체향상 약물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스포츠계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규제를 도입하게 한 계기도 암페타민이었다. 김건열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위원은 그의 책 <도핑>에서 1960년 로마올림픽을 “스포츠계가 도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계기”로 꼽았다. 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된 이 올림픽의 첫날 사이클 경기에서 덴마크 선수가 경기 중 쓰러져 숨지고 만다. 부검 결과 다량의 암페타민이 검출되었다.

마약류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흥분제에 비해 근육강화제는 비교적 느슨하다. 그만큼 선수들이 손을 대기도 쉽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였던 벤 존슨이 복용한 약물도 스테로이드였다.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스포츠계 사람들 가운데 40%는 여전히 약물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태환 선수가 맞았던 ‘네비도’도 대표적인 스테로이드계 약물 가운데 하나다.

이들 약물은 공통적으로 ‘스테로이드’라 불리는 고리 모양의 분자구조를 지니는데, 지용성이라 몸의 세포막을 통과해 단백질을 활발하게 생성하도록 직접 작용한다. 쉽게 말해 이 약을 먹으면 적은 노력으로도 빠르게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몸이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도 이런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몸짱’이 되고 싶은 일반인 가운데에도 이 약을 구해 쓰는 이들이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구글 등에 검색하면 쉽게 업자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물로, 이런 약품들은 모두 불법이다. 윤정원 한국도핑방지위원회 교육홍보팀 대리는 “일반인의 사용 규모는 아직까지 조사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근육강화제는 심혈관계 질환이나 암 유발 등과 함께 성 기능의 변형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안고 있다. 체제 간 경쟁이 심했던 냉전시절 동독은 선전을 위해 자국 체육 선수들에게 몰래 스테로이드를 먹였다. 당시 여자 투포환 선수였던 하이디 크리거 역시 18살부터 이 약을 먹었는데, 체격이 좋아진 것뿐 아니라 목소리가 굵어지고 몸에 털이 많아지는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독일 통일 뒤 크리거는 성 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이 되었고 이름도 안드레아스로 바꿨다. 남성의 경우도 과도한 남성 호르몬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자 수가 감소하고 여성형 유방이 자라는 등의 증세가 관찰된 바 있다.

‘유전자 도핑’은 적발 힘들어

기술 발전과 함께 도핑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현대 도핑의 대명사 하면 미국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꼽히는데, 그는 스테로이드 등 전통 약물뿐 아니라 자신의 피를 뽑았다가 경기 전 주입하는 ‘수혈 도핑’ 등 다양한 방법을 장기간 사용하면서 치밀하게 검사관을 따돌린 것이 드러난 바 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01년부터 ‘유전자 도핑’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오고 있다. 유전자 도핑은 유전자 치료로부터 온 개념이다. 유전자 치료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 특정 세포의 유전 정보를 변형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변형시킬 유전 정보를 담은 바이러스나 디엔에이(DNA)를 환자에게 적절히 주입하면 해당 세포가 변형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병의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능의 강화를 위해 유전 정보를 변형시키면 유전자 도핑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는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적혈구가 늘면 근육으로 공급되는 산소도 늘고 그만큼 강한 지구력을 얻는다. 지금까지 도핑은 이런 효과를 노리고 에리트로포이에틴을 주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호르몬을 관장하는 유전자를 조작하면 우리 몸이 자체적으로 더 많은 적혈구를 생산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도핑이 갖는 무서움은 외부 물질의 투입 없이 우리 몸이 자체적으로 그런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발견이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유전자치료제 저널> 집계를 보면 지난해까지 세계적으로 유전자 치료를 받은 이들의 수는 2300명이 넘었다. 아직까지 유전자 도핑이 적발된 사례는 없다.

진영수 위원장은 “현대 스포츠 스타의 성공에 걸린 부와 명예가 매우 크기 때문에 어둠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약물과 기법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그만큼 이를 탐지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도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영원한 경쟁을 지속할 수는 없다”며 “‘공정한 스포츠가 공정한 사회를 견인할 수 있다’는 선수와 대중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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